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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가 필요해

오픈소스 연대기 1

2024.07.22 | 조회 624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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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여행자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소프트웨어가 필요해"

2012년 봄 어느 토요일, 기록관리교육원 수업이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걸로 대체됐다. 기록관리란 걸 배운 지 한 달 남짓이어서 별 감흥 없이 행사에 참석했다. 학술대회 제목은 ‘아카이브의 단층과 일상의 심층’이었다. 명지대에서 열린 이 행사의 요지는 공공에서 민간으로 기록화 대상과 주체를 다변화하자는 거였다. 이 때만 해도 공공기록관리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는 인식이 있었다.

오전 두 번째 순서로 단상에 오른 MoA의 아키비스트 피오나 커리지는 화면 가득 기록들을 펼쳐놓았다. MoA(https://massobs.org.uk/)는 케임브리지대 인류학과 학생이었던 톰 해리슨이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산업도시에서의 인간의 활동을 기록한다는 취지로 1937년에 시작되었다. 이 컬렉션에는 에세이가 많았는데 당시 2차대전을 겪던 영국인들의 궁핍한 일상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생각이 담긴 기록들을 보며 개인기록이 시대의 디테일을 다채롭게 반영한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런 기록을 다루면 재미있을 텐데. 행정법 공부나 하고 있는 게 한심했다. 가슴이 좀 두근거렸다. MoA 때문인지 나머지 발표는 따분하게 느껴졌다. 근대화, 인식론, 생활사 블라블라… 같은 일상기록인데 역사나 기록관리하는 사람들은 왜이리 어렵게 얘기하는 걸까? 오후 늦게 시작된 종합토론에서 김익한 교수의 한 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우리가 시민기록에 접근하려면 새로운 관점과 함께 ‘기술’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김익한 교수는 분명히 ‘기술’이나 ‘도구’라 했던 것 같은데 내겐 ‘소프트웨어’로 들렸다.

‘나는 MoA 같은 걸 만들고 싶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찾아야 한다’

행정법 혐오가 엉터리 논리회로를 완성시켰다.

MoA 컬렉션을 관람하는 엘리자베스2세 (MoA Annual Report 2013-2014)
MoA 컬렉션을 관람하는 엘리자베스2세 (MoA Annual Report 2013-2014)

 

그건 바로 ICA-AtoM 이었어!

학술대회 이후 MoA는 명지대와 ‘5월 12일 일기 수집 프로젝트(12th May Diary Project, https://massobs.org.uk/the-archive/12th-may/)’를 매년 같이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명지대는 인간과기억아카이브라는 실험실을 만들었다. 난 교육원을 마치고 이 재미난 곳의 아키비스트가 되었다. 출근 첫 날 기증서식 만드는 걸 시작으로 수집된 기록을 아카이브로 관리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카이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작년 5월 12일 일기가 500건이나 수집됐고 교수님들 기증기록과 수업 아카이브까지 기록이 쌓이고 있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써야 할까? 상용 소프트웨어는 논외였다. 작은 단체들도 쉽게 쓸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사진은 플리커, 영상은 유튜브, 음원은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면 퍼블리싱은 해결된다. 그런데 관리는? 모든 게 한 번에 해결되는 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래서 아카이브용 전문 소프트웨어를 쓰나 보다.

원장실을 서고로 만드느라 대학원 10층을 뒤집어 엎던 어느 날, 세미나실 서가에서 누런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봉투 안에는 겉면에 ‘ICA-AtoM’이라 프린트된 문서가 있었다. 훑어보니 이상민이란 분이 ICA 총회에 다녀와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였다. 놀라운 사실은 ICA가 직접 소규모 아카이브를 위한 기록물 기술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찾던 게 바로 이거 아닐까? 아니 이거여야만 해! 이상민님 뉘신지 몰라도 땡큐 베~리 머치.

(ICA-AtoM 공식 버전이 공개된 건 2010년이었고 누런 봉투를 발견한 때는 2013년이었다. 그 해 겨울 AtoM 워크숍에서 이상민 선생님을 처음 만나 ICA-AtoM 썰을 한참 들어야만 했다)

ICA-AtoM으로 아카이브를 만들 수 있다고 보고하니 다들 좋아했다. ICA가 만들어서 믿을만하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ICA 기술표준 4종이 내장되어 있어 대학원 수업에도 사용하기 좋을 것 같다. 당장 ICA-AtoM 홈페이지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피오나 커리지에게 작년 수집 결과를 공유하기로 했는데 엑셀목록 대신 디지털 아카이브 링크를 보내주리라.

인간과기억아카이브 첫 설계안
인간과기억아카이브 첫 설계안

 

클라이언트와 서버: 내 노트북엔 AtoM이 설치되지 않는다

ICA-AtoM을 설치해야 한다. AtoM 홈페이지에 가 보니 Documentation 메뉴가 있었다. 모든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은 프로젝트 소개나 매뉴얼을 꼼꼼히 만들어 놓는다. 이용자 매뉴얼의 설치(Install) 방법을 열어 보니 쉽게 될 일이 아니었다. 설치파일(.exe .dmg .pkg)을 다운로드 받아서 더블 클릭한 후 설치 위자드 안내에 따라 다음 다음 클릭만 하면 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ICA는 이런 것 하나 알잘딱깔센 편하게 안 만들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암튼 다른 방법이 없으니 꾹 참고 이 고비를 넘겨 보자.

우선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CPU가 2개 이상이고 메모리가 7GB, 하드디스크가 50GB 정도면 된다니 내 맥북의 반절도 안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제목에 보니 ‘서버’라고 써 있다. 서버가 뭔데? 찾아보니 우리가 쓰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탑, 스마트폰은 클라이언트였다. ICA-AtoM은 ‘클라이언트’가 아닌 ‘서버’라는 컴퓨터에 설치하는 거였다. 왜냐하면 AtoM은 서비스 제공자니까.

클라이언트 서버 모델 개념도
클라이언트 서버 모델 개념도
AtoM의 아키텍처 (AtoM은 하단의 Application server에 설치된다)
AtoM의 아키텍처 (AtoM은 하단의 Application server에 설치된다)

 

그렇다면 내 맥북과 서버용 컴퓨터는 어떻게 다른가? 서버는 네트워크에 항상 연결되어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처리해야 하므로 보통 고성능 프로세서, 대용량 메모리, 고속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24시간 꺼지지 않고 돌아가려면 전원공급장치나 팬 등 시스템 안정성과 열 관리 장치가 중요하다. 하긴, 내 노트북을 24시간 켜놓는 일은 드문데 서버 컴퓨터는 꺼지지 않아야 하니 확실히 안정적이어야겠네. 그리고 서버 운영체제에는 GUI가 없다.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하는 그런 화면은 없고 CLI(Command Line Interface) 방식으로 명령어를 입력하여 작업을 처리한다.

올서버(allserver.co.kr) 홈페이지에 가니 150만원 정도면 ICA-AtoM을 설치하고도 남을 서버를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아래 그림의 HP 서버는 랙형으로 전산실 랙마운트에 꼽을 수 있는 형태이다. 원한다면 타워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요즘엔 서버를 구매하기보다 카페24나 AWS에서 클라우드 서버를 호스팅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작은 규모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운영한다고 가정할 때 대략 월 3~6만원 정도의 호스팅비가 청구된다.

HP 서버 구매정보
HP 서버 구매정보

ICA-AtoM 설치 실패

우리는 서버를 구매하기 전에 대학원 홈페이지 서버에 설치해 보기로 했다. 나보다 개발 경험이 많은 동료 아키비스트는 홈페이지를 개발하고 운영하면서 리눅스 서버를 다뤄본 경험이 많았다. 다만 ICA-AtoM을 설치해 보는 건 처음이라 매뉴얼을 보며 한 줄 한 줄 명령어를 실행했다. 우측 목차에서 보듯이 Ubuntu 20.04 운영체제 위에 모든 게 이루어진다. 우선 AtoM을 설치하기도 전에 데이터베이스인 MySQL, Elasticsearch 검색엔진, PHP 프레임워크, 기어맨 잡서버, 기타 패키지를 설치해야만 한다. AtoM을 설치한 이후엔 데이터베이스를 생성하고, 인스톨러를 실행하고, 시스템 설정과 방화벽 설정까지 해야 AtoM 첫 화면을 볼 수 있다.

수퍼유저가 명하노니 MySQL 설치해라!

 $ sudo apt install mysql-server

잘 된다..

잘 된다..

된다..

된다..

안된다..

수행해야 할 명령어가 100개쯤 되나 보다.

첫 날도, 이튿날도 같은 곳에서 에러가 난다. 매뉴얼의 설명이 잘못된 건지 우리가 잘못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저 쪽에서 앗~싸! 소리가 나면 달려가 부둥켜 안고 자축하고 싶은데 이놈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들은 도무지 설치가 안 된다. 너무 괴롭다 ㅠㅠ

AtoM 2.8 설치 매뉴얼
AtoM 2.8 설치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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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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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rol44

    0
    3 months 전

    다음 이야기가 매우 궁금합니다!

    ㄴ 답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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