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는 광화문과 종로에 참 자주 나갔다. 월드컵 응원한다고 얼굴에 그림을 그린 채 빨간 티셔츠를 입고 길바닥에 앉아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고, 새해가 밝기 하루 전 보신각 종 치는 걸 보겠다며 인파에 휩쓸려 길을 걸었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새벽 내내 거리에서 강강술래를 돌고 집까지 걸어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내 상황이 시궁창이라도 세계는 발전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면 지금은 반대로 세계가 쇠락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다. 스티븐 핑커를 위시한 여러 학자에 의하면 살인도 폭력도 실제 통계로는 현재로 올 수록 줄었다고 하는데 세상의 험한 소식을 앉은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는 지금 사람들에게 그닥 와닿지 않는 '팩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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