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CUCCI) 로고타입을 좋아합니다. 명조 클래식함과 고딕의 모던한 균형 잡힌 감각때문입니다. 그런 글자의 조형성도 좋지만, 저는 무엇보다 적절하고 우아하게 놓여 있는 기품있는 글자의 간격에 끌렸습니다. 명품 브랜드다운 격조와 세련미, 여유로움을 이만큼 잘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다닥다닥 붙어 숨막혀 보이는 답답한 글자가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한층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몇 안되는 브랜드 로고타입니다.
사실 CUCCI를 '구씨'로 읽어도, '쿠찌'로 읽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읽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브랜드가 전달하고자하는 정서와 감각이 제대로 전달된다면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잘 읽히더라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감각이 없다면 브랜드 로고의 역할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CUCCI라는 브랜드 로고가 제 눈에 이렇게 좋아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차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들이 게라몬드 계열의 명조체나 헬베티카 계열의 고딕체 둘 중 하나의 형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찌는 그 중간의 이미지로 포지셔닝하고 있죠.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 대비가 강한 명조의 느낌과 가로획이나 세로획의 굵기가 거의 차이가 없는 고딕의 중성적인 느낌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언뜻 보기에는 현대적인 세련미가 강조돼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섬세한 곡선과 미세한 획의 삐침이 굉장히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디지털 환경에 변화에 따라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현대적인 이미지의 고딕계열로 바꾸는 추세와는 조금 다릅니다. 특히나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그 게 큰 자산이었던 버버리까지 그런 추세에 휩쓸리는 걸 보고 충격적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다행이 구찌는 여전히 예전의 클래식한 미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까지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GUCCI가 시대 환경에 뒤쳐지는 건 절대 아니죠. 최근에는 메타버스의 대표 주자인 제페토와의 협업, MS X-박스와의 콜라보를 하며 어떤 명품 브랜드보다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한발 앞선 대응은 패션 브랜드 파워를 측정하는 각종 조사와 매출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일명 에루사로 통하는 전통적인 명품브랜드인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을 제친 의미있는 결과들이니 GUCCI라는 브랜드가 현시점에서 얼마나 인기있는 브랜드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구찌의 브랜드 가치 상승의 결과가 브랜드 로고 하나 때문만은 절대 아닐겁니다. 하지만, 고객들에게 그들만의 브랜드 인상을 부여하고 기억하게 하는데 있어 상당히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나 비슷 비슷한 조형의 글자와 간격을 가진 명품 브랜드 로고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이미지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은 브랜드 차별성에 있어서도 큰 자산입니다. 주변 아무리 많은 브랜드 로고들로 덮여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기품있는 CUCCI 로고타입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백화점이나 쇼핑몰 윈도우에서도 제 눈에 가장 띄는 브랜드는 CUCCI이더군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로고의 개성을 좌우하는 요인은 글자 간의 간격입니다. 보통 글자의 인상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건 글자의 굵기나 획의 꾸밈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유사한 느낌의 명품 브랜드 로고타입 사이에서는 형태적인 특징들보다 오히려 간격이 다름을 연출합니다. 오로지 CUCCI에만 어울릴 것만같은 오묘한 간격의 글자들이 브랜드의 결정적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C U C C I처럼 여유있는 글자의 간격을 CUCCI처럼 좁혀 보면 브랜드 로고의 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간격이 좁아지고 더욱 촘촘해지니 로고의 덩어리감은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좌우 폭이 짧으니 빠르게 읽힙니다. 어떤 공간이나 비례에 쓰더라도 적용하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런데 뭔가 매력이 확 빠져나간 느낌입니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여유롭게 흐르던 공기가 막히고, 품 넓은 격조가 사라지고, 뭔가 옹색해지고 다급한 느낌으로 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C U C C I 로고타입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사라졌습니다.
해 본 김에 CHANEL과 LOUIS VUITTON의 브랜드 로고타입의 간격도 조정해봤습니다. CHANEL이 C H A N E L로 글자 간격이 넓어지니 어딘지 엉성하고 헐렁해진 기분이 듭니다. 반듯반듯한 직선과 사선들이 촘촘하고 견고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는데, 밀도가 사라지니 금방 무너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LOUIS VUITTON이 L O U I S V U I T T O N로 간격이 변해도 마찬가지네요. C H A N E L에서 보였던 성긴 느낌이 똑같이 느껴집니다. 12자나 되는 글자가 넓게 벌어져 있으니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부담됩니다. 글자 자체의 형태는 그대로인데, 이렇게 글자 간격에 따라 브랜드 로고의 인상이 변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느낌은 어떤가요? 아마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G U C C I 의 로고타입의 적당한 간격을 보면서, 내 눈에는 왜 그렇게 좋아보였는지 분석해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 좋다고 합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도 여유 공간이 있어야 서로의 삶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도 적당한 휴식의 간격이 필요합니다. 어찌보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이런 사이 사이들을 조정해 가는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급속하게 좁혀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멀리 떨어져야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합니다.
브랜드와 고객 사이에 간격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G U C C I처럼 여유있는 모습으로 기다려 줄 수 있는 브랜드도 있고, CHANEL처럼 단단하고 치밀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브랜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브랜드의 형태와 개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만 기울일 게 아니라, 고객과 브랜드의 간격을 어떤 식으로 유지할 것인지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G U C C I 로고타입의 사이 사이의 간격은 텅비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공간에는 구찌만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형성하는 공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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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
글 너무 좋습니다. 도움 많이 받고 있어요!
브랜딩 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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