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저는 그의 소설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여백이 많다는 생각을 해서 소설보다 시가 더 어울리는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채식주의자는 특별한 책입니다. 꼼꼼하고 치열하게, 틈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읽는 내내 세밀화 느낌보다는 먹이 번진 수묵 담채화가 제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보는’ 책입니다.
꽃을 그렸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물구나무를 서서 그대로 사라지는 그림입니다.
🟫 줄거리
그녀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다. 어느 날, 어떤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도통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의 입에 고기를 구겨 넣기도 한다. 그녀는 완강히 거부한다. 어떤 것도 그녀에게 범접할 수 없게 되었다. 단 하나, 그녀의 몸에 꽃이 그려지는 순간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금기를 깨면서까지 그녀는 몸에 그리고자 ‘하였다’.
그녀는 하고자 하는 것에는 강력한 의지를 발현하는 사람이 되었다.
‘먹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자 하였다(타인에 의해)’.
기어코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무가 되어 가기로 하였다’
아무것도 죽이고 싶지 않는 그녀, 그녀는 삶과 죽음을 경계를 넘어서 이렇게 질문한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 총평
한강 작가는 불친절하게 글을 쓴다.
읽는 이들의 호흡보다는 자신의 호흡대로 글이 흘러가다가 쉬기를 멈춘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한참을 쉬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혼자 내달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서 헤어날 생각 없이 그대로 멈춰 있기도 하다.
영혜는 불친절하다.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왜 피가 뚝뚝 흐르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금기를 넘어서면서까지 찾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며, 왜 나무가 되기를 ‘선택’하였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불친절하고,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혜라는 새로운 타자에게 친절한가?
이 책은 한번도 영혜의 시선에서 써내려간 부분이 없다.
모두 타자의 시선에서 영혜를 그려갈 뿐이다. 역시 우리도, 이들도 영혜에게 불친절하다.
우리는 그 불친절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구조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입 다물고, 그들처럼 고기를 베어 물고,
타인을 이해하는 척, 나를 설명하는 척 해야 한다.
영혜는 그것을 거부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지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한순간도 서로를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무가 되려고 한다. 꼿꼿하게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마치 그간의 죄를 속죄하듯이 그런 나무가 되려고 한다.
슬픈 책이다. 한편으로 나는 그녀처럼 치열하게 나의 세계를 지켜보았던가, 지독하게 싸워보기는 했던가라는 씁쓸함이 일어나면서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참 좋은 책이다.
🟫 기억에 남는 구절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이제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금방이야”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 매달 3일, 글쓴이 Book_here
저는 “함께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함께 할 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현장(책:곳)에서 다양한 세대와 책을 읽고, 쓰면서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과 좋은 책을 읽으면서 성장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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