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p4. 수레바퀴 아래서

2024.01.14 | 조회 121 |
0
|

analogue

의원면직&공공기관 퇴사 유경험자이자 현재는 노무사 도전중인, 최종꿈은 동네책방 주인인 프로퇴사러의 잔잔한 글쓰기 모음

 

오늘은 이 글을 읽으며 이 플리를 마주하시길바랍니다..!

 

 

반면 기준은 달랐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하루빨리 그럴듯한 직장에 속해 많은 돈을 벌고싶었다. 은서와는 마주한 상황이 달라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기도했다. 은서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한다할지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배경을 지닌채 살아가는 아이였고, 기준은 애초에 그런 환경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 실패하면 많은 것들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실패하는 과정에서 투입되는 시간과 돈을 책임져낼 수 없었기에 무조건 성공하는 선택만 해내야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는 노력한만큼 성적이 나와주는 덕분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어 마음을 잠시 놓을 수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잔인한 일이기도했다. 

그러니 연봉이 높은 메이저공기업에 일찍이 들어가 직장생활을 해야만했다. 우물쭈물 낭만을 부리며 살아갈 여유가 기준에겐 애초에 없었다. 

 

 

 

은서는 택시에서 꼬박 30분동안 지난시간들 속에서 기준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끊임없이 복기해내었다. 복기해내는 순간순간 끊임없이 머리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기억들과 잔상들이 파편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자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걸 그랬다라는 후회의 감정만이 머릿 속을 부유했다. 기준의 이야기를, 기준이 살아내는 삶에 대해 조금 더 촘촘하게 관심을 가질걸그랬다. 가장 가깝다는 친구라면서 난 정말 기준의 진짜 마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구나싶어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흐르고말았다. 

눈물은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자 가속도가 붙은 듯 무서운 속도로 흘러내렸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하나의 자아가 삭제된 듯, 그 비워진 거대한 마음의 크기만큼 눈물이 쉴새없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 눈물이 다 흐르고나면 마음이 잠잠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장례식장에 가까워졌다.  

 

 

눈물을 대충 훔친 채,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장례식을 다녀온 적은 꽤나 많았지만, 사실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서 장례식을 들렀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가족과 동일한 깊은 슬픔의 마음은 아니었다. 나의 가족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이들의 죽음이었다. 

다만, 지금 내가 마주한 장례식장은 그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젊은 친구의 죽음이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믿기가 어려워 한참동안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복도에서 기준의 동생이 은서를 불렀다. 

 

 

기준동생: “ 누나 오느라 고생했어요. 많이 놀랬죠? ”

은서: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거야? 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서. 나 일주일전에도 기준이랑 저녁 같이 먹었었어. 그런데 일주일만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이상하잖아. 말이 안되는 거잖아. “

기준동생: “ 누나. 혹시 형이 일주일 전에 만났을 때 유서와 관련된 이야기 했던 적 있었어요?” 

은서: “ 맞아. 일주일 전에 우리 유서에 관해서 이야기 나눈 적 있었어. 혹시 기준이가 쓴 유서 발견했어?”

기준동생: ”누나한테 보여줘야할 것 같아서 가져왔거든요. 형 방에 자리한 책장 위에 꽂혀있는 책 속에 유서로 추정되는 글이 있었는데, 그 내용에 누나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어서 보여주려고 챙겨왔어요. 무엇보다 그 유서가 자리한 책을 살펴보니 누나가 형 생일에 선물로 준 소설책이었어요.”

 

 

기준의 동생은 유서와 함께 책을 은서에게 건네주었다. 맞았다. 그 책은 은서가 분명 몇 년 전 기준의 생일선물로 준 소설이었다.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였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은서가 오랜시간 마음 속에 깊이 품어온 소설이기도했다. 

기준에게 선물로 준 책 가장 앞쪽 면에 은서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 “지치면 안돼.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 지도 모르니까.” 기준아 이 문장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아끼는 문장이야. 혹, 견디기 어렵고 쉽게 끝날 것만 같지 않은 지친 삶을 마주하게될지라도 그 고된 마음들을 강물에 흘러보내듯 흘러보내기로하자. 너도, 그리고 나도 말이야…! 무엇보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너의 오래된 벗 은서가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헤세의 자전적 소설이었다. 억압 속에서 사라져가는 소년의 희망과 행복, 자신이 진정 바라고 원하는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한스 기베라트의 이야기는 헤르만 헤세 본인의 이야기이기도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은서가 이 책을 자주 찾게된 것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무렵이었다. 자신의 바람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좀처럼 흘러가주지 않는 지난한 삶을 마주하며 때마다 도피처가 필요했고, 은서에게 <수레바퀴 아래서>는 가장 손쉽게 찾아내는 도피처이기도했다. 

 

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에서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독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독일의 작은 마을의 총명한 아이 한스 기베라트는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의 기대 속에서 신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하게 된다. 낚시와 수영을 좋아하던 감성적인 소년 한스는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어렵게 가까워진 자유로운 소년 하일러를 안타까운 사고로 잃게 된 한스는 몸과 마음이 악화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 시계 수리공으로 힘겨운 노동을 감내하고 사랑하던 여인의 배신감을 느끼게 된 한스는 내적인 갈등을 시작하게 된다.“지치면 안돼.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 지도 모르니까.” 섬세하고 감성적인 소년의 몰락의 과정에는 헤르만 헤세의 자적적인 경험이 바탕으로 깔려있다. 시험의 합격, 주변의 기대 이러한 것들이 과연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 것일까. 육중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수레바퀴 아래서』는 깊은 울림과 진지한 질문을 건낸다.

 

책 소개를 마주한 그 순간 은서는 느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라고. 

 

은서는 어린 시절부터 삶이라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대로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특히 은서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때마다 원하는 것들이 빗겨나고 빗나가고 또 빗겨나는 삶을 살았다고 여겨왔다. 그것이 조금은 억울할 때도 있었고, 또 이따금씩은 끝없이 슬퍼질 때가 있었다. 누구보다 꿈이 명확했던 은서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누구보다 자신의 꿈에서 가장 멀어져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 역시 그러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은 자신의 꿈과는 가장 멀어진 삶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삶과는 달리 기준의 삶을 마주할 때면 은서는 문득문득 부러운 감정을 느끼곤했다. 기준은 늘 자신이 원하는대로 바라는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멋진 사람이었다. 언제나 삶의 목표가 확고한 이였고, 그래서인지 기준의 삶은 그 목표에 따라 움직였다. 기준의 삶에 있어 빗겨나간 장면을 목격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늘 멋진 삶을 살았던 멋진 친구였다. 

 

기준의 생일선물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건넨 것은 그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자신이 가장 아껴운 소설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전달하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준이 지금껏 살아온 탄탄한 삶을 비추어볼 때, 이 소설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기 혹, 어려울지라도.. 만약 그의 삶에 있어서 어려운 상황이 다가온다면 이 소설이, 이 소설 속에 담긴 문장들이 큰 힘이 되길 바랐다. 은서는 이미 그러한 상황들을 많이 마주해온 사람이었으니말이다. 

헤르만헤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인만큼, 은서는 이 소설을 마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대단한 작가도 지난 시절에는 철저하게 어렵고도 지난한 삶을 거쳐왔구나라고. 그리고 그런 생각을 떠올려볼 때면 묘하게 자신의 삶도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과 더불어 이어지는 생각은 이러했다.  ‘ 나도 견디고 견디다보면 언젠가 헤르만헤세의 삶이 그러하듯 나의 삶도 내가 원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라고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기준에게도 전달되길 바랐다. 

 

 

… 

 

다만, 이 소설 속에 유서가 자리했다는 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왜 책장 속에 꽂혀있는 그 많은 책 중 이 책이었을까. 은서가 짐작해보기에 이 책은 은서에게 어울리는 책이었고, 기준에게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기준의 삶은 목표한대로 흘러간 훌륭한 삶이기도했으니 이 소설에 크게 감정이 동요되는 부분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일주일 전 유서이야기를 꺼낸 것이 조금은 의문스럽고도 이상하긴하지만, 그 전의 시간 속에서 기준은 자신의 삶에 대해 늘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친구였다. 그래서 점점 더 이상했다. 왜 이 책이었을까. 기준은 이 책을 찾을만큼 힘들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기준을 힘들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차례로 스칠 무렵 누군가 은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analogue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analogue

의원면직&공공기관 퇴사 유경험자이자 현재는 노무사 도전중인, 최종꿈은 동네책방 주인인 프로퇴사러의 잔잔한 글쓰기 모음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