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과 서
“우리”가 친근감의 표시로 사용되고, 국가에서부터 개인으로 쓰이는 주소 체계를 보며서 한국어에 내포되어 있는 관계성에 대한 고찰 후, 엘리는 멈출 줄 모르는 연속적인 궁금함을 해결 해야만 했다. 거창하게 온 인류의 속성까지는 아니었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포함하는 동양과 서양의 사고의 근원에 대한 물음표가 떠나질 않았다. 구글링에는 자신이 있었던 엘리는 인터넷과 책속의 책을 뒤져 궁금한 곳을 거의 말끔히 해결해줄 만한 다큐멘터리를 찾았다.
<동과 서>라는 직관적인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미시간대학교, 일리노이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서양 비교문화심리학 연구결과와 학자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많은 사례가 제디 되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질문과 그에 대한 동서양인의 대답을 소개한다. 같은 그림을 바탕으로 던져진 질문에 동양인과 서양인은 각각 상반된 대답을 했다.
" 가운데 웃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가? " 라는 질문에 엘리는 행복해보인다고 대답했다. 동서양 사람들 대부분 동일하게 답했다. 행복하다고.
" 이 그림 속의 사람은 행복한가? " 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엘리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화가 난듯한 주변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내 곁의 사람들이 잔뜩 화나 있다면 그녀는 행복하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대부분의 동양인들의 대답도 엘리와 동일했다. 그런데 서양인들의 대답은 달랐다. 두번째 그림 속의 사람도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응? 정말로? ' 엘리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주인공이 웃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했다. 한 명의 생각이 아니었다. 충격적일 만큼 놀라웠다. 주변의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처음부터 신경도 쓰지 않은 듯 했다. 이 순간 호기심일지 의구심일지 모를 의문이 엘리를 파고들었다.
- 그렇다면, 대답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 속에 매몰되다 싶을 정도로 빠져 호기심이 잔뜩 커져버린 엘리는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쓰여진 동 제목의 책<EBS 다큐멘터리 동과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뛸 듯이 기뻤고 당장 탐독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은 동서양의 우주관에 닿아 있었다. 서양인들은 우주 공간이 텅 빈 허공이라고 믿어 왔다고 한다. 텅 빈 공간에 별이 독립적으로 그야말로 홀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우주가 텅 빈 허공이 아니라 ‘기(氣)’로 가득차있다고 생각해왔다. 수증기 입자들이 모여 구름을 이루는 것처럼 우주 속 물체들은 기가 모여 일정한 형태를 이룬다고 믿어다고 한다. 따라서 서양인들은 각기다른 물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동양인들 모든 물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동일한 사진 속 사람의 사람의 감정과 상태를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동양인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을 함께 고려하고 서양인은 주변의 상황과 상관없이 주인공 대상에만 주목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언어에도 당연히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 동사 중심의 한국어, 명사 중심의 영어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양에서는 다양한 사물과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하고 작동하는지를 표현하는 동사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사물들이 독립된 개체라고 믿는 서양에서는 개체의 주체적 속성을 나타내는 명사가 중심을 이룬다.
엘리가 미국인 친구 조쉬와 나눈 대화이다. 영어 원문을 단어 그대로 한국어로 직역을 해보자면 이렇게도 가능하다.
“나는 연인 관계 안에 있어.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강열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라고.
어색한 문장을 읽자니 미간이 찌그러진다. 불편할 정도로 부자연스럽다. 한국어는 주어를 생략해야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해주는 문장인 동시에 반대로는 국문을 영문으로 번역할 때는 맥락에 맞는 주어를 찾아 영어 문장 맨 앞에 써야 한다는 문법으 일깨워 준다. 엘리는 사실 아직까지도 ‘연애하다, 사귀다’의 의미인 ‘be in a relationship’, 과 ‘~ 에게 홀딱 반하다’의 ‘have a crush on’ 표현이 여전히 신기하다. 이 외에도 전치사와 명사, 동사와 명사를 사용해서 우리나라의 동사나 형용사의 의미를 표현하는 구문들은 차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괄호안 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의 명사를 사용한 번역이다)
- I’m in love, fall in love : 사랑한다 (사랑에 빠지다)
- I’m in sadness : 슬프다 (슬픔에 빠지다)
- I’m in trouble : 난처하다, 곤란하다 (곤경에 빠지다)
이렇다 보니 명사가 들어간 구문을 잘 사용하기만 해도 흔히들 말하는 한국어같은 영어가 아니라 원어민들이 쓰는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명사처럼 만만치 않은 것이 없다. 엘리를 그렇게나 쫒아 다니던 실수. 3인칭 단수 주어에 따라오는 (s,es를 붙이는) 동사를 사용하는 영어의 동사 변화도 명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하던 실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어를 접했을 때 어색하거나, 어려웠 던 개념들의 시작은 명사였다.
엘리는 중학교 영문법 시간이 떠올랐다. 명사는 사물이나 사람 등을 지칭하는 영어의 품사중 하나이다. 정의는 간단하다. 하지만 정의 넘어의 명사는 복잡하고 미묘하고 낯선 신선한 개념이었다. 명사는 셀 수 있는 명사인 가산명사(countable noun)와 셀 수 없는 개념의 불가산 명사(uncountable noun)로 분류 된다는 영어 선생님의 강의. 아리송 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처음보는 형태와 문법들이 시작되어 가지치기를 하듯 늘어난다.
가산명사가 하나 또는 한 개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관사 a/an을 붙이고 여러 개를 표현할 때는 복수형(s/es)을 써야한다. 그리고 이 명사는 동사에까지 단수 명사/복수명사에 주어인지에 따라 뒤에 오는 동사까지 영향을 받는다. 중학생인 엘리는 처음 들어보는 개념에 멍하게 칠판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사과는 셀수 있지만 모래는 셀 수 없다는 선생님 말씀에 ‘이상하다. 바닷가에서 모래를 한 줌, 두줌 집어 모래 성을 쌓았는데. 분명 모래를 세었는데……’라는 엉뚱한 생각을.
지금도 그녀는 통역을 하거나, 특히 번역을 할 때 가산명사인지 불가산 명사인지 사전으로 확인해서 문장을 완성한다. 국내파인 그녀에게 단수 복수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는 명사가 어려운 데에는 근거 있는 이유가 있었다. 영어를 비롯한 서양의 언어는 어떤 것을 보아도 그것이 셀 수 있는 물체인지 셀수 없는 물질인지를 구분해야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재빨리 판단해서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사과 좋아해" 라고 두리 뭉실하게 말할 수 있다. 각각의 독립적인 물체가 아닌 모두 연결되어 하나를 이루는 물질 중심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동양에서는 사물을 하나하나 구분하는 언어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면 영어로 표현하려면 "I like an apple" 이라고 말해야 한다. 주어인 대명사로 문장을 시작해야하며, 사과는 가산명사이기 때문에 관사인 an 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이와 같이 서양에서는 사물의 개채성에 대한 인식이 도양보다 훨씬 더 발달 했다. 그래서 위의 그림을 볼 때에도 질문의 객체만 독립적으로 인식하여 행복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우주관 차이까지 도착한 그녀는 크나큰 깨달음의 환희에 한잠 동안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어와 한국어 사이의 다름과 이야기를 한번에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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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썼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가며, 세상과 사람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기도 소망해봅니다. 아이들과 학생들이 재미있게 영어를 익히도록 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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