사랑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나에게 심어준 책은 <파페포포 메모리즈>였다. 당시에 나는 군인이었고 여자 친구도 없었지만, 기간병 화장실에서 읽게 된 그 책의 몇 장면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것은 몇 권의 <좋은 생각>과 함께 화장실 선반에 놓여 있었다. 이등병, 일병 시절 내무실에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은 야전교범밖에 없었다. 그것을 외우는 일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다.
건조장 뒤편에서 결산이 걸리면 선임들은 웃지 말 것, 상병을 달 때까지는 사제 책을 읽지 말 것, 훈련병 앞에서 입을 열지말 것,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도 용감한 편은 아니었으므로 그런 부조리에 저항하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뭔가 모르게 틀어져 가는 졸병 시절에는 때때로 타인의 시선을 피할 곳이 필요했고, 이곳에 없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기도 했는데, 그곳이 기간병 화장실이었다. 나름 요령을 피는 공간이었다. 잠이 부족한 어떤 날에는 십분타이머를 걸어놓고 쪽잠을 자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짧은 시간 동안 도피하던 곳이었다. 몽글몽글한 그림이 가득한 <파페포포 메모리즈>에는 군대에 없는 것이 있었고, 제대하면 나에게 올 것이 있었다.
그 책은 어느 날 당연한 듯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기억된다. 사귀게 되고 그 징표로 나무를 심게 되지만, 얼마간 시간이 흐른 어떤 날 무언가 시들어가는 것처럼 헤어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게 많이 읽었지만,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음이 떠나서 이유를 만들어낸 뒤에 헤어지게 되었는지, 이유가 생겨서 마음이 떠나게 되었는지는 모호하다. 그 세부적인 이유에는 아마도 나의 연애 경험과 그 뒤에 읽게 된 몇몇 책들의 이야기가 먼지처럼 쌓여버렸기 때문이지 싶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이별 뒤에 한 사람은 조금은 다른 삶을 살게 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나무를 돌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무가 담벼락을 넘어 설정 도로 웃자라고 열매가 맺혔을 때, 그 나무를 기억한 그 사람이 돌아와 두 사람은 다시 연인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렇게도 기분이 따뜻해졌었다. 머릿속에서 씨앗 하나가 심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에게 사랑이라 느껴지는 감정이 왔을 때, 지켜주고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후로, 사랑에 대해서 큰 고민을 한 적은 없던 것 같다. 어쩌면 오랜 연애 경험이라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던 것 같기도 하고, 취업준비를 하거나,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딱히 사랑의 방법을 배워서 구사하는 것은 구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책을 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렵게 시작하게 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사랑에 대한 세세한 테크닉을 배우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랑이 아닌 것에 대한 서술이 많았다. 의외로 개인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거시적인 측면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관한 것. 등가 교환 법칙이 지배된 세상에는 거의 모든 활동에도 그것이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주는 만큼만 받는 것, 만족스러운 소비가 중요한 세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랑도 활동이므로 여기서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라 했다.
세상의 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게 중간 정도의 열심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듯하다. 이를테면 받은 만큼 일하고, 분업 된 생산체계 아래에서 자신의 파트에만 집중한다. 그렇게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서 중용을 가장한 적당한 노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대인의 현명한 삶의 태도인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대중에게 주목받는 처세술인 듯하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그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균열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보신주의 속에서 합리적으로 사는 듯하지만, 오히려 불안하고 고독해지는 것을 종종 느낀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게 된 부모의 사랑이, 여러 가지 활동이,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관계가 이상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세상에 길들여지고 몸을 사리며 살아가게 될 때, 오히려 더 우리를 고독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살아기 때문에, 우리는 잠을 잘 때도 온전하게 잠들지 못하며, 깨어있을 때는 반쯤 졸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군시절로 돌아가자면, 그곳은 부조리가 만연한 곳이었다. 그러나, 적당히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행운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매일 아침 우리는 초석, 거울, 자긍심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수칙을 우렁찬 목소리라 외치곤 했었다. 그 속에서 나만 빼고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싶은 날도 있었다. 군 생활의 미덕은 중간 즈음하는 것이라 충고하는 선임도 없었고, 몸을 사리는 후임도 없었다. 위국헌신하면 제대라는 완벽한 엔딩이 있어서 그랬던 것같기도 하고. 결국 나도 제대 무렵엔 어느 정도 딱딱한 군인이 되었다.
그곳에 밀어붙이는 듯한 태도를 배웠고, 제법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복학 후에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졸업하고 몇번의 시험에 떨어지고 비정규직 교사를 하면서 학교와 도서관을 왕래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지 다짐했던시절이 너무 오래되었고, 어느새 어딘가 아프게 되었고, 요즘은 풀리는 일 보다 풀리지 않은 일들이 많다 보니 적당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참이었다. 어느덧 몸을 사리는 내가 느껴지는 참이었다.
그런데, <사랑의 기술>을 읽고 보니 오래전에 심었던 씨앗이 떠올랐다. 문뜩 그것을 다시 한번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시 한번 잠이 들 때는 죽은 듯 자고, 깨어 있을 때는 정말로 온전히 깨어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령 피우지 않고, 몸 사리지 않고. 닿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활동에 기교를 부리지 않고 오롯이 대하다 보면, 등가 교환 법칙을 넘어서는 조금 더 나은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드는 것이다. 사실, 중요하지 않은 활동이란 정성을 다하지 말아야 하는 활동이란 없다는 것이 위로된다. 그것은 사랑과 일과 관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은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커피도 잘하고 직원에게도 잘해야 한다니. 노동에서 벗어날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자영업자에게 썩 괜찮은 방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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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 메모리즈>의 내용은 기억 속에서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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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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