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EH PLAYLIST #장마클럽
슬
두 달씩이나 우중충한 날씨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늘어지는 몸, 이상하리만치 센치한 기분과 함께하는 것과 같다.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끈적이는 바닥과 습한 공기에 쉽게 짜증이 난다. 장마철은 영국인들의 시니컬함에 공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간이다.
적당히 축 처지는 몸과 마음을 그대로 담은 두 곡, 창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감상에 젖어보자. *이런 분위기는 기회니까.
*유라, Mandong - 축
상욱
장마가 좋다. 어항 속 물고기가 된 기분이 좋다. 신발 속 철벅철벅 차오르는 빗물이 좋다. 습기를 머금어 짙어진 흙내음이 좋다. 장대비를 피해보려 애쓰다가 결국 빗속으로 뛰어들어 달리는 순간이 좋다.
모든 것은 순간이니 그 찰나에만 찾아오는 아름다운 일들을 놓치지 말자. 구름이 걷히고 눈이 아릴만큼 짙어진 녹음이 찾아오면 끝날 것 같지 않던 빗줄기도 내년에나 다시 만날 수 있다. 이번 주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쏟아지는 빗 속에서 함께하기 좋은 음악들을 골라 보았다.
윤
만약 내일 비가 온다면 사랑하는 사람이여 곁에 있어줘*.
눅눅하고 축축한 시간.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폭우 소식이 들릴 때면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딘가의 너무 많은 비들과 세상의 모든 빗줄기를 생각한다. 쏟아지는 빗물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쓸려가지. 나는 그런 기도라도 해본다. 올해 장마는 무사하길 바란다고. 긴 비가 그친 뒤에도 모두 만날 수 있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고.
*わらべ(warabe) - もしも明日が(만약 내일이)
**이수명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문학과지성사, 2011)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