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에세이 연작 <상호불가침독백> #3 - 드라이브 유어 카

4주간 진행되는 BOKEH의 에세이 연작 기획.

2024.03.28 | 조회 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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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상호불가침독백


상호불가침독백이란?

3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4주 간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BOKEH의 에세이 연작 기획 '상호불가침독백'이 연재 됩니다. 매 주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BOKEH의 상욱/윤 에디터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상호불가침독백'이라는 제목처럼, 누구에게도 침범 받지 않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아 전해드립니다.

 


#3 드라이브 유어 카

 

 이번 주의 주제는 '아버지/어머니의 차에서 들은 음악'이다. 부제인 <드라이브 유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제목에 말장난을 조금 덧붙였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러닝타임은 정말 길다. 세 시간에 육박하는 기나긴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은 조용히 달리는 빨간 사브* 안에서 애써 피해왔던 자신의 과거를 천천히 마주한다. 이번 <상호불가침독백>에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는 가벼운, 두 에디터의 유년기를 자동차 속의 음악을 통해 전한다. 

 

*사브: 스웨덴의 자동차 브랜드.

 

#3 서문: 상욱


상욱

 

첨부 이미지

 지누션 3집 <THE REIGN>, 노브레인 1집 <청년폭도맹진가>, 김광석 4집 <김광석 네번째>.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아반떼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세 장의 앨범이다. 물론 시기에 따라 <노트르담 드 파리> OST, 산울림 히트곡 모음집, 춘자 메들리 시리즈 등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시기에도 저 세 장의 앨범은 약 15년간 달렸던 은색 아반떼만큼 꾸준히 흘러나왔다. 2000년대 초반은 MP3를 차에 연결해서 듣는 것이 아주 보편적이지는 않은 시대였기에 실물로 가지고 있는 몇 없는 앨범들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는 일이 지금보다 쉬웠겠지만, 그런 시대적/환경적 요인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가족이 이 음악들을 꽤 좋아했기에 그만큼 오래 함께하고 내 기억에도 또렷하게 남지 않았나 싶다.  

 온 가족의 하나의 음악을 듣던 시기는 저 아반떼를 중고로 팔며 끝이 났다. 내 머리가 조금 더 굵고 우리 가족의 차도 흰 색 승용차로 바뀌었을 무렵(내가 차에 관심을 가진 것은 3살 즈음이 마지막이라 아직도 정확한 차종을 모른다)세상에 한 가지 작지만 커다란 돌풍이 불고 있었다. 모두가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MP3, 혹은 MP3 기능이 탑재된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이어폰을 꽂은 채로 길을 걸었다. 올해로 36년째 여고 교사를 하고 계신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반장이 수학여행 버스에서 다같이 들을 음악 CD를 구워오는’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이다. 전체주의여, 안녕! 

 아이들에게 하나 둘씩 2G 폴더폰이 생기고, 좀 더 여유를 부리는 녀석들은 아이팟과 미키 마우스 MP3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던 2008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내 최고의 관심사도 다른 아이들처럼 ‘첫 핸드폰’이었다. 갖고 싶다 조른다고 될 일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에-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조르는 게 빨랐을 것 같다-영어 학원의 주간 시험에서 95점 이상의 성과를 내면 핸드폰을 사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결국 다음 주 시험에서 97점을 받아내었고 나는 기세등등하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대리점으로 가 핸드폰을 얻어내었다. 

 최신이자 최고가를 자랑하던 8집 <Atomos>의 리드 싱글인 <Moai>로 복귀한 서태지가 홍보하던, 이름하야 ‘서태지 폰’이었다. 24년에 보기에는 서태지가 광고했다고 ‘서태지 폰’이라고 부르는 작명 센스가 좀 이상하다 싶겠지만 00년대 후반-10년대 초반 핸드폰 기기 작명은 대부분 저런 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서태지 폰’의 MP3에는 <Atomos>의 수록곡인 <Moai>와 <Human Dream>, <T’ik T’ak>, 그리고 <Bermuda (Triangle)>이 들어 있었고, 구매 사은품으로 MP3 다운로드 사이트의 20곡 무료 다운로드 쿠폰을 함께 주었다는 점이다. 12살의 나는 핸드폰에서 우연히 듣게 된 서태지의 음악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함께 받은 다운로드 쿠폰으로 서태지의 앨범들을 찾아 들었다. 내 인생의 첫 디깅이다. 

 당연히 한 번 디깅을 시작하니 20곡이라는 양이 성에 찰리가 없었다. 당장 용돈을 쪼개 매달 30개의 곡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정액제를 결제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여름방학이 될 즈음에는 내가 사 모은 음원들만 약 300곡이 넘어갔고, 그쯤 되자 내게도 서툴지만 약간의 경향성을 가진 취향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아예 가족들과 한 차에서 같은 음악을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 사춘기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취향의 이유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만큼 기준이 확실하지 않은 청자였기에 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한 탓일수도 있겠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가족 모두가 함께 듣는 음악은 사라졌다. 

 그 뒤로 10년이 조금 넘게 지난 재작년 즈음, 차가 한 번 더 바뀌었다. 운전자인 어머니의 로망인 ‘크고 튼튼하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 볼보’는 아니었지만, 은퇴가 가까워지는 부모님의 새 취미인 캠핑에 맞는 큼지막한 SUV였다. 약간은 놀라운 사실인데, 새 차에서는 가족 모두가 함께 듣는 음악이 종종 생긴다. 함께 어딜 가는 길이면 운전 내내 내가 선곡한 곡들을 틀기도 하고, 출퇴근 길의 플레이리스트를 내가 짜기도 한다. 지난 10년 간 나의 취향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청자로서 구력이 쌓이기도 했고, 가족과 덜 부딪힐 수 있는 심리적 유연성이 늘어났으며, 이런 음악은 뭐가 좋은지 이해가 안된다는 부모님에게 이제 나이 먹어서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느려졌다고 맞받아칠만큼 뻔뻔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가 골라 틀어놓은 노브레인, 지누션, 김광석의 앨범을 듣고 자란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차에서 가족들과 들을 음반을 고른다.

 이처럼 나의 부모가 하던 일을 내가 부모한테 돌려 줄 때 내 삶도 지나온 시간들이 꽤 길었음을 실감하곤 한다.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의 역할도 돌고 돌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삶은 참 독특하고도 지루한 연속성을 가진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유난히 오늘의 글에서 시원한 결론을 내리고 못하고 미적지근한 소리들만 늘어놓은 것 같아 머쓱하지만, 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일들의 연속이지 않나. 

 

 

 추신. 위에서 언급한 95점이 넘으면 핸드폰을 사주기로 한 영어학원의 시험에서 핸드폰을 너무 가지고 싶어 컨닝을 했다. 15년 가까이 지난 이제서야 이 자리를 빌려 죄를 고백한다.

 


 

첨부 이미지

 나는 언제나 과거를 향해 있다. 과거는 아늑하고 안전한 데가 있으니까. 내 영구치가 다 자라지도 않았을 때 부모님은 아직 30대였고, 나는 가끔 차체에 새똥이 굳어 있던 아빠의 하얀 레조를 좋아했다. 부모님의 차는 CD와 테이프로 가득했고, 차를 타면 늘 음악을 들으셨다. 부모님은 내 유년의 첫 디제이들이었다.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멍 때리기를 좋아하던 어린이는 트렁크 좌석의 구석진 곳에서 창밖을 구경하곤 했다. 음악을 들으면 자주 했던 차멀미를 잊을 수도 있었다. 따로 듣고 싶은 게 있으면 차 안의 서랍을 열어 음반을 골랐다. 당시 하늘과 구름의 이미지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나는 열기구 사진이 커버였던 에어 서플라이의 베스트 앨범*에 완전히 꽂혔었다. 단지 그 사진이 압도적으로 어린이의 환심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 아빠의 오해로 나는 7080 올드팝을 많이 듣게 됐다. 아빠가 처음 보여주신 뮤직 비디오는 에어 서플라이의 <Goodbye>였고 처음 보여주신 라이브 영상은 퀸의 라이브였다. 그 노래 제목이 뭐였는지 보다 상의를 탈의한 프레디 머큐리가 맥주를 마시다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던 건 기억이 난다. 물론 가요와 최신음악도 흘렀지만, 아빠 차에 대한 향수를 떠올릴 때면 그 열기구 사진과 에어 서플라이의 음악이 선명하다.

 엄마의 음악 취향은 정말 다양했다. 언제는 빌보드 탑 백, 언제는 뮤지컬 넘버, 케이팝, 인디음악 등. 내 기억 상 그런 엄마의 차에서 자주 밴드 넬의 음악이 나왔다. 나는 꼭 넬이 나올 때마다 누구 노래냐고 물었고 엄마가 이라고 알려주면 어떻게 이름이 이야?” 되묻곤 했다. 아직도 <Goodnight>을 들을 때는 내가 영원히 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는 듯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친숙하고 익숙한 것에 끌리기 마련인지 이후 나도 학창시절 넬의 음악에 광적으로 빠져 들었고 그게 내 삶을 뒤흔들만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다. 부모님은 달마다 공CD에 다운로드 받은 음원을 구워 믹스테이프를 만드셨는데 유행가나 특별히 꽂힌 음악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담겨있었다. 내가 까다롭게 굴 때가 있었던 건지 초등학교에 다니기도 전에 부모님은 네가 듣고 싶은 걸 만들어 보라며 CD 굽는 법을 알려주셨다. 당시에는 소리바다를 이용하여 음악을 다운로드 받았었고 그걸로 나만의 믹스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고심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던 2000년대의 나와 쓸 데 없이 스트리밍 플랫폼을 세 개나 이용하는 현재의 나는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의 차에서 듣던 음악에 대한 감각은 공통적이고 개인적이다. 모두의 보편적인 과거는 저마다 다른 얼굴로 존재하고 있으니. 내 유년의 트렁크 좌석 구석자리는 이렇게 생겼다. 과거는 이젠 폐차된 아빠의 하얀 레조 같이 아득하고 가물거린다.

 

*Forever Love: 36 Greatest Hit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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