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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연구자로 살아가기

2024.10.23 | 조회 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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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가까운 일 같지만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기록관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어느 대학원에 입학하면 좋을까 학교들을 찾아보던 중, 나는 A학교를 선택했다. 당시 학과 홈페이지에 졸업한 선배들이 취업한 곳을 적어둔리스트를 보았는데, 모 연구원에서 일하거나 일했던 선배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난 대학원 입학 전, 기록학의 학계와 업계에 대해 잘 모를 때부터 ‘연구원’이라는 이름에 끌렸다. 

기록연구사 혹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아닌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건 대학원 석사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이었다. 의외로 기록관리 공부가 재밌었고, 명확한 정답 보다는 함께 논의해서 만들어가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 좋았다. 당시 어수선 했던 외부의 압박(?)과는 달리,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하는 기록공동체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 업계에 오래, 깊이 있고 싶었다. 

석사 졸업과 동시에 박사과정을 입학하고 바로 전업연구자가 되었다. 나는 연구원에 들어갔다. 연구원에 있는 동안 바쁘고 힘들었지만, 많이 배웠고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그 시간이 즐거웠고 만족했지만, 연구원이라는 곳이 현실적으로 아주 멋드러진 곳은 아니었다. 공공기관 등의 연구사업을 수주해서 프로젝트를 했고, 연구원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연구는 많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럼에도 기록관리계 이슈를 대응하거나 정리하고, 기록관리계에 필요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 나간다는 것이 큰 만족으로 돌아왔다.  전문요원 자격을 갖춘 이후 부터 13년, 독립연구자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꽤나 큰 자기 만족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깊은 고민과 함께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기록관리계에서 전업 연구자로 사는 것은 가능할까? 

기록학계 박사 졸업자는 2024.2 기준 약 58명이다. (아키비스트라운지 ‘학위논문현황’에서 제시한 전국 기록관리 전공 대학원 리스트 기준으로, 박사학위논문 검색했다) 정확한 값은 아닐 수 있지만, 이 중 연구를 전업으로 하는 연구자는 약 10명 이내 정도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도 현재 전업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은 더 적다. 기록학 박사학위를 가진 전업 연구자는 왜 이렇게 적은걸까? 기록학이 실용학문이고,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후 박사과정에 진학한 사람도 많은 것이 하나의 이유일테지만, 실제 석사 등을 졸업 후 연구를 시작했다가 다시 기관으로 가는 동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연구를 전업으로 하기 위한 연구기관 및 연구 일자리가 전무하고, 수입이 불안정하며,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우리 내부의 인식은 전업연구자라는 길을 택하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연구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전업연구자가 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기록관리계의 유일한 연구원이었던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과거에 비해 활동규모가 많이 작아졌고, 외대와 명지대 등 대학원 내 연구소들은 활동 또한 많지 않다. 학교 내의 연구소는 학과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면이 크고, 연구자들이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구조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률이 제정된지 25년여 지난 시점에서 기록관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정책연구기관은 물론 전문연구기관이 없고, 이는 국가 기록관리 정책 연구 부재로 이어진다. 국가기록관리의 다양한 이슈와 문제를 중심에 두고 학문적 지식을 동원하여 개선안을 도출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따른 국가기록관리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록관리가 세상의 변화에 겨우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발맞추어 성장하고, 해외 사례 벤치마크를 넘어 우리나라만의 기록관리 미래모델을 만들어 나가려면 더 많은 연구와 연구자가 필요하다.  

박사를 한 연구자들의 강의, 교수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25개의 국내 기록학 대학원 중 다수가 문헌정보학과와 사학과의 전공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협동과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록학 전공 교수의 자리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현재 기록학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들이 퇴임을 하신 후, 그 자리는 사학과나 문헌정보학과를 전공한 교수의 TO로 채워진다. 2017년 국가기록관리혁신T/F의 국가기록관리 혁신방안에서도 비전공 교수 및 시간제 겸임교수에 의존하는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이는 기록물전문가 양성과 학문적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환경은 전업연구자들의 불안정한 생활로 이어진다. 공공기관의 연구 사업은 일시적 프로젝트일 뿐이고, 개인의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은 연구재단의 지원사업이 유일하다. 때문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나의 연구자 생활을 나보다 더 불안해하거나 걱정스러워 했다. 실제 연구자로 지내는 지금까지도  기관에 취업을 해야 한다, 기록학은 실무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걱정어린 말들을 끊임없이 들어왔다. 

어쩔 수 없다. 전업 연구자의 삶을 선택했으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내 나름의 의미있는 연구와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 밖에 없다. 

나는 나와 같이 연구를 전업으로 하는 동료들이 기록학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기관에, 대학에, 그 외 다양한 아카이브의 연구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각자의 역량을 펼치면 좋겠다. 기록전문성을 가진 동료들과 끝없이 토의하고 논쟁하며 ‘기록관리 너무 빨리 변한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연구했으면 좋겠다. 

실무자의 좋은 자리 뿐만 아니라 연구자의 자리도 만들어지기를, 전업 연구자로 활동하고 경쟁하며 결과가 기록관리의 연구 수준으로 이어지기를 깊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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