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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간의 퍼즐 맞추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슈타지(stasi) 아카이브의 재생

2024.08.02 | 조회 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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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아카이브가, 기록이 관심과 주목을 받을 때가 있다. 보통은 부정적인 일에 관련될 때이다. 대통령이 문서를 찢어서 변기에 버리거나(트럼프), 이첩한 공문이 부당하게 회수되거나(채해병 사망사건), 법인카드로 산 90만원짜리 빵집 영수증이 발겨되거나...버려지거나 훼손되거나 망실된 어떤 것들은 그제서야 기록으로 보인다. 

유네스코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된 343곳의 문화유적지 목록을 발표했다. 이 목록에는 31개의 박물관과 함께 127개의 종교 유적지, 151개의 역사적 또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물, 19개의 기념물, 14개의 도서관, 1개의 기록보관소가 포함되어 있다. 

Unesco verifies damage to 343 cultural sites as war in Ukraine enters third year(2024.2.29.)

지진과 전쟁의 위협이 커지는 2024년의 한국에서 유네스코의 발표는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시설은 안전할까. 아카이브는? 전쟁과 기후 재난의 시대를 아카이브는 견딜 수 있을까? 어쩌면 문화시설의 파괴는 건축의 견고함 등과는 상관없는 문제일까? 의도적 파괴를 막을 방법이 있나?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의 문화시설을 표적 공격할까? 전쟁의 목적 중에는 그런 것도 포함되어 있는걸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근현대 유럽의 역사를 돌아보면 러시아가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독립 전쟁의 역사일 것이다. 역사는 종이에 기록으로 남아 애국심을 고양시키고 국민들을 한 곳으로 뭉치게 한다. 역사와 기록과 문화는 그런 수단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문화와 자료, 기록의 파괴와 노획은 전쟁사의 숨은 장면들이다. 

찢긴 슈타지 기록의 복원 장면. 출처 : The World's Largest Puzzle? Recreating Germany's Destroyed Stasi Files https://www.wnycstudios.org/podcasts/takeaway/segments/recreating-stasi-files
찢긴 슈타지 기록의 복원 장면. 출처 : The World's Largest Puzzle? Recreating Germany's Destroyed Stasi Files https://www.wnycstudios.org/podcasts/takeaway/segments/recreating-stasi-files

역사적으로 아카이브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파괴와 멸실은 슈타지(stasi)를 손에 꼽는다. 동독 권력을 사납게 호위한 비밀경찰, 그들이 수십년간 만들고 관리한 슈타지 아카이브는 독일 통일 즈음부터 맹렬히 파괴된다. 슈타지 요원들은 한밤중에 온 힘을 다해 그 기록을 찢고 태우고 파괴했다.

한편 잘게 찢어지고 반쯤 소각된 그 기록들을 살려내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역시 아카이브에서 일한다. 아카이브로 모였던 기록을 아카이브 스스로 파괴하고, 다시 아카이브에서 복원되는 장면은 유럽의 역사, 아니 인간의 역사처럼 모순되고 복잡하다.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지는가. 

1992년 1월 통일 독일 정부는 9천개의 색인으로 분류한 111km에 달하는 슈타지 아카이브를 공개했다. 정확히는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 공개는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국가 기밀의 공개였다. 파괴된 슈타지 아카이브의 복원이 시작되었다.  

슈타지 아카이브의 색인 시스템(베를린)
슈타지 아카이브의 색인 시스템(베를린)

지난 30년 동안 베를린의 슈타지 아카이브 센트럴은 수작업으로 때로 겨우 컴퓨터 비저닝(visioning) 기술과 스캐너의 도움을 받아 복원을 진행했다. 진척은 극도로 느렸다. 찢어진 기록의 파편을 확인하고 이어붙이기 위해 내용을 아는, 대강을 추정할 수 있는 수십명의 전직 스파이와 정보원도 참여했다. 아키비스트들도 이 퍼즐 맞추기에 진심이었다. 다만 30년 동안 겨우 5%를 복원했고 이 속도라면 앞으로 600년 이상이 걸린다는 계산은 모두 애써 무시하고 싶어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런 일을 계속 해야 할까. 

찢어진 슈타지 기록이 담긴 자루를 보관중인 슈타지 아카이브. 출처 : Piecing Together the Secrets of the Stasi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4/06/03/piecing-together-the-secrets-of-the-stasi 
찢어진 슈타지 기록이 담긴 자루를 보관중인 슈타지 아카이브. 출처 : Piecing Together the Secrets of the Stasi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4/06/03/piecing-together-the-secrets-of-the-stasi 

Aufarbeitung(아우프아바이퉁)  : 정리, 정비. 과거 사건이나 문제를 철저히 분석하고 평가하여,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과정이나 활동

서독과 동독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 지 두 달이 지난 1990년 1월. 10,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슈타지 센트럴을 점거했다. 동독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주도했고 지역 경찰도 협력했다. 시위대는 기록이 파괴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모였다. 동독 곳곳에 흩어진 슈타지 사무실 근처에서 소각 연기가 관측되던 때였다. 

통일 독일 정부는 슈타지 기록의 공개를 결정했지만, 그 자체는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없애자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살리고 보존하자고 주장했다. 각각의 주장은 나름의 일리를 갖고 있었다. 파일이 공개되기 시작하면 광범위한 사찰의 관계와 규모가 드러날 것이고 그것은 동독 사회를 파괴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수십만명이 서로를 감시하고 기록으로 만들어 보고하여 보존했던 슈타지 파일은 '통일' 독일의 유산이었다.   

수백만개의 파일과 2백만장의 사진, 슬라이드 필름. 2만개의 오디오 녹음 테이프, 3천개의 비디오, 4천 6백만개의 색인 카드(슈타지 아카이브의 정리기술이란!)는 슈타지 센트럴 아카이브와 12개 지역 아카이브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훼손된 기록은 16,000개의 자루에 담겨졌다. 

슈타지 아카이브의 '퍼즐러'(puzzler) 중 한 명인 디터 티에체(Dieter Tietze)는 올 해 65세로 인생의 절반을 아카이브에서 일했다. 나이가 들면서 서류 정리와 이동하는 일이 힘에 겨워 '퍼즐 맞추기'로 직무를 옮겼다고 한다. 그는 이전의 슈타지처럼 성실하게 매일 아카이브에 출근하여 퍼즐을 맞춘다.  

"이 일을 잘 하려면 평화가 필요합니다." 

"게임과 탐정 업무가 결합된 일이죠."

보통 1년 동안 2,000~3,000 페이지를 작업할 수 있는데, 퍼즐러들은 그동안 170만 페이지를 재구성했다. 500개 자루 분량이며 15,500자루가 남아 있다. 이것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출처 : The Stasi files: Germany’s 600-million-piece puzzle https://edition.cnn.com/2014/11/07/world/europe/stasi-files-east-germany-secret-police/index.html 
출처 : The Stasi files: Germany’s 600-million-piece puzzle https://edition.cnn.com/2014/11/07/world/europe/stasi-files-east-germany-secret-police/index.html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디지털 덕분이다. 디지털의 힘을 이 지난한 '접착'에 응용한 사람은 베를린의 머신 비전(Machine Vision) 전문가인 베르트람 니콜라이(Bertram Nickolay)다. 그는 아카이브의 퍼즐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이 머신 비전 분야에 흥미로운 일임을 알아챘다. 종이 조각을 스캔하고 이미지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서 맥락을 분석하여 조립한다. 니콜라이의 구상은 그랬다. 그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e-puzzler라고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아카이브의 일이 그렇듯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공식 예산을 지원받기까지도 3년이 걸렸는데 알맞은 스캐너가 없어서 2014년까지 겨우 23개의 문서 자루를 복원했다. 애초 400개를 예상했던 일이었다. 힘이 빠졌고 프로젝트는 다시 긴 소강 상태에 빠졌다. 

2023년 가을 슈타지 아카이브가 디지털 접착 프로젝트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제안서를 모집하면서 새로운 동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십여년 전 e-puzzler를 시험했던 니콜라이는 베를린의 머스터패브릭(MusterFabrik)에서 여전히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지하철 공사로 무너진 아카이브의 잔해를 붙였고, 폭탄 테러로 불에 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대인 센터의 문서도 그의 손을 거쳐 다시 온전히 복원됐다. 그 사이 기술은 마법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고 빨라졌는데 그는 이제 일흔한살이 되었다.

슈타지 아카이브 전시관(베를린)
슈타지 아카이브 전시관(베를린)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5년이 흘렀는데 정부는 여전히 이 일에 관심이 있을까. 예산을 줄까. 35년 간의 폭로로 정의가 드러났을까. 사람들은 복원된 기록으로 상처를 치유했을까. 아니면 오히려 상처를 입었을까. 1992년 이래 3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슈타지 파일을 열람했다고 한다. 슈타지 아카이브는 작년에만 3만건의 새로운 요청을 접수했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기록을 찾기도 하지만 후손인 2세, 3세들도 종종 신청을 한다고 한다.     

슈타지 아카이브가 온전히 복원되려면 아무리 첨단의 기술을 사용해도 수십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컴퓨터는 스스로 자루를 풀어 문서 조각을 한 장씩 꺼내어 스캔하는 일을 하지는 못한다. 슈타지 아카이브에서는 인간 퍼즐러와 e-puzzler가 협력한다. 그 일은 여전히 고단하다. 복원된 자루의 갯수를 세어 정부에 성과로 제출해야 하는 일이며, 늙어가는 동독 아키비스트의 뒤를 이을 사람을 뽑는 일이다. 예산을 만들어 서고를 세우고 애써 복원한 기록이 다시는 흩어지지 않도록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아카이브의 일이 대개 그렇듯. 그 사이 우리에게 또 다른 비극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  

참고 자료

1. Piecing Together the History of Stasi Spying : Researchers undertake the massive task of recreating millions of torn-up records that the East German secret police hoped to destroy. (NYT, 2021)

2. Piecing Together the Secrets of the Stasi : After the Berlin Wall fell, agents of East Germany’s secret police frantically tore apart their records. Archivists have spent the past thirty years trying to restore them. (The Newyorker, 2024) 

3. 'Puzzle Women': Piecing together the files destroyed by East Germany's secret police (Youtube)

4. Stasi Records Archive(슈타지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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