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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시대, 기록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역 기록자의 끝나지 않는 고민과 성찰

2024.08.05 | 조회 1.1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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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도시에서 예산이 투입되는 재생사업이란 산업시설이 이전하여 일자리가 사라지고, 건물은 노후화되었으며, 젊은 사람은 일자리와 편리한 주거환경을 찾아 빠져나가고 어르신들만 남아 활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사업을 통해 오래된 구조물과 옛이야기를 마을의 콘텐츠로 다듬고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관광지로 탈바꿈하겠다거나, 마을주민들을 교육해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겠다는 헛된 희망들 속에서도 지역소멸은 여지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지들 중에는 마을기록화 사업이 중요한 콘텐츠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문가가 주민을 인터뷰하고, 사료들을 정리하여 책자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주민들이 나서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업이 기획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의 사업을 맡게 될 때, 마을기록 사업이 그저 유행하는 콘텐츠가 되지 않기를, 기록한 내용이 관광 자원으로만 취급받지 않기를, 의도치 않게 헛된 희망만 심고 사라지는 그들과 공범을 저지르는 기록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를 위해 어떤 입장에서 기록해야 할지, 시민 기록자들과는 무슨 성과를 남겨야 할지 여전히도 고민이다. ‘그나마 예산이 있을 때 기록을 잘해 놓자’, ‘그저 좋은 이야기만 남기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자생각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 이전에 지역민들에게 기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민이다.

지난해 부산에서 도시재생 사업으로 유명해진 산복도로 관광지 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을 기록하는 사업을 의뢰받아 교육과 워크숍을 몇 회차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맡은 교육은 주민들이 기록의 의미를 알고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다른 마을의 기록사례를 소개하는 강의였다. 이들의 반응은 다른 마을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은 달랐고 아직도 배울게 많은 강사를 적잖이 긴장하게 만들었다.

어떤 관광객이 자기 아이에게 너 공부 안 하면 이런 곳에서 살게 된다라고 우리 앞에서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마을을 기록하고, 마을을 좀 더 가꾼다고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살까요?”

이 마을은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어 각종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쳐 나지만 정작 상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마을 주민이 아니고, 기존의 주민은 상당수 떠나버려 빈집이 넘쳐나게 된 곳이다. 남은 주민들은 화려한 관광지 뒷골목, 관광객에게는 구경거리가 된 주거 환경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도시재생사업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사실 이번 기회가 첫 방문이었는데, 이들의 삶의 환경은 내가 갔던 마을들 중에서도 열악한 곳임을 확인했다.

이런 환경에서 마을기록은 주민의 관점에서 자기 지역의 역사를 남기고,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자원을 남기며, 주민들에게는 마을에 대한 소속감과 정주성을 높여 준다는 등의 나의 이야기는 스스로에게도 설득력이 낮았다. 이들의 반응은 기록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내게 다시 던져주었다. 또한 그저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기록하면 되었던 이전의 마을들과 달리 이런 곳에서의 기록은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나는 그 기록을 할만큼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록자인지 성찰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물론 헛된 희망을 유도하는 자들처럼 주민이 아니더라도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 마을이 발전할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살러 오기는 만무하고, 남아있는 주민들은 조금이나마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날 것이고, 불편한 점은 수만 가지여도 마음 만은 편해 계속 살아가는 노인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떠날 것이니, 관광의 열기가 떨어질 때 즈음 이곳은 재개발 지역이 되거나 재개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소멸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록이 무엇이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우선은 그 소멸의 과정을 기록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등바등 지역소멸에 대응한다는 헛된 희망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 지역이 된 이유와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말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 마을이 아니더라도 수도권으로의 청년 유출은 가속화되고, 지역과 중앙의 양극화, 개인의 삶의 질의 양극화 속 생존 경쟁은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구직난과 구인난의 불균형, 저출산 등의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그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며, 그 이유를 밝히는 데 필요한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른체하거나 진짜 모르는 이들도 있으나, 많은 이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해관계를 따지며 위정자들은 쉽게 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할(않을) 것이고, 그래서 지역소멸은 필연적이다. 이때 기록은 먼 훗날 그나마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와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를 전해 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지역을 소멸하게 만들었는지도 알 수 있게 할 것이라는 헛되지만 그게 그나마 기록이 할 수 있는 일일 거라는 기록자의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그러기 위해서 그저 도시재생사업이 싫어 발길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태도를, 어디든 그저 재밌고, 되새김질 하기 좋은 기억이 많기만을 바랬던 나의 기대를 반성한다.

아직도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한 고민과 배울 것이 산적한 기록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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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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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하는어피치

    0
    2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지구별여행자

    0
    about 2 months 전

    산복도로 답이 생각나시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문제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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