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툭 하면 넘어지고 다치는 아이였다. 학교 계단을 오르다 무릎이 까지거나, 문을 열고 나가다가도 제자리에 잘 있는 문틀이나 문에 몸을 부딪히기도 했다. 딱지가 아물기도 전에 또 긁혀오곤 했고,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는 멍이 여기저기 들어왔다. 학교에서 잃어버린 손목시계를 세는 것은 속 쓰린 일이므로 그만두었다. 삼촌이 해외출장에 다녀오면서 사준 디즈니 캐릭터 시계 역시 며칠 후 내 손목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침에 비가 왔다가 하교 시간이 되기 전에 그친 날은 보나마나 우산을 잃어버리는 날이었다.
번호 순번대로 돌아오는 주번이 되면 긴장부터 되었다. 주번의 과업 중에는 복도의 큰 화분에 물을 주는 일도 있었다. 남들은 물조리개를 적당히 기울여 금방 끝내는 그 일에도 나는 서툴기 그지없었다. 물을 주다가 꼭 화분 주변을 향해 물을 쏟아버리거나 나뭇잎을 타고 내린 물로 화분 근처가 물바다가 되곤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스스로 작아지곤 했다.
아버지에게도 자주 혼이 났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데다 꼼꼼하고 손이 야무진 아버지는 밥 먹듯 실수를 저지르는 딸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일을 왜 못하냐고 타박을 듣기 일쑤였다. 무언가를 엎지르고, 쏟고, 다치고 나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일까지 덤으로 늘었다.
심리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시작했다. 병원이야말로 극도의 꼼꼼함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검사 결과 수치 하나가 틀리는 일도, 환자 검사 일정이 잘못 기재되는 일도, 환자의 보고서에 글자 하나가 틀리는 일도 있어서는 안됐다. 환자 앞에서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부딪혀 검사자의 체면을 구기는 일은 더더욱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숫자를 보고 또 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를 믿지 못해서 생긴 습관이었다. 한 번 검사결과지에서 보고 보고서에 옮긴 숫자는 어김없이 한 두 개가 틀려있었다.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잘못된 보고서가 나가게 될 위험이 있었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해서 자주 체하고 두통을 달고 지냈다.
심리검사 보고서를 쓸 때마다 나의 산만함과 전투를 치러야 했다. 노동요를 선곡하고 SNS에 올라온 친구들 소식을 챙겨 읽고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검색하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시험을 앞둔 산만러들이 다 한다는 책상정리는 적성에 맞지 않아 생략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어디론가 떠나있는 내 정신을 끌어다 보고서에 옮기는 일을 수차례 하다보면 검사 보고서 작성은 새벽 두세 시까지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칠칠치 못한’ 성향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그 어느 때보다 그러한 나를 부정해야 한다고 느꼈던 그 시절에,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정신병리에 대한 진단기준을 익히는 것은 수련 과정에서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는데, 수련을 받는 우리는 진단기준을 우리 스스로에게도 적용해보며 서로 강박장애니, 사회공포증이니 하며 진심을 반쯤 담아 놀려대곤 했다.
ADHD를 공부할 때였다. ADHD라고 하면 보통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교실을 돌아다니는 충동적인 아이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러한 ‘충동성/과잉행동 타입’ 외에 ‘부주의/주의력 결핍 타입’이 있다. ‘부주의/주의력 결핍 타입’의 진단기준을 하나씩 살펴보는데, ‘이거구나’ 싶었다. 쉽게 산만해지고 일상적인 일을 잘 잊어버리고, 세부적인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며, 부주의한 실수가 많고,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는 항목까지. 모두 나를 설명하는 문구들이었다.
진단기준을 쭉 읽어 내려갈수록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ADHD 원인 중 하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또는 뇌의 구조적 차이 때문이다. 진단을 받을 만큼이 아니어도, 적어도 뇌의 어떤 부분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실수투성이에 덤벙대고, 주의 깊지 못하고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만큼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절망감 대신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누군가는 더 노력하고, 열심히 훈련해서 약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조금씩 나아지는 면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뇌는 어쩔 수 없이 사람마다 다르게 생겨버린 것이어서, 내가 덜 애써도 남들보다 더 잘해낼 수 있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십 만큼 노력해도 될 일이 나는 백 만큼의 노력을 쏟아야 겨우 가능한 게 있다. 누군가는 한 번 갔던 길은 지도 없이도 잘 찾아가고,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생각해내고, 누군가는 구체적인 사건을 귀신 같이 잘 기억한다. 백 퍼센트 완벽한 뇌를 타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누구나 적당히 모자라고 적당히 유능하다. 결국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자기 약점을 쳐다보며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기비하에 빠질 필요가 없는 일이다. 때로는 내가 나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 자유로움이 더 진실하고 용기 있게 나를 마주하게 만든다.
* 매달 5일 '어느 심리학자의 고백'
* 글쓴이_기린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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