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이번 한 주는 어떤 시간이셨나요? 제주도는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다고하고, 아마도 전국이 곧 장마에 접어들 건지 요새는 정말 후덥지근한 날씨들의 연속인 것 같아요. 이 습도와 더위를 피해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라요.
저는 지난 주에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연구비 최종선정을 받았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스레드 게시글을 통해 축하해주셨어요. 제 계정에서 그렇게 많은 좋아요를 받은 글은 처음이었어서 얼떨떨하기도하고 정말 신기했어요.
연구비가 되었다는 자랑을 하고자 이 말을 꺼낸 건 아니구요. (물론, 연구비가 되었다는 건 뿌듯해요.) 제가 정말 이 결과가 기쁜 이유중 하나는 그래도 이제는 제가 조금 더 누군가에게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세지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에요. 결과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화려한 새출발이 아니라 실망하실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 시작이 꽤 만족스러워요.
오늘은 그 생각을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볼게요.
모두가 달려야 한다고 말하던 시기에 쉬기로 한 마음
모두가 한참 달려야 한다고 말하는 박사 수여 직후. 그 시기에 쉬는 게 당연히 저도 쉽지 않았어요. 제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알기에 지지해주신 분들도 물론 많았지만, 반대의견도 많이 만났어요. 학계에서 인정받는 교수님이 제게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분은 "그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하셨거든요. 저를 아끼는 마음에 해주신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저는 그럴 역량이 없는 걸까, 이게 정말 제 끝일까봐 무서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제게 남은 에너지가 없다고 느꼈어요. 버티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고요. 정말 최악의 상황에 이 커리어를 더 이상 못하게 되더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쉬기로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한국에 와서도 사실 미련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몇 달은 일을 더 했어요. 그러다 '이러다 정말 이도 저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 4월쯤 정말로 연구 일은 다 내려놓고 쉬었어요. 들어오는 연구 협업 제안도, 논문리뷰도 다 고사했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들에 시간을 쏟았어요. 취미 화실에서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해보기도 했고, 스레드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좋아하는 여행을 다녔어요.
제가 한참 힘들어할 때 지도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거든요.
Do something that you enjoy. When you are depressed or feeling down, you might not enjoy even the things that you used to like. However, try once, twice, and so on. Then, you will start enjoying it again, and your mind will come along eventually.
좋아하는 일을 해봐.
네가 우울할 때, 기분이 좀 처질 때는 평소에 즐겨하던 취미들조차 원래만큼 즐겁지 않을거야.
하지만, 한 번, 두 번 해봐. 그러면 다시 그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네 마음도결국 따라오기 시작할거야.
덧붙여서 교수님은 “너 내가 요리하는 거 좋아하는 거 알지? 우울할 땐 나도 요리조차 재미가 없어. 그래도 꾹 참고 몇 번을 하다 보면 내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껴. 좋아하는 걸 해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씀처럼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더라고요. 연구 일도 '다시 한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눈에 들어오는 몇몇 기회에는 도전을 해보기도 했어요. 이번 연구비도 그 도전 중 하나의 결과예요.
선택의 댓가와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누군가는 더 화려한 학계로의 복귀를 제게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하며, 이 시작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선택의 댓가에 대한 생각이에요. 제가 남들이 말하는 직선 경로를 이탈하고 쉬어가기로 했으니, 어쩌면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도 휴식기 전에 갈 수 있었던 만큼 갈 수 없을지도 모르죠. 제가 한 선택의 댓가라면 댓가겠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계속 달렸으면 제가 오히려 무너졌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다르게 생각하면, 원래 경로를 이탈했으니 어쩌면 저는 새로운 길을 찾아 새로운 곳에 다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요.
두 번째는 이 연구비가 제게 좋은 워밍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잠깐 멈췄다가 이제 다시 시작하는데, 풀파워로 달리는 것보다는 인생이란 마라톤을 다시 재개하는 좋은 시작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 뒤로 제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좋은 시작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나가도록 최선을 다 할거예요.
며칠 전에 아는 분과 이야기를 하는데, 저보다 20년쯤 인생 경험이 더 많은 그 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구요.
어렸을 때는 정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서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살아보니, 내가 오랫동안 그 에너지 레벨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 하는 게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것인거 같아.
그렇게 오래오래 할 수 있도록 천천히 워밍업하면서 제게 맞는 최선을 찾아나가 보려구요. 앞으로도 당연히 또 힘들어지는 날들도 있고, 지치는 날들도 있겠지만 이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있으니 조금 더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최선은 어느 선인가요?
쉬면서 잃은 것, 그리고 남아있던 것들
이번에 느낀 건, 물론 쉬어가면서 잃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제가 그동안 읽었던 논문을 읽는 힘, 키워왔던 사고력과 논리력, 계획서와 논문을 쓰며 길러온 글쓰기 능력, 그리고 그 과정에 들였던 시간들은 여전히 제게 남아있더라구요.
그리고 쉬면서 얻은 것들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 힘들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제게 중요한 가치 등등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아직도 방향을 온전히 정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앞으로 또 다시 흔들릴 때 어떻게 해야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인생에 너무 많은 변수가 있고, 몇몇 변수는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내 삶에 나타나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미래를 꼭 정해놓고 그것만을 위해 달리기보다는, 현재 제게 오는 기회들에도, 제가 하고 싶은 일들에도 최선을 다하며 그렇게 지내보기로 했어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속도로 달리고 계신가요?
당연히 저는 구독자님이 멈춰 쉴 일이 없이 계속 건강하게 달려가실 수 있기를 바라요. 하지만 살다가 어쩌다 언젠가 한 번쯤 어쩔 수 없이 많이 힘들어 지치는 날이 온다면. 그때 이 이야기가, 제 경험담이 문득 기억났으면 좋겠어요.
쉬는 것도 용기예요. 그리고 쉬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더라구요. 때로는 멈춤이 우리를 더 멀리 혹은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줄 수도 있으니까요.
💡 오늘의 작은 실천
혹시 지금 너무 지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 "지금 내가 정말 지쳐있나?" - 솔직하게 내 상태를 돌아보기
2. "쉬는 것에 대한 내 두려움은 무엇인가?" - 내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적어보기
3. "잠깐 속도를 늦춘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 나를 회복시킬 실마리를 찾아보기
완벽한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나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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