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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공동체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대학원 교육과정이 공공부문에 치중되어 있다는 말에 대해서

2024.06.12 | 조회 8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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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껍데기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어느 날 근무 중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타 기관의 기록관리 담당자였다. 그는 명백하게 공공기록물법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는데, 그게 문제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확신은 필요했는지 'OO 기관에도 물어봤는데 상관 없다더라'고 상사에게 말할 근거를 듣고자 했다. 짧게 가부만 얘기해주고 끊기에는 위험해 보였던, 그래서 길어졌던 그 통화의 상대방은 공공기록물법에서 정하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었다.

현재의 기록학 대학원 학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문제 중 하나가 대학원이 공공부문의 기록관리를 가르치는 데에만 치중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기록학 이론이 '공공부문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에도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그 문제는 내려놓고 일단 이것부터 따져보고 싶다. (대학원과 교육원의) 교육과정이 정말로 공공영역에만 집중되어 있는가? 그러니까, 기록학 교육기관은 공공부문 기록관리에 대해서 '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먼저 대학원을 보자. 다른 전공 대학원에 비해 기록학 학위과정은 느슨한 편이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고 각자가 학부에서 공부한 전공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겠으나 바로 확인이 가능한 단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기록학 과정을 폐지한 학교를 제외하면 현재 25개 학교에 기록학 전공이 개설되어 있는데,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과 한국외대 일반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제외한 23개 학교는 모두 기록학 과정을 협동과정으로 개설했거나 문헌정보학/사학의 하위전공으로 운영하고 있다(아키비스트라운지의 '학위논문 현황(2023년 3월 기준)' 참고)는 점이다. 협동과정 교수진에게는 본 소속과 전공이 있으므로 기록학 연구와 교육에 시간을 쏟기가 어렵다. 

여기에 더하여, 다수 학생들이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고 있다. 직장인인 학생들을 감안해서 짜여진 시간표가 있는 학교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교양 과목이 아닌 전공 학문으로서의 기록학 수업은 대학원에서 시작되는데 전담 교수진 층은 얇고 전업 학생의 수는 적은 상황이다. 교육 과정이 제대로 운영되리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다.

심지어 학위논문을 쓰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는 제도를 이미 만들어 두었거나 마련할 예정인 학교들도 있다. 한 학기만 더 등록금을 내고 들으면 논문을 쓰지 않고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학교로서는 추가 등록금 수입을 얻는 동시에 교수가 논문지도 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 학생으로서는, 그저 비싼 자격증 하나를 얻는게 목적이라면 좋을 수 있겠다. 느슨한 학위 과정과 논문 없는 졸업. 학교와 학생 사이의 윈윈..일까?

교육원은 어떨까?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자격시험의 합격률이 낮아서 문제라고들 한다. 실제로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2024년도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시험 합격자 공고를 찾아보면 총 합격자 수는 13인이고, 합격자 중 가장 뒤에 있는 수험번호는 38번이다. 총 응시자가 38명이었다고 가정해도 합격률은 34.2%로 응시자의 절반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합격률이 낮은게 정말 난이도의 문제일까? 정보공개청구 결과 시험 문제는 비공개 대상이었기 때문에 실제 난이도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자격 시험의 합격 조건은 '각 과목 만점의 40% 이상, 전 과목 총점의 60% 이상 득점'이다(출처: 행정안전부 공고 제2023-1730호 2024년도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시험 시행계획 공고). 난이도가 정말로 '극악' 이라고 한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응시자가 합격자보다 많을 때에는 다른 원인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건 아닐까. 정말 시험 문항이 문제라면 차라리 해결도 쉽고 빠를 것이다.

보통 중앙부처에 처음 임용된 기록연구사들을 '1세대'라고 지칭하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몇 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여전히 공공기관들만이 공공기록물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용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록 업계는 1세대에 머물러 있다. 필요가 아니라 강제에 의해 채용을 하니 기록전문가를 뽑는 조건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복합적인 요인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이지만, '기록관리에 대한 기관의 인식 부족' 같은 이야기는 그만 하고 내부에서 핵심 원인을 찾을 때도 되었다.

올해 기록인대회 주제(안)이 '아카이브의 확산과 기록공동체의 위기'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조직과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기록전문가'를 찾는 국면으로의 전환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기록 커뮤니티는 '아카이브'의 범람과 유행 속에서 오히려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딱히 길이 보이지 않아서, 또는 자신과 상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위기를 타개하는 첫 단계는 각 주체들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무분별한 전문가 양산을 멈추고 교육과정의 품질부터 확보하는 데에 있다. '공공영역에만 치중해 있다'는 커리큘럼만이라도 충실하게 교육해서 업계 동료들 간에 서로에 대한 일정한 기대와 신뢰를 의문 없이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힌트가 조금씩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석사과정 졸업 10년 후 박사과정에 들어갔다가 많이 변한 학교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던 1n년차 실무자 한 명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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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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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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