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p1. 기준의 죽음

2023.12.17 | 조회 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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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ogue

의원면직&공공기관 퇴사 유경험자이자 현재는 노무사 도전중인, 최종꿈은 동네책방 주인인 프로퇴사러의 잔잔한 글쓰기 모음

글을 쓰면서 들었던 음악은 이것입니다. 글을 읽는동안 이 플리를 들어보시길, 특히 31:56초에 시작되는 푸디토리움- if i could meet again을 들으시면 더욱 좋답니다..!

 

 

 

 기준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분주한 5일의 일상과 그 5일의 시간의 끝지점에 자리하는 고된 금요일의 하루를 마무리해내고 그제서야 맞이해내는 퇴근길에 마주하기에는 너무나도 당황스럽고도 갑작스러운 소식이기도했다. 주말로 향하는 시작점이기도한 금요일의 퇴근길에서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특유의 후련하고도 설레는 그 마음은 부고의 소식이 담긴 문자메시지의 존재로 인해 한 순간에 뒤집어졌고, 은서의 마음은 단숨에 거대한 돌을 얹어낸 것처럼 무거워지고말았다. 그 짧은 찰나에 두 감정의 대비는 극명했다. 

평온한 날이 애초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온갖 군상들을 마주하게 되는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은서였지만.. 그 분주함의 감정이나 사회적 연결망을 잠시 끊어둔 채 나만의 깊고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주말이 있었기에 이번주도 그 지독한 시간들을 흘려흘려 보내온 은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금요일 저녁인 지금이 바로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좋은 시작점이기도했다. 그리고 분명, 기준과는 며칠 전까지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다시금 휴대폰을 꺼내 기준과 마지막으로 나눈 메신저 속 대화 창을 열어 그 당시 서로 나눈 대화를 확인한 뒤, 곧바로 문자메시지 창을 클릭해 부고의 소식이 담긴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고작 3일 간격이었다. 살아있는 이와 대화를 나눈 날과 그 살아있는 이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날의 차이가, 허무하게도 3일 차이였다. 

 

다시 꼼꼼히 부고메시지를 확인해봤지만, 분명 내가 알고있는 기준이 맞았다. 메시지를 작성한 이는 아마 기준의 동생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은서는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 일을 마주하거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에게는 문득 초인적인 힘이 부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마주한 기막힌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묘하게도 현실감이 생겼다. 

 

일단, 부고메시지가 온 기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기준이 설정한 컬러링이 들렸다. 요즘 시대에 누가 컬러링을 설정하냐는 은서의 말에 기준은 멋쩍게 웃으며 “ 날 떠올리며 나에게 전화를 거는 이에게 잠시라도 통화연결음 대신 좋은 음악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 만약,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통화연결음이 아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전화를 하는 상대방의 마음이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준은 그런 친구였다. 상대방이 마주하게 될 컬러링까지도 계절별로, 꼼꼼하게 선별해서 택하는 요즘 시대에 흔하지 않은 따뜻하고 세심한 친구였다. 기준의 부고소식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내가 듣고있는 이 컬러링이 내가 마주해낼 수 있는 기준의 마지막 컬러링인걸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상대방 쪽에서  말을 건넸다. 

 

“ 은서 누나, 많이 놀랐죠? 일단 누나 지금 장례식장으로바로 와줄 수 있어요?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누기엔 조금 긴 이야기라…“ 

“ 가야지. 지금 택시 타면 30분 내로 장례식장 도착할 수 있을거야. 문자메시지에 적힌 장소로 바로 갈게. ” 

 

전화를 끊고 택시 어플을 꺼내 택시를 부른 뒤 다시금 생각했다. 그럼 진짜 기준이 죽은 것이 사실이구나. 그런데 왜? 그 이유가 뭘까? 3일 전에도 분명 괜찮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내가 짐작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던걸까?

 

 

… 

 

<부고소식을 받기 3일 전, 기준과 은서의 텔레그렘>

 

기준: 은서야, 우리 이번 주 토요일에 얼굴 보는 거 어때? 

은서: 우리 얼마 전에도 봤잖아. 혹시 무슨 일 있어?

기준: 무슨 일은, 그냥, 너가 보고싶기도하고 할 말도 있어서. 

은서: 뭐야 뜬금없게. 메시지로는 나누지 못하는 대화야? 

기준: 그러기엔 이야기가 좀 많이 길어.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은서: 그럼 내가 너네 집 근처로 갈게. 자세한 약속장소는 금요일 저녁에 정하기로하자. 그럼 그 때봐! 이번주도 화이팅이다!!!!!

 

 

예상대로 일이 흘러갔다면, 내가 기준으로부터 받아야할 메시지는 부고메시지가 아니라 내일 약속장소를 정하기 위한 메시지가 되었어야했다. 

 

 

 


 

에피소드 1편이 올라갔습니다..!

이전에 써둔 글을 조금씩 수정하며 이전 소설의 완결을 맺기로 결정한 뒤 조용한 카페에서 이전 소설들을 수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모쪼록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기 바라며 이만 총총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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