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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웅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죠. 바로 잔 다르크 입니다. 잔 다르크는 여성의 입지가 안 좋았던 중세 프랑스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죠. 그렇다면 동양에는 잔 다르크 같은 인물이 없을까요? 수 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진 역사 속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여성이 잔 다르크 한 명뿐이지는 않습니다. 동양의 여전사는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역사 속에서 만나볼 수 있죠. 잊혀진 여성들 67번째 레터, 여성 사무라이, 온나부게이샤(女武芸者)에 대한 이야기 시작해 볼게요.
온나부게이샤는 여성 사무라이, 여성 무예자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전투술을 익힌 여성들을 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무사 계급으로 과거 일본에서 높은 계급에 소속된 이들이죠. 평소에는 평범하게 지내다가 전쟁이 나면 장비를 꺼내 입고 전장으로 나서곤 했습니다. 사실 여성이라고 해서 보통의 무사들과 특별하게 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무예와 전투, 승마를 익혔으며, 사무라이 정신을 연마했으니까요. 이들 온나부게이샤가 사용한 무기는 주로 창 끝에 칼이 달린 언월도, 나기나타(薙刀, なぎなた)였는데, 남자 사무라이들이 카타나라 불리는 일본도를 사용한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이 무기는 남성 무사들과의 신체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동시에 검보다 쉽게 다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온나부게이샤들 사이에서 널리 쓰였죠. 말을 타고 전투 할 때도 나기나타가 일반 검보다 유리했습니다. 덕분에 온나부게이샤들은 자신의 힘과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나타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편적으로는 헤이안 시대 때 벌어졌던 겐페이 전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겐페이 전쟁은 12세기 일본에서 5년간 벌어졌던 내전으로, 결과적으로 가마쿠라 막부가 세우는 데에 일등 공신을 한 의미 있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낸 온나부게이샤는 대표적으로 한가쿠 고젠과 토모에 고젠이 있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기록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등장하는 매체는 헤이케 이야기라는 책이죠).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며 집안일이나 엄마로서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대에 온나부게이샤는 아주 강하면서도 많은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존경받았으며 단토주추라는 전통 무술을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과 문학까지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에는 온나부게이샤가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꽤 많습니다. 무사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가마쿠라 막부의 지도자 호조 마사코가 온나부 게이샤였다는 기록도 있죠. 호조 마사코는 에도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배우자였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자,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으로 정권을 잡아 사실상 일본을 지배하는 철권통치자로 거듭납니다. 그는 이후에도 3대에 걸친 쇼군의 집권에 관여하며 일본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강력한 권력을 구축하고 약 30년간 일본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온나부게이샤의 증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전국시대입니다. 전국시대 당시 무사계급에 속한 여성들의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대표적인 것이 도요토미 일가와 맞서던 공주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때 등장한 아카이 테루코라는 온나부게이샤는 76세가 될 때까지 전장을 누비면서 전국시대에서 가장 강한 여성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습니다. 전국시대가 끝을 향해 달려가던 16세기에는 이케다 센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군대를 이끌며 시즈가타케 전투와 고마키 나카쿠테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나카노 다케코와 그의 군대 조시타이
나카노 다케코는 19세기에 활동했던 온나부게이샤로 일본 역사 속 마지막 사무라이 중 하나입니다. 나카노 타케코와 그의 군대는 보신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중일전쟁에서도 활약했었죠. 군대를 이끌었던 나카노는 전쟁 중에 가슴에 총을 맞자, 자신의 친자매에게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적군의 전리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죠. 그의 동생은 언니의 머리를 베어 인근 사원의 소나무 밑에 묻었습니다. 이 일화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을 잘 보여주는 예시로 지금도 나카노 타케코는 일본의 마지막 위대한 전사로 불립니다.
또한 나카노의 부하 중 하나였던 니지마 야에는 근현대 여성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여성들의 권리를 외쳤기 때문이죠. 죽음이 거의 확정인 전장에서 끝까지 피 흘리며 싸운 온나부게이샤들의 무용담은 일본에서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유명한 온나부게이샤들은 전당까지 만들어졌으니, 사실상 숭배의 대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본 역사도 남성 중심으로 기술된 탓인지 온나부게이샤의 사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뤄지고 있는 유적지 발굴에서 여자 사무라이들의 수가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죠. 1580년 센본마츠바라(千本松原) 전투가 벌어진 유적지에서 105구의 유골이 발굴됐는데 DNA 조사결과 이 중 35구가 여성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개활지 전투여서 이 여성들이 온나부게이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이런 성비의 결과는 몇몇 다른 유적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여성 사무라이와 그의 군대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 보니, 그 존재만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집니다. 심지어 그 수도 적지 않을 수 있다고 하니, 잃어버린 여성들의 역사가 얼마나 방대할지 체감 되지 않나요? 잃어버린 역사를 찾기 위한 여정은 계속 됩니다. 다음 주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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