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자신의 업을 떠올리면 어떤 그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시나요? 저는 브랜딩과 디자인 업계를 대표하는 회사의 이름들이 나열된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나열한 회사들 중에는 30년이 넘는 디파크 브랜딩 같은 회사도 있고요. 저희 회사 BRIK처럼 십 년이 채 안된 회사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이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저에게 영향을 주거나 기억에 남는 회사들이겠죠. 결국 이제껏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기억되듯이 회사들 또한 이름으로 기억되더군요.
그 중에서도 아래 나열한 이름의 회사들은 특히 제가 독립을 생각하면서 이름을 지을 때 많이 참고했던 회사들입니다. 그런데 다 모아놓고 보니 몇 가지 특징들이 눈에 들어더군요. 크게는 두 가지 방향성으로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언어로 된 이름이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CFC 같은 이름만 봐서는 전혀 뜻이 예상이 안 되는 이니셜 조합의 이름부터 퍼셉션같은 회사의 지향점이 명확한 이름도 있었습니다. 다른 한 방향으로는 명확한 이미지가 머리에 뚜렷하게 맺히는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플러스엑스라든지 허스키폭스라는지 하는 이름들이었습니다. 두 이름들의 장단점이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저희 회사는 이미지의 구체성을 가진 BRIK이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이 두 방향 중 어떤 방향이 맞다고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너무 다르니까요. 추상어로 된 네이밍의 경우에는 특정한 이미지가 없어서 개념을 확장하기 좋습니다. 뚜렷한 의미로 한정되기보다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어서 보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기도 합니다. 단점이라면 회상성이 약해서 기억하기가 쉽지 않죠. 지금도 CFC나 fnt를 잘못 부를 때가 많습니다. 다만 이런 이름들은 BTS처럼 한번 사람들에게 각인이 확실히 되기만 하면 유사한 이름이 나오지 않아 확연한 차별성이 가질 수 있는 장정이 있습니다. 구체성을 띄는 이름들은 이에 비해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무수히 많은 다른 회사나 브랜드를 만나는 경험을 하시게 될지 모릅니다. 그 산업 카테고리의 선두가 아직 안 됐다면 말이죠.
반면 구상어를 기반으로 한 네이밍은 또렷한 상(像)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허스키폭스는 야생의 모습이 떠오르고 더워터멜론은 큼지막한 수박이 떠오르죠. 추상어에 비해 너무 명확한 이미지가 오히려 회사 이미지와 색깔의 한계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점이 다른 회사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이미지의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이번 리포트의 주제가 '은유'인 만큼 위 브랜딩 회사 네이밍들 중 은유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한 회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회사는 허스키폭스입니다. 처음 회사 대표에게 명함을 받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브랜딩 회사 이름이 동물 이름이라니! 보통 이 업계에서 쓰는 어법인 OOO파트너, OOO디자인, OOO크리에이티브도 아니고 그냥 동물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과감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름을 짓게 된 계기와 철학을 들어보니 금방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허스키폭스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폭스를 결합해 공동대표 체제를 표현했습니다. 야성의 크리에이티브를 추구한다는 의미를 허스키폭스라는 동물의 특징과 연결했습니다. 창조성은 날 선 감각이 필요하죠.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감각을 가져야 기성을 벗어난 새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어려운 의미를 허스키폭스라는 단 한 단어로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회사에의 구성원들은 허스키나 폭스처럼 동물들의 닉네임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 이름 자체가 스토리가 되고 있습니다. 사업도 이름을 닮아서인지 현재 방송, 게임, 유통, 증권, 엔터테인먼트를 넘나들면서 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야성의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회사는 더. 워터멜론입니다. 과일만큼이나 신선한 이름이죠. 듣자마자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만드는 회사를 애플이라고 부르는 게 이제는 생소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러워졌지만 브랜드 컨설팅 회사가 이런 이름을 쓴다는 게 처음에는 좀 많이 어색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컨설팅 회사라고 하면 어깨에 엄청나게 힘이 들어가고 어려운 용어가 범벅이기 마련인데, 더워터멜론은 달랐던 거죠. 창업 초기 '브랜드 민주화'를 내 걸로 시작했던 철학을 쉽고 친근한 회사명까지 반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겉은 초록색인데 안을 보면 새빨간 것처럼 이 회사는 브랜드 컨설팅도 하지만 그걸 기반으로 광고도 만드는 회사입니다. 아직까진 없었던 브랜딩업과 광고업의 새로운 조합이 초록과 빨강의 반전 대비와 매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과일 중에서도 가장 큰 수박처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브랜드 커뮤니티를 보유하고 있고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각종 오프라인 강연과 교육까지 하고 있으니 수박처럼 스케일이 참 어마어마하죠. 수박이라 그걸 감당하 수 있고 어울릴 수 있어서 박수받은 수 있는 이름 아닐까 합니다.
세 번째 회사는 클레이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점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죠. 점토로는 어떤 모양이라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고정되지 않고 유연한 물성을 가진 흙입니다. 흙은 대지를 이루는 기반이기도 하고 우리 인류의 탄생이 이루어진 문명이 발생한 최초의 장소이기도 하죠. 브랜드라는 생태계가 있다면 이 생태계의 기반을 클레이를 통해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ssential and boundless.라는 이 회사의 슬로건을 보고 그런 큰 생각까지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걸로도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희망을 담은 브랜드들이 이 클레이라는 회사에서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클레이라는 은유가 있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상상과 해석의 여지가 남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회사 브릭입니다. 브릭은 브랜드 컨셉 빌딩을 기반으로, 브랜드 스토리와 디자인까지 이어지는 브랜딩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한 단계 한 단계들이 단단하게 쌓이고 연결되어 브랜드의 근간을 이룰 수 있게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브랜드 제국의 성들도 일 순간에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여서 결국에는 그런 근사한 결과를 만들어내죠. 브릭이라는 은유에 담긴 보조관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정입니다. 탄탄한 과정과 체계를 중요시하는 브랜딩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연결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팀을 빌딩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브랜딩 회사들의 이름들의 특징과 그중에서도 은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회사들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여러분 회사들의 이름은 어떤 성격과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가요?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는 이름인가요? 아니면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이름인가요? 만약 앞으로 우리 회사의 이름을 바꾼다면 어떤 이미지를 이름에 담고 싶으신가요? 위 사례들과 비교해 보면서 각자 회사의 이름과 그에 따른 스토리들도 떠올려 보는 시간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은유라는 테마의 리포트는 징검다리 형식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브랜딩 업계를 예시로 파악을 해봤지만 다음 번에는 업의 카테고리를 달리해 은유가 들어가 있는 이름들을 찾아 분석해보겠습니다.
그럼, 긴 추석 연휴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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