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무슨 운전을 해? 집에서 밥이나 해!

차가 아닌 인생을 운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2023.07.18 | 조회 2.0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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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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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은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계시나요?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여성 운전자는 1342만 9671명으로 전체 운전자 3216만 1081명 중 41%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지난 1976년 여성 운전자는 1만 4587명으로 당시 전체 운전자 79만 7467명 중 1.8%에 불과했는데요. 무려 40여년 만에 여성 운전자 비율이 약 23배나 커진 것입니다.

이렇듯 점차 늘어나고 있는 여성 운전자 수의 증가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연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수도권은 대중교통이 발달해 여성 운전자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지만, 지방에선 많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20대 여성들은 사회 경험을 하며 운전 욕구가 증가하고, 고령층은 과거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라며 "전 연령대에서 여성 운전자가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여성 운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성 운전자들은 운전을 시작하게 된 각양각색의 이유가 있지만 공통으로 운전을 시작한 후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자유로워졌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선택지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도 아닌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잊혀진 여성들 74번째 뉴스레터, 운전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해 볼게요.

 

여성 운전자의 역사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운전하는 베르타 벤츠와 두 아들 ⓒ vintage everyday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운전하는 베르타 벤츠와 두 아들 ⓒ vintage everyday

자동차 역사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이 있습니다. 베르타 벤츠는 100km가 넘는 주행을 하여 세계 최초 장거리 운전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베르타가 올라탄 자동차는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벤츠'의 설립자인 카를 벤츠의 발명품인 '페이던트 모터바겐 3'이었습니다. 베르타는 카를 벤츠의 아내로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남편 대신 직접 운전하여 성공적인 주행을 마쳤고, 이 이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 자동차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르타의 용기가 없었다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러 인물이 존재했는데요. 방향지시등을 개발한 플로렌스 로렌스는 팔로 수신호의 방향을 가리켜야 하는 번거로움을 1914년, '기계식 방향 지시봉'을 개발해 해결했습니다. 겨울철 따뜻하게 운전할 수 있는 히터를 개발한 마가렛 윌콕스는 두꺼운 옷을 입고 불편하게 운전해야 한다는 문제점에서 출발하여 엔진의 열을 자동차 안으로 보내주는 원리를 생각해 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말끔한 창문으로 시야를 밝혀주는 와이퍼를 개발한 매리 앤더슨은 빗자루에서 아이디어에 착안해 '창문 닦기'라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여성 과학자 샬롯 브릿지우드가 엔진의 힘으로 고무 롤러를 이용해 유리를 닦는 전동식 와이퍼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자동차의 필수 요소들이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나요?

 

도로 위에서도 만연한 여성혐오

ⓒ 차이나는 클라스 유튜브
ⓒ 차이나는 클라스 유튜브

여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하는 여성을 향한 조롱이나 비난은 여전히, 아직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운전한다는 얘기만 꺼내도 "여자가 무슨 운전을 해?", "여자가 남자보다 공간인지능력이 떨어져서 운전을 못 하잖아.", '여자인데도 주차를 잘하네?" 등의 말을 듣기도 하고 "남자가 태워주는 차 타~ 최고의 튜닝은 조수석 튜닝(여자를 조수석에 태우는 것)이야." 등의 성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게 얘기하고는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운전에 미숙한 사람은 당연히 '여성'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담겨있는 '김여사'라는 표현도 빠질 수 없죠. 

과연 여자가 남자보다 공간인지능력이 떨어질까요? 지난 2011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SA) 소속 모셰 호프만 박사에 따르면 공간인지능력은 여남차이 같은 유전적인 영향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호프만 박사는 인도 북부에서 부계사회인 부족과 모계사회인 부족, 각각 한 부족씩을 대상으로 공간인지능력을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부계사회 부족에서만 남성이 높게 나왔고 모계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습니다. 즉, 공간인지능력은 사회﹒문화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요. '여성'인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여성을 이렇게 만든 '외부 요인'이 문제라는 것이죠. 

교통안전정보관리시스템 2020년 지자체별 교통사고 현황 ⓒ 여성신문
교통안전정보관리시스템 2020년 지자체별 교통사고 현황 ⓒ 여성신문

주차를 제대로 못 하거나 황당한 사고를 내는 여성 운전자를 뜻하는 단어인 '김여사'의 역사는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남성 운전자가 여성 운전자보다 약 3배나 많은데 말이지요. 자칫 조금 늦게 출발하거나 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필요치 않은 욕설이나 고성을 듣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뿌리 깊은 성차별이 도로 위에도 존재한다는 고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운전하는 이유

최인선이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게 됐음을 알리는 기사 ⓒ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최인선이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게 됐음을 알리는 기사 ⓒ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1919년 12월에는 당시 유일한 한글 신문이었던 <매일신보>에 '여자계의 신기록-여자 운전수 출현?'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요. 이 기사의 주인공은 경성 자동차 강습소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 최인선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운전은 신문에 보도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최인선을 시작으로 국내 여성 운전자는 꾸준히 증가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이 자유롭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죠.

여성 운전자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개인 차량으로 등록된 2천만 1496대 중 503만 7100대의 차량이 여성 운전자의 소유인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운전면허 소지자와 함께 여성 자동차 오너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성 오너가 5백만 명을 넘은 것은 국내 최초로, 자동차 4대 중 1대는 여성이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니차 프로젝트의 경정비 워크숍 현장 ⓒ 언니차 프로젝트, 여성신문
언니차 프로젝트의 경정비 워크숍 현장 ⓒ 언니차 프로젝트, 여성신문
ⓒ 언니차 트위터 계정(@unniecar)
ⓒ 언니차 트위터 계정(@unniecar)

그래서 왜 여자들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운전대를 잡고, 차를 사게 되었을까요?

'아빠 차, 오빠 차가 아닌 운전하는 언니들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차를 좋아하고 관심 있는 여성들의 모임인 '언니차 프로젝트'(언니차)는 여성의 '이동 독립권'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동독립권'은 여성이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독립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언니차는 여성에게 '이동독립권'이 저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얘기합니다.

운전하는 여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증가와 함께 '이동독립권'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직접 운전하게 된다면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 없이 일하러 가고, 볼일도 보고, 식당이나 카페에도 방문할 수 있죠. 망설임 없이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는 선택지는 세계를 넓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이 합법화됐다 ⓒ CNN 캡쳐, MoneyS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이 합법화됐다 ⓒ CNN 캡쳐, MoneyS

2018년, 전 세계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운전 금지령을 해제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주체성과 자립심이 생겼으며, 다양한 직업도 갖게 되었습니다. 사우디 여성들의 노동력이 향상함에 따라 자국의 경제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쳤고, 아랍뉴스는 여성 운전 합법화가 현재까지 이뤄진 사우디 비전 2030의 계획 가운데 '최고의 성과'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운전하는 여성들은 본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꾸고 있습니다.

 

운전을 직업으로 가진 여자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대리기사 모임인 카부기상호공제회원들의 모습. ⓒ 한겨레신문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대리기사 모임인 카부기상호공제회원들의 모습. ⓒ 한겨레신문

대리운전 기사, 버스 운전기사, 택시 운전사 등 운전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의 성별을 떠올렸을 때 흔히 '남성'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만큼 한 쪽의 성별이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업계의 진입이 어렵기도 하고, 입사 초기 적응에 실패하여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여성인 기사 분들을 만나면 절로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그들의 인터뷰를 읽어봤을 때의 공통점은 '운전이 재밌다.', '운전이 좋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생계를 위해 시작한 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디든 갈 수 있어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여성 운전기사라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지폐를 건네며 "이 돈 줄 테니 자러 갑시다"라는 남성, 뒷자리에서 어깨와 겨드랑이 쪽에 손을 대는 남성, "운전도 못 하는 여자가 내비게이션은 잘 볼 수 있겠느냐"고 핀잔하는 남성, 아무 이유도 없이 "여자가 왜 나와서 운전하느냐"고 소리 지르는 남성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천여성운전자회 김경자 회장, 임병수 복지부장, 김점순 감사, 김현순 자문위원. ⓒ 인천투데이
인천여성운전자회 김경자 회장, 임병수 복지부장, 김점순 감사, 김현순 자문위원. ⓒ 인천투데이

속상하고 무서워서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울기도 했다는 그들이 일을 계속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격려를 주고받고, 외곽지 픽업에 화장실 정보까지 나누는 업계의 여성 회원들을 모아 커뮤니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외롭게 일하다 연대의 힘을 가지게 된 그들은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죠.

더글로리에 등장하는 현남에게 자동차는 남편에서 벗어나 하나 뿐인 딸을 지킬 수 있는 역할로 등장함 ⓒ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더글로리에 등장하는 현남에게 자동차는 남편에서 벗어나 하나 뿐인 딸을 지킬 수 있는 역할로 등장함 ⓒ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여성의 삶에서 '차'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가 없더라도 언제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도로 위를 점령하는 그날까지, 메일리는 계속됩니다.

반비 출판사와 함께하는 이벤트와 Almost Famous 팀의 새로운 텀블벅 프로젝트를 차례로 소개하며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를 확인해 주세요!

 

그리스 로마 신화 외전 -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자세한 사항은 이미지를 클릭해 확인해보세요!
자세한 사항은 이미지를 클릭해 확인해보세요!

"깨어나라, 여신이라는 정형적이고 뒤틀린 틀에서.이 책은 신화 속 열두 여성의 권능을 되찾으려는 여정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외전 - 두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소개글 중

 

🔖 반비 출판사와 함께하는 도서 증정 이벤트

첨부 이미지

리베카 솔닛이 쓴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가 출간되었습니다. 저자 리베카 솔닛은 동화 다시쓰기에서 외면되어 온 고전 동화를 활기 넘치는 모험의 이야기, 위기로 가득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삶과 예술의 윤리를 품은 이야기로 변신시켰는데요.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속 공주는 자신을 깨워 줄 왕자를 기다리며 잠만 자는 수동적 상태에서 탈피해, 꿈꿔왔던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 입니다.

침대에서 일어난 공주에게 과연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잊혀진 여성들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의 이벤트 게시글을 참고해주세요. 추첨을 통해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를 증정해드립니다.

"백 년 동안 잠만 잔 사람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 깨어 있던 사람 이야기를 해야지.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 이야기를 할 거고, 그래서 제목도 이렇게 지었어."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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