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담는 시간: 토림도예 도예가 노트(김유미)_꼰냥

-읽다보니 친구가 그립고, 읽다보니 그릇 사고 싶다.

2023.06.12 | 조회 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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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전달자

바쁜 현대인을 위해, 책을 요약해 드립니다.

◎ 올해 봄, 경남 하동에 또 다시 다녀왔다. 처음 그곳에 갔던 건 코로나가 창궐하여 온 나라를 휘젓기 시작한 2020년으로, 그 가을에 결혼 3주년 여행으로 갔던 것이다. 낡고 낡은 고택을 고쳐 만든 숙소에는 햇볕이 넉넉히 들어와 연초에 몇 번 받은 수술로 지친 마음을 회복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입구에는 창고를 개조해 만든 듯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다실(茶室), 즉 주인장께서 운영하시는 차 마시는 공간이었다.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강원도에서 하동까지 결혼기념일을 보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며 30년 이상 묵은 보이차를 내려주셨다. 처음에는 흙인지 나무인지 모를 텁텁하고 쓴 맛이 어색했으나 낯선 공기를 익숙케 만드는 찻물의 온도가 차분한 대화와 어우러져 곧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나는 차에 푹 빠져서 아침마다 멍한 머릿속을 다도(茶道)로 풀어가기 시작했고, 틈만 나면 찻잔, 찻주전자와 같은 다구를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며 내일의 내가 오늘의 소비를 메꿔주길 소망하였다.  

 약 3년 만에 돌아간 다실에서 주인장께 이곳에서 마신 차가 내 인생에 ‘차’라는 키워드를 새기게 된 계기였다고 말씀드리며 다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2박3일을 차와 더불어 치유하고 돌아온 뒤 신간 정보에 설레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차를 담는 시간 ⓒ네이버 도서정보
차를 담는 시간 ⓒ네이버 도서정보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에서도, 또 반대로 바닥을 뚫고 들어간 상태에서도 도자기는 만들어야 하고 이 긴 반복의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평정을 느낀다. 이쯤 되지 그릇의 크기를 가늠하는 일보다 그릇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진다. ...(중략)... 오늘도 도자기를 다듬으며 나를 다듬는다. 완성된 결과물이 단단하고 아름답길 바라며.  -p.29

 이 책의 작가 김유미님은 배우자인 토림 신정현님과 함께 차 도구를 만드는 브랜드인 토림도예를 꾸려나간다. 첫 장은 <물레 앞에서>, 도기를 빚고 굽고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무한 반복되는 작업을 하는 모습이 피로감을 유발할 것 같지만 그것이 ‘좋아하는 일’이자 궁극적으로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읽는 내내 고요한 행복에 빠져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노역으로 변질된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책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꼰냥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책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꼰냥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누군가 어떤 시간에 어떤 곳에서 어떤 좋은 것을 보면 나를 떠올려줄까?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해 자신을 잃어가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아름다움을 나누고 스스로 충만히 가꿔가는 것, 그 기쁨을 이제 안다. 누군가 날 떠올릴 때 ‘그 사람 취향 참 좋았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p.107

 몇 해 전,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즉 사십 줄에 들어서게 되었다. 불혹(不惑),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쟁이이자 취미부자로 살았다. 하지만 요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굳히기 작업’에 들어가는 듯, 좋아하는 많은 것 중 특별히 좋아하는 몇몇 가지에 점점 안착하는 것이 느껴진다.

 책 속에서 작가 분은 도자기를 빚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차와 함께 사람들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관계를 이뤄나간다. 향, 도자기, 차, 그리고 사람들. 자신의 취향을 견고히 쌓아가서 캐릭터화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취향 공구리(!)작업은 작가분의 그것과 같이 나 자신을 표현하는 함축된 단어로 정리될 수 있을까?


115쪽 ⓒ<차를 담는 시간>
115쪽 ⓒ<차를 담는 시간>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우리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작은 실험들을 쌓아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달팽이의 속도로 아주 조금씩 조금씩. 움직임이나 변화가 잘 보이지 않지만 잠시 한눈팔다 돌아보면 저 멀리 성큼 가 있는 그런 달팽이. 우린 달팽이처럼 바쁘다.  -p.159

 2부 <차실의 계절> 속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난 뒤 3부 <우리만의 리듬으로>를 읽으며 마무리하다보면 마치 잔잔한 일본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든다. 작가분의 세상 속 중력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글귀를 보면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를 지키는 단단한 중심과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 느껴진다.

 달팽이는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정상을 정복해 나간다. (^_^)


2023년 봄, 하동 다실에서 차를 담는 시간 ⓒ꼰냥
2023년 봄, 하동 다실에서 차를 담는 시간 ⓒ꼰냥

 

차를 마시게 됨이 감사하다. 가족 간 대화의 장을 만들어주고, 혼자서 사색에 빠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한숨 쉬어갈 여유를 만들어준다. 처음 만나는 타인과의 자리에서도 편안한 매개체가 되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p.84

 나 역시 차를 마시게 됨이 감사하다. 카페인에 취약해서 아무 커피나 마실 수 없고 열이 많고 숙취에 빠지기 쉬워서 술 한 잔을 비우는 게 쉽지 않은 나에게 차는 차선책이면서도 최고의 선택지이다.

 깊은 산 속 새 소리 풀 냄새와 함께 향을 태우고 도자기를 빚으며 차를 마시는 책 속 작가의 삶은 안빈낙도 그 자체이다. (‘빈(貧)’은 모르겠...;;) 나는 유튜브로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머그잔에 티백을 동동 띄우고 디퓨저 향을 맡으며 이 글을 쓴다. 분위기가 영 다른 듯 하지만 지금 내 세계와 이 책은 분명 차로 엮여져 있다.

 

◎매달 12일의 글쓴이 꼰냥은,

도서관 서가 사이에 있으면 심박수가 떨어지고 톨킨(반지의제왕)과 이노우에 다케히코(슬램덩크) 작품 앞에서 심박수가 올라가는 다방면의 덕후입니다. 고양이들과 간식먹으며 책 읽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고요. 앞으로 주욱 즐거운 책, 재밌는 순간을 찾아가며 살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kate_bookeater?igshid=YmMyMTA2M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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