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뾰족 구두를 신은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어릴 때부터 이상했다. 발의 앞부분은 넙적한데 대체 저 뾰족한 구두에 발이 어떻게 들어가는거지? 대학생이 되어 남들 따라 신어본 뾰족 구두에 발을 밀어넣었더니 역시나 발가락이 찌그러졌다. 게다가 굽 때문에 발이 앞으로 쏠리니 더 아팠고 뒤꿈치는 시뻘겋게 까졌다. 대체 이 고문 도구를 어떻게 신고 다니는거지? 하고 물었더니 한 친구는 자기는 6cm 구두가 가장 편하다며 신고 뛸 수도 있다고 했다. 내 발에는 구두가 안 맞는가 보다 하고 뾰족 구두는 이제 사지 않겠다 다짐했다.
사실 내 안에는 사회에서 여성스러운 물건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꽃향기, 긴 머리, 핑크색 리본, 하이힐, 미니스커트, 몸매가 드러나는 옷 등 어릴 때부터 '여성성'을 상징하는 옷과 장신구가 어색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미디어 속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입하는 여성성의 상징에 대한 욕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상화는 보통 차별적인 구조를 드러낸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대단한 매력 자본을 지니고 있다는 뜻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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