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겁이 난 거였어요“

완벽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 멈춰있나요?

2025.03.26 | 조회 1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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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편지

대학원생들을 위한 마음챙김의 공간, 작지만 따뜻한 쉼표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지난 한 주, 일상에서 문득 문득 행복한 시간을 찾으셨나요?

저도 곰곰이 언제 내가 행복함을 느끼나, 하고 생각해보며 한 주를 보냈는데, 저는 ‘사람들’이더라구요. 낯도 가리고 내향형 인간이지만, 내 사람들이 주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때 행복함을 느껴요.

매 순간 행복하자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저도 사실 긴 공백기를 지내며 문득문득 불안함이 밀려와요. 스스로를 백수라 부르며 작아지기도 하구요. 그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후배가 ”누나, 다음 도약을 위해 숨을 고르는 중“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더라구요. 그 말에 울컥했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다행이라고, 행복하다 생각했어요.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서도 정체되어있는 것 같아 불안하신 분들이 있다면 같이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에 가장 저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다면 그건 ‘게으른 완벽주의’일거예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눠볼게요.


게으른 완벽주의, 내 안의 숨은 적

이번 레터도 예전에 받았던 고민에서 시작되었어요.

Q: "혹시 '게으른 완벽주의자'나 특히 ‘미루기’ 문제를 경험 혹은 극복해보신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문제를 다루고 극복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구독자님도 게으른 완벽주의 혹은 미루기를 겪어보셨나요? 저는 꽤 자주 겪어요. (지금도 그렇게 잘 쓰고 싶어서 미뤄둔 논문 아이디어가 몇 개인지 몰라요.) 그래서 사실 오늘의 편지는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임과 동시에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사람마다 미루게 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제가 무언가를 미루게 되는 경우는 보통 ‘실수 없이, 최선의 선택을 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인 것 같아요. 실수와 실패가 없이 최상의 결과를 얻고 싶다보니,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는 편이에요. 졸업논문 주제를 선택할 때도 비슷했어요.

저는 졸업 논문 주제를 다국어를 사용하는 국제학생들 (Multilingual International Students)의 경험에 대해 썼어요. 사실, 제 이야기기도 했어요. 미국에서 그 그룹 중 하나로 지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말 정말 잘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언어장벽이 있다고 이 학생들을 부족한 존재로 보는 것도 싫었고, 그 학생들이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도 싫었어요.

그리고 제 연구가 그렇게 부정적인 견해를 더하게 될까봐 아-주 오랜시간 고민을 했어요. 그 시기가 저에겐 대학원 생활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머릿속으로 정말 다양한 시나리오를 돌려봤고, 선뜻 이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확정하지 못하고 몇 달을 고민했어요. 이미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한데도 ‘완벽하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 결정을 미루고 있었던 거죠.

교수님이

“다른 사람이 너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는 네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해석은 그 사람들의 몫이다”

라고 말씀해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생각으로 오랜시간을 고민하다 결국 교수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졸업논문 프로포절을 시작했고, 그 주제와 함께 졸업을 했어요. 그 연구는 고작 몇 년 지난 지금봐도 (사실 졸업하는 시점에도) 허점들이 있어요. 그래도 저는 PhD 학위를 얻었죠! 완벽하지는 않아도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게으른 완벽주의 뒤의 나의 진짜 속마음

이 과정을 겪으며 ‘대체 왜 나는 미루게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많이했어요. 아마 이 편지를 읽는 우리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겠죠. 제 이야기부터 풀어보자면, 저는 두려웠던 거 같아요. 결국, 게으른 완벽주의라는 것은 완벽하고자 게으른 거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 일이 완벽했으면 했고,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아쉬운 말을 듣고 싶지 않았구요. 이렇게 말하면 얄미울 수 있지만, 학창시절 내내 공부를 곧잘했고, 칭찬을 받으며 컸어요.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했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했어요. 그러면서 내 약점을 감추는 데에만 급급했던 거 같아요.

그 칭찬이 없더라도 나는 여전히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그때 제게 없었던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스스로를 자꾸 제한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확신이 있는 것,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시도하게 되구요.

그런 습관은 아주 오래 남아있어 대학원 때도 여전히 교수님한테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도 잘 못했어요. 그 순간에 물어보고 답을 얻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텐데,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나중에 찾아봐야지‘하고 미루게 되었던거예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결국 교수님이 “너의 성장의 가장 큰 적은 너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어요.

교수님의 '너의 성장의 가장 큰 적은 너야'라는 말씀을 곱씹으며 오랜 시간 자기 성찰을 했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내 주저함과 미루기의 뿌리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보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꼈던 거예요.


완벽하려는 나에게 건네는 세 가지 말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제는 미루지 않고 한답니다!‘라는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지금도 종종 주저하고 많이 미루며 지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아 내가 또 이런 생각으로 미루는구나.‘라는 인지능력이 생겼고, 그러한 인지를 바탕으로 미루지 말고 시도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해주는 몇 가지 말들이 있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의 실패에 관심이 없다.

앞서 말한것 처럼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웠지만, 정말 제가 실패했다고 느낄 때 그 때문에 저한테 실망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아주 단순하게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자면,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은 내가 실패를 했건 성공을 했건 관심이 없구요.

내 사람들은 내가 실패를 했다고 속상하다고 말하면 위로를 하고 다음에 잘 할거라고 말하지 ’그러게 왜 그것밖에 못했어’라고 타박하지 않더라구요. 내게 사정이 있었겠거니, 혹은 운이 안 따랐겠거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도 나를 믿는데, 정작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나의 주변사람들을 믿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나의 실패를 비웃고 그 점을 나의 약점으로 삼는다면, 그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닌거겠죠. 나에게 그 정도 마음밖에 쓰지 않는 사람 때문에 나의 도전을 미룰 필요는 없겠더라구요.

잘 하고 싶어서 미루느라 아무것도 안하면, 성장의 기회가 없다.

무엇보다도, 내가 잘 하고 싶어서 미루고 아무것도 안하면 결국 내가 배울 기회조차 없다는 점을 계속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요. 사실 여러분께 매주 보내는 이런 뉴스레터도 예전 같으면 훨씬 더 망설였을 거에요. 실제로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누가 내 뉴스레터를 읽어줄까?‘ ’아무도 구독을 안해주면 어쩌지? 그러면 너무 창피한데?‘ 이런 고민들이 한 가득이었거든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시작해보니 벌써 같이 해주시는 분들이 70분이 넘었어요. 가끔 이번 주 레터도 잘 읽었노라고, 레터 내용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서툴러도 편지를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조금 더 좋은 내용을 보내고 싶어 고민을 하고 더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이렇게 매 주 여러분께 편지를 쓰다보면 저도 성장하지 않을까요?

한 번에 완벽하게 할 필요 없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를 못하겠다면? 최소한 한 번에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실 첫 시도에 완벽하게 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완벽하다고 생각해도 또 새로운 개선점은 보이기 마련이구요.

이 마음가짐은 논문을 쓸 때도 비슷해요. 대학원을 다닐 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교수님과 협업을 할 일이 있었어요. 연구중심대학에서 은퇴를 하실 정도면 얼마나 많은 논문을 쓰셨을까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초안을 써서 저희에게 넘겨주었을 때, 친구가 조심스럽게 “좀…의외지 않아?“라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 교수님은 저희 둘이 우리과에서 글쓰기 관련해서는 가장 좋은 피드백을 주시는 교수님이라고 생각한 분이었는데, 대학원생이었던 저희가 보기에도 아직 손 볼곳이 너무 많았던거죠. 이 경험은 제게 큰 깨달음을 주었어요. '와, 학계에서 이렇게 존경받는 교수님도 완벽한 초안을 쓰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정상이구나.' 전문가조차도 완벽한 첫 시도를 하지 못한다면, 제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사실 비현실적인 거였어요.

(실제로도 다른 교수님과 협업할 때도 교수님들이 써주시는 초안을 보면 수정을 제안할 곳이 아주 많아요. 코멘트가 몇 페이지가 될 때도 있어요.)

교수님들도 아직은 부족한 초안을 내어주시는데, 우리의 초안이 완벽하기란 얼마나 힘들까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에 완벽하지 못했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아쉬운 점을 다음 시도에 반영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무엇이라도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이런 말들을 스스로에게 조금씩 조금씩 의식적으로 상기시켜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느꼈어요. 이런 말을 옆에서 계속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좋구요! 제 주위엔 요새 실행력이 좋은 분들이 많은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Just Do It - 그냥 해봐요.

지난 주에 Academic Brother (같은 지도교수 아래에서 박사를 한 친구) 통화를 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Just do it’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이 말은 제가 앞서 말한 세 가지 전략을 모두 포괄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실패에 그렇게 관심 없고, 실패해도 성장의 기회가 되며, 한 번에 완벽할 필요도 없으니 - 그냥 시작해보라는 거죠.

본인도 하나의 결정을 하기 전까지 정말 많은 ‘what if…?’들을 생각하곤 했던 걸 알지 않냐고 하며, 그런데 그냥 시도해보는 게 낫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더라구요.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리딩코스가 있었지만 계속 ’만약에…‘ 이런 생각을 하며 망설였는데, 막상 시도해보니 별 게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요.

그러면서 어떤 논문을 쓰고 싶은데 내용이 정리가 안된다면 일단 한 문장이라도 시작해보라고 조언했어요. 그러다보면 내용이 정리가 되고 떠오르기도 한다는 말을 해주었어요. 우리 모두 나이키의 슬로건을 가슴에 품고 살아보자고.

여러분도 그 마음으로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냥 시도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오늘의 작은 실천                    

 

1. 지금 이 순간, 미루고 있는 일 하나를 적어보세요.
2. 그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가장 작은 첫 단계만 시작해보세요. 예를 들어, 논문 한 줄 쓰기 혹은 이메일에 제목을 적기 같은 사소한 것도 좋아요. 
3. 그렇게 시작한 후 여러분이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기록해보세요.

 

마음이 내키시는 분은 댓글로 혹은 제게 이메일이나 DM으로 보내주시면, 제가 다음 레터에 함께 보내드릴게요.

 😊 함께 나눠요!                             

이 뉴스레터가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요. 지금 느끼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 또는 당신을 위로했던 경험이 있다면 저와 나눠주세요. 익명으로 공유해주신 이야기는 다음 뉴스레터에서 소개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답장을 기다릴게요. 😊

💌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구독자님의 불완전한 시작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 그 용기를 응원할게요.

 

당신을 응원하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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