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0 아버지가 돌아가셨다_주말 기고_서하연

2022.05.15 | 조회 1.6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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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언니 아빠가 2:30 돌아가셨어. 문자 보면 전화 해.’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들어와있었다. 가족들이 자고 있는 침실에서 조용히 나와 옷방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 전 식사를 못 하시는 상태가 되어 요양 병원에 입원 시켜드리면서 마음의 각오는 했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내가 상주가 되는 장례는 처음이라 막막했다. 당장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부터 결정해야 했다. 그 날은 하필 오후 늦게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진로세미나를 하기로 몇 달 전부터 약속이 잡혀 있었다. 사정을 이야기 하면 취소 할 수 있었겠지만, 백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한 약속이었고 특히 참석한 많은 학생들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사라 취소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내가 그 행사를 취소하고 오기를 바라지는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나에게 큰 소리를 하신 적이 없다. 온화하고 인자한 성품이셨고 자녀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셨다.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결정을 지지 해주셨고 믿어주셨다. 그런 아버지셨으니 분명 ‘행사 잘 마치고 조심해서 오너라’ 하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이 되었다. 동생과 통화를 하고 둘이 하루동안 각자 할 일을 담담히 정리 했다. 그렇게 우리의 장례 프로젝트가 시작 되었다.

급작스럽게 며칠 회사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몇몇 분들에게 연락을 해서 사정 설명을 하고 도움을 청하고, 경조 휴가를 신청하고, 오후에 진로 세미나를 하다보니 금새 하루가 갔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앉아 겨우 한숨을 돌리며 장례 절차들을 하나씩 찾아보는데, 슬픔 보다는 긴장과 부담감이 올라왔다. 이 일들을 내가 흔들리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심장이 튀어나올것처럼 두근거리고 등에는 식은땀이 나면서 손발에 기운이 빠져서 떨렸다. 점점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달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섰다. 

짐가방을 들고 기차역을 나서 어둑해진 도시로 들어설 때, 긴장감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전쟁에라도 나가는 양 마음을 다잡으며 한 발 한 발 옮기고 있었다. 손발을 덜덜 떨며 택시 정류장으로 가는데, 문득 내 앞에 서 있는 택시에 ‘카드결제 택시’라는 표시가 안 보였다. 평소처럼 현금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 불현듯, ‘지방에서도 택시에서 카드 결제가 되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뒷차를 보니 우리 회사 브랜드의 택시였다. 반가운 캐릭터가 그려져있었다. ‘카드 결제는 되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실없는 순간에 긴장이 살짝 풀렸다. 마치 캔맥주를 톡 따는 순간 김이 피식 나오고 압력이 낮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카드 결제가 되는’ 택시를 잡아타고 어두워진 고향 도로를 달리는데 또 한 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택시 안에서 편안함도 느꼈다. 신도시로 개발된 외곽 지역을 지나 구도심 지역으로 들어서, 고향집이 있는 익숙한 우리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동네 탓이었던지 신기하게도 긴장과 불안도 점차 사그라졌고, 택시에서 내릴 무렵에는 제법 평안해졌다.

집에 들어서니 가족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를 보니 반가운 마음도 있고, 슬픈 마음도 일부, 그리고 장례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뒤섞여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울지 맙시다. 아버지 편안히 가실 수 있게 좋은 분위기에서 잘 모셔드립시다. 저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삶이었던 고된 삶이었던 다르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도 한 세상 잘 살고, 이제 이번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홀가분해지셨을 거예요. 그렇게 잘 마무리 하실 수 있게 우리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웃으면서 보내드립시다’ 가족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동생이 상주를 하고, 나는 엄마를 지키고, 장례를 위한 일처리는 여동생이 도맡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장례 프로젝트 킥오프를 마치고, 각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부터 종일 힘든 하루를 보냈던지 가족들은 다들 뒤척이면서도 금새 잠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간혹 실수도 있었고 헤프닝도 있었지만,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간간히 웃음 소리도 들리는 행복한 장례를 치렀다. 내 남편은 ‘행복한 장례’라는 내 표현에 웃으며 ‘이런 패륜이 없다’고 했으나, 나는 행복한 장례라는 말이 참 좋았다. 우리가 비싼 유골함을 고른다거나 일을 도와주신 직원분들에게 수고비를 돌린다거나 하고 있으면, 어머니는 옆에서 조용히 ‘그렇게 비싼 거 할 필요 없다. 너희 아버지는 죽어서도 호강이다’ 하는 등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너희 아버지는 가시는 길이 좋다, 그래도’ 이 말씀도 여러 번 하셨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은 계절에, 몇 년동안 나라를 어지럽혔던 전염병도 끝나가는 시기였다. 발인날은 약간 구름이 낀 듯 하여, 선산에 모시는 중에도 뙤약볕에 고생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두루 신경 쓰신 거야’ 나도 여러 번 동생들에게 이야기 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런 분이시잖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너무 힘들지 않게 잘 버티고 있는지, 많이 울고 슬퍼해서 몸 힘들지 않는지, 잘 추스리기를 바란다는 연락이었다. 친구의 연락을 받고 장례 기간을 회고 해봤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지난 며칠을 보냈는지. 나에게 지난 며칠이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그리고 아래와 같이 회신 했다.

‘슬픔 보다는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어. 그동안은 죽음이 추상 명사 였는데,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보고 염습을 하고 화장과 매장을 하면서,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 시신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순간처럼, 아버지가 아니라 남이었다면 거리감이나 무서움이 들었을 순간에도, 아버지니까 괜찮더라고. 부모님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녀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떠나시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감사했어.

남동생은 입관 때부터 내내 많이 울던데, 나는 괜찮았어. 어느 나이인들 이별에 적합한 나이가 있겠냐마는, 47세는 그래도 제법 의젓하게 아버지 삶의 새로운 단계를 같이 맞이해드릴 수 있는 나이지 않나 싶다. 아빠랑 내가 같이 한 마지막 프로젝트, 제법 성공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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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하연

카카오에서 데이터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데이터 프로덕트를 만듭니다.

매달 15일 '일상 속의 IT 기술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모든 문화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지만, 오늘은 지난 주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한 마지막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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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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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er 2 years 전

    십 년간 품고 살아온 인생의 모토가 있습니다. 절망도 희망도 없이 담담하게 입니다. 작가님께서 어떠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셨을지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제 인생의 모토인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글을 읽고 스스로 돌아보았습니다. 소중한 글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귀하신 고인의 명복을 온 마음 다해 빕니다. 작가님의 나날이 안온 하시기를 바라요.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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