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6월도 벌써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올 해의 절반이 흘러가다니, 믿기시나요? 저는 잘 안 믿겨요. 천천히 가라, 시간아. 그리고 이제 장마가 시작이래요. 그래도 이번 주말엔 날씨가 좀 좋았는데, 잠깐이라도 푸른 하늘을 보실 시간이 있으셨길 바라요.
저는 이번주에 올해 가을학기 입학을 위해 미국 출국을 앞두고 있는 분과 만나 시간을 보냈어요. 그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구요.
박사님은 해외에서 지내시는 동안 놓친 인연이 없으신가요?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느낌의 질문이었어요.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요즘 자주 듣게 되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SNS에서 모든 관계를 시절인연으로 치부하며 연연하지 말고 보내주자는 글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묘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어요.
정리되어가는 인연들
솔직히 말하자면, 놓치고 흘러보낸 인연들이 있어요. 사실, 정리가 많이 되었어요. 대신 제 마음 속에 힘든 대학원 시간을 함께 보낸, 미국에서 만난 인연들의 공간이 아주 커지기도 했구요.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죠.
저는 많은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지는 못하지만, 한 번 마음을 내어준 사람을 잃는 걸 정말 힘들어해요. 그래서 내향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꽤 잘 하는 편이에요. 그 인연이 흩어지지 않았으면, 옅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요. (그래서 주변에선 내향인이 아니지 않냐고 물어요. 하지만 I 맞답니다.)
그래서인지,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씁쓸해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떠날 사람은 떠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보낸 8년 가까운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라, 정리가 되는 연들이 있더라구요. 저도 대학원생활 타지생활을 하면서 아무래도 제 코가 석자가 되고, 한국에 들어와도 볼 시간이 한정되니 연락이 뜸해지기도 했구요. 그러다보니 점점 정리되는 인연들이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삶에 인연들이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임을 알기에,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요새 왜 유행하는 건지 알것 같기도해요. 시절인연이라는 말로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겠죠?
하지만, 그 말이 어쩐지 제겐 동시에 체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가끔 그 말이 어차피 다 시절인연이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뉘앙스로 사용하는 경우도 봤거든요. 어쩌면 그렇게 이 말 뒤에 숨어 우리가 떠나보내는 인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절인연이라는 말의 뜻, 그리고 인생이라는 버스
시절인연은 불교의 업설과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대백과사전에서 보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하는 일인데 (저는 불교인이 아니기에 불교 교리는 잘 모르지만) 우리도, 우리가 하는 행동들도 시간과 공간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계가 흐름이라면, 우리 스스로도 그 흐름의 일부아닐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행동하는 지에 따라 관계의 퀄리티와 지속성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절인연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최근에 본 비유 중에 인상적인 게 있었어요.
인생을 하나의 버스 노선으로, 인연이 닿은 사람들을 승객으로 보는 관점이었어요. 어떤 승객은 짧은 거리만 함께 하고, 어떤 승객은 오래 함께 여행할거에요. 모든 승객이 언젠가는 내려야 하는 건 맞지만, 그들이 버스에 머물고 싶어 하는 시간은 그리고 그 버스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추억하게 될 지는 버스의 매력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내가 조금 더 좋은 버스가 된다면 어떨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버스에서 내리겠지만, 사람들이 어쩌면 버스에서 내리기 싫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더 좋은 버스가 되는 방법은 아마도 여러가지가 있을거예요. 승객에게 조금 더 친절할 수도, 편안함을 제공할 수도,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도, 버스 자체가 멋질 수도, 아니면 혹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경로를 달리는 버스가 될수도 있을거예요. 버스 밖이 더 매력적이라면 제가 아무리 가지 말라고 해도 갈테니, 그냥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수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결국 우리라는 버스의 종점에서 모두들 내릴 수 밖에 없을거예요. 가끔은 비가 오는 날이 있어 흙탕물을 뒤집어 쓰는 날도 있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대체로 그 사람들이 우리 삶이라는 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의미있고 기억에 남게 만드는 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주는 위로도 필요해요. 모든 관계를 붙잡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말이 체념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진정한 시절인연의 의미는, 그 시절에 만난 인연을 최선을 다해 소중히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들이 언젠가 떠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따뜻하게, 더 진심으로 보내는 것 말이에요.
구독자님과 저도 이렇게 닿은 인연이니, 저는 구독자님이 내어주신 이 시간을 더 따뜻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진심을 담아 편지를 보내도록 할게요 😊
구독자님도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전해주세요! 늘 기다리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소통하는 느낌의 레터가 될 수 있을지가 요새 제 최대 고민이에요 🥹
💡 오늘의 작은 실천
오늘 하루, 주변에 있는 한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메시지일 수도, 평소보다 조금 더 귀 기울여 듣는 대화일 수도, 아니면 고마움을 표현하는 작은 행동일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가벼워지길 바랄게요.
당신을 응원하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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