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에세이 연작 <상호불가침독백> #2 - No Job No Truth

4주간 진행되는 BOKEH의 에세이 연작 기획.

2024.03.21 | 조회 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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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상호불가침독백


상호불가침독백이란?

3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4주 간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BOKEH의 에세이 연작 기획 '상호불가침독백'이 연재 됩니다. 매 주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BOKEH의 상욱/윤 에디터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상호불가침독백'이라는 제목처럼, 누구에게도 침범 받지 않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아 전해드립니다.

 


#2 No Job No Truth

 

 어릴 적부터 내 상상 속에서의 ‘노동’은 마치 건조하고 서늘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같다. 차가운 현실을 따뜻한 눈을 빌려 다시금 시리게 이야기하는. 노동은 삶과 아주 밀접하게 이어져 있고 밥벌이에 대한 감상적인 표현을 경계한다는 상욱의 말처럼 카우리스마키 영화 또한 지나친 감상주의로 빠지지 않는다. 포크 음악가 김일두의 노래 <No Job No Truth>를 부제로 빌려온 이번 화는 우리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다.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물은 미지근하게 먹도록 권장된다. 오늘은 우리가 잠깐 스치거나 머물렀던 벌이의 역사를 서로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독백해보기로 한다. 어쩌면 가장 건강에 좋다는 미지근한 온도로, 녹차를 밥에 부어먹는 오차즈케의 맛처럼 슴슴하게.

"Catch a job, Catch a job, Catch a job…"

 

#2 서문: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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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백수다. 두 말 할 것 없이 완전히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 물어오면, 시를 쓰고 보케에서 글을 쓴다고 대답한다. 쓰는 일은 창작이고 따라서 노동이다. 글로 처음 돈을 번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 쓰던 휴대폰이 망가져 인터넷에서 중고로 아이폰 5를 샀다. 15만원이었다. 나는 부담스러운 지출 탓에 그 돈을 메꾸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마침 교실의 게시판을 보다가 시청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의 대상 상금이 15만원인 걸 알았고, 운이 좋게도 대상을 받았다. 그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시를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내가 ‘찰스 부코스키’의 환생,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는 언어의 마술사, 시인 최초로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인플루언서 작가가 아닌 이상 쓰는 일로 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택한 창작을 위해서 안정적 수입은 필수이므로 어쨌든 백수 겸 취업준비생이라고 하자. 일단 지금은 그렇다. (나는 등단을 준비하는 일도 일종의 취업 준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의 첫 노동은 최저시급조차 주지 않고, 급여일도 지켜진 적이 없으며, 그러므로 당연히 주휴수당도 지급된 적 없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이었다. 그러나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마땅히 일할 곳이 없었다. 나는 평일 낮 시간에 근무했다. 일 자체는 쉬웠고 매일 도시락에 김밥을 챙겨 출근했다. 퇴근 후에는 40분을 걸어 동네에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에 뒷산에 올랐다. 오랜만에 느낀 생활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 감각은 생각의 멈춤으로 이어졌고 멈춤은 또 다른 사유가 됐다.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언젠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계간집의 일부를 인용하려 한다.

우울증이 심화되면 잠에서 깨어나 여전히 사망하지 않은 자신을 목격할 때마다 신경질이 난다. 나는 이 신경질에 관해 비천하고 장황하게 서술하기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나가 매대에 자갈치나 바나나킥을 쌓으며 초월을 꿈꾸기도, 사랑하는 사람과 오므라이스 맛집에 들르기도, 타인의 운전석에 탑승해 대리운전 기사로서의 어렴풋한 새벽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차 신경질을 잊어버린다.* 

이후 그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베이커리 체인점, 맛집으로 소문난 중식당, 복합쇼핑몰 앞의 대형 카페, 놀이공원 일용직 등 지속적으로 일을 했다. 최근까지 일했던 곳은 홍대의 공상온도이다.

 노동이 주는 일률적인 하루가 보장되는 삶을 나는 동경하며, 성실한 일상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세상이 원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고, 그것이 늘 주류사회로의 편입에 대한 갈증으로 다가왔다. 만나는 어른들마다 왜 취업을 하지 않느냐고 하는 시기에 있다. 또 누군가는 지금 열심히 놀아두라고 한다. 나는 이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지금은 시를 쓴다고 말하지만 내년에는 다른 것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계속 쓸 수도 있고. 직장의 신입 사원이 된다면 사회의 일원으로서 현실에 허덕일 수도 있겠다. 의외로 적성에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이 들고 커피를 한 잔 이상씩 마시는 건 여전할거다.

 

* 양선형, <No-knowing>(계간 <자음과 모음> 2020년 봄 호/작가-노동)

 

사진 출처:

 


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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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벌이에 대한 감상적인 표현들이 싫다. 내게 밥벌이는 단 한 번도 감상적이었던 적이 없는, ‘해야 하니까하는 일이었고, 그런 멋진 말들은 책상 앞에서 펜대 굴려 엮어낸 말 같아 좀 짜증스럽다. 동네 투다리*에서 마주친 멀끔한 신사들의 언어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내가 주로 겪은 밥벌이의 현장에서는 그런 곱고 바른 말들이 안 나오는 것도 이 기분에 한 몫 했을 것이다. 한창 공사 현장에 나가 잡부로 일하던 시절, 현장 시찰을 나온 본사 임원이 감동적인 말로 현장직들의 사기를 북돋아보겠다는 욕심으로 아침부터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성실한 여러분들의 피와 땀으로 건실하게 지어지는뭐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남긴 적이 있다. IMF 이후 이어진 건설현장의 고용 불안정성이나, 성실하게 일해봤자 떨어지는 철근 맞고 쓰러지면 구급차 대신 봉고가 오는 본사의 산재 책임 회피에 대한 대책 요구 등 여러가지 비판과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연설이었지만, 시대의 문인이 와도 일하기 전 담배 태우고 커피 마실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이 남긴 니기미 씨벌 말 많네라는 한마디만큼 직관적이고 날카로운 말을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그런 걸 많이 물어보는 환경에서 자라기도 했고, 원래 글 쓰는 일과 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청년 실업 문제를 미리 걱정하는 차원에서 어른들이 많이 진로의 방향을 잡고 있는지 물어본다. 20대 초중반까지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답은 고객센터의 자동 답변처럼 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로 고정되어 있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라는 질문에도 비슷하게 답해온 기억이 있다. 지금도 뭘 만들고 꾸리는 것에 대한 욕심은 계속 있고, 그래서 BOKEH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저 말은 좀 사회적인, ‘감상적인답변이다. 그 판단의 근거는 나의 솔직한 마음같은 낯간지러운 것이 아닌 그걸 듣는 사람들이 나를 본인들의 사회에 받아들여주는 것을 느꼈음에 있다.

 그 질문의 기저에는 내가 잘 모르는 밥벌이의 방식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나 싶다. 사실 먹고 사는 것 뿐만 아니라 그냥 나의 존재 자체에 특별한 이유는 필요가 없지만, 유난히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 사회적 위치가 있다. 학력이든 직업이든 뭐든 애초에 남을 납득 시킬 종류의 문제가 아니지만 본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이 나오기를 바라며 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실례가 되는 말이라고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애초에 잘못된 질문에는 별로 답을 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런 질문을 해도 된다 생각하는 사람들을 사회가 오랫동안 교실에서부터 길러왔기에 개인의 상냥한 답변으로 지적하는 것은 바다에 담수를 두어방울 떨어트리는 일이기도 하고. 그냥 속으로 니기미 씨벌 말 많네라고 생각하며, 7할 정도 괴롭고 3할 정도 나쁘지 않은 밥벌이를 한다.

 

*투다리: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인 프랜차이즈 주점의 상호명. 다들 아실거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그 수가 많이 줄어 들은 것 같아 혹시 몰라 주석을 달았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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