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Sherpa
안녕하세요, 비즈쿠키입니다.
사업을 시작하면 예상치 못하게 방향을 틀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시장이 제품에 반응하지 않아서, 고객이 열렬히 원하는 기능을 발견해서, 혹은 죽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기존의 목표와 그 목표를 보고 모인 팀을 뒤로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달려가는 일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 이후에 성공을 거두기도 결코 쉽지 않지요.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릅니다.
두 번의 도전, 두 번의 실패, 그리고 두 번의 피벗. 매 피벗마다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낸 사람, 바로 슬랙(Slack)의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입니다.
이번 글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물 소개

철학도 출신으로서 실리콘밸리의 '피벗의 귀재'로 불리는 스튜어드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는 두 번이나 실패한 게임에서 세상을 바꾼 서비스를 길어 올린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4년 게임 개발 중 사진 공유 서비스 '플리커(Flickr)'를 탄생시켜 야후에 매각했으며, 이후 또 다른 게임인 '글리치(Glitch)'의 실패를 딛고 내부 소통용 도구였던 '슬랙(Slack)'을 전 세계적인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성공시켰습니다. 2021년 세일즈포스에 슬랙을 약 277억 달러라는 거액에 매각하며 스타트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기업 소개

슬랙(Slack)은 2013년 출시 이후 "이메일의 종말"을 선언하며 전 세계 기업의 업무 문화를 혁신한 클라우드 기반 협업 도구입니다. 독립적인 서비스로 출시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포춘 100대 기업의 77% 이상이 사용하는 필수 플랫폼으로 자리잡으며 그 효율성을 증명했습니다. 슬랙은 주제별 '채널' 중심의 대화 구조, 수천 개의 외부 앱과 연동되는 확장성, 그리고 강력한 검색 기능을 통해 파편화된 업무 정보를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Editor's Pick!
- 이미 방 안에는 긴장감이 있었어요. 제가 앞으로 나가서 말을 시작했는데, 첫 문장을 끝내기도 전에 울기 시작했습니다.
- 피벗은 하늘에서 아이디어를 꺼내 오는 식이면 안 됩니다. 질문은 “우리의 경로에서 무엇이 보였는가?”여야 합니다.
- 저는 이게 의도할 수 없는, 그리고 재현할 수도 없는 최고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 저와 제 팀의 길이 끝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너무나 흐릿하고 힘들었지만, 언젠가 당신이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점을 꼭 기억하세요.
가상 인터뷰
본 아티클은 팟캐스트 <The Big Pivot | Masters of Scale>의 내용을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Q. 스튜어트, 환영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대담한 피벗을 찬양하죠. 시간이 지나면 쿨하고 멋져 보이지만, 실제 그 과정은 훨씬 더 지저분합니다. 그래서 오늘 당신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당신은 두 번의 거대한 피벗을 성공시켰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군요. 저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합니다. 아주 광적인 게이머는 아니지만요. 특히 보드게임이나 카드 게임 같이 사람들을 함께 모이게 하는 옛날식 게임을 좋아해요. 저는 이런 경험을 비디오 게임으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환경이 익숙했거든요.
저는 캐나다의 어촌 마을인 런드에서 자랐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101번 고속도로를 북쪽으로 도로가 끝나는 데까지 달려가면 도착하는 곳이죠. 런드는 19세기 말에 세워졌지만, 1960년대에는 주로 미국 히피들이 정착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태어났죠. 저는 몇 년 동안 수돗물도 수도시설도 없는 통나무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어요.

그런 열악한 환경이 제가 기업가가 되는 데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제 생각, 게임이 어떻게 사람을 모을 수 있는지를 알아가는 데에는 큰 영향을 준 시기였죠.
아버지는 브릿지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컴퓨터를 상대로 브리지를 두는 건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거기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게임하곤 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마법이 있었죠. 브릿지를 하면 머리를 쓰게 되고, 그 자체가 즐겁고, 동시에 동료애도 생기고, 서로 농담 섞인 도발도 하고, 적당한 경쟁도 생기니까요.
제게 흥미로운 건 게임 자체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핑계로서의 ‘놀이’예요. 그래서 저는 첫 번째 사업으로 ‘게임 네버엔딩’이라는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Q. 하지만 타이밍이 영 좋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네, 우리는 그 게임으로는 절대로 투자받지 못할 상황이었어요. 전 모든 걸 다 해봤습니다. 저축한 돈을 전부 쏟아부었고, 친구와 가족에게도 가능한 만큼 손을 벌렸고, 겨우 받을 수 있었던 극소수 엔젤투자도 사실상 거의 다 써버렸어요.
죽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대책이 필요했죠. 평시에 기회를 보고 피벗을 하기도 하지만, 저는 실패 직전에 생존을 위해 다음 단계를 떠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뉴욕 호텔 화장실 변기 앞에서 갑자기 계시가 찾아온 거죠.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에 대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뚜렷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아니었어요. 우리는 이미 게임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었는데, 게임 안에는 인벤토리가 있었고, 오브젝트를 주울 수 있었죠. 그 인벤토리를 사진으로 가득 찬 신발 상자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그룹 대화 위로 드래그하면 상대방 화면에 바로 뜨게 할 수 있었죠. 실시간으로 주석도 달 수 있었고요. 또 게임 안에 채팅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어요. 그게 결국 플리커의 핵심 요소가 됐죠.

Q. 지금이야 굉장히 일상적인 기능이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을 것 같은데요.
사실 플리커 자체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형편없는 아이디어였어요. 기술적 혁신이 많아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긴 했지만, 아주 유용한 제품은 아니었거든요. 더욱이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는 완성된 형태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사진을 공유한다’라는 개념은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나자, 플리커가 가능성이 있다는 게 꽤 분명해졌어요.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고, 좋은 기사들도 많이 나왔죠.
Q. 다행이네요. 하지만 당신을 포함해서 당신의 팀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모였잖아요. 운영 중이던 게임을 중단하고 플리커로 전환할 때 팀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솔직히 힘들었어요. 분명히 의견 차이도 있었고요.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게임과 플리커를 동시에 만들기도 했어요. 팀이 여전히 크게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 투표를 했습니다.
그 장면은 지금도 아주 선명히 기억나요. 왜냐하면 제가 약간의 뒷거래식 정치 작업을 해야 했거든요. 첫 번째 투표 결과는 동점이었어요. 그래서 뉴욕에 있던 공동 창업자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종의 표 거래 같은 걸 해야 했습니다. 마치 제가 상원의원이 된 것 같았죠.
계속 두 아이디어를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오래 갈 수는 없었어요. 둘 다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손을 맞잡고 절벽 아래로 함께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팀을 위해서 하나만을 골라야 했습니다. 동시에 팀을 함께 데리고 가야 했죠. 피벗이 모두의 결정이라고 느껴지게 해야 했고요. 설득 끝에 필요한 표는 거의 다 확보했지만, 단 한 명이 반대하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무급으로 일할 준비가 되었지만, 팀에서 계속 돈을 받고 있던 아이가 있는 사람이 있었죠. 루디코프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입에 풀칠해야 했고, 축구 캠프 비용도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게임 작업을 멈추고 플리커에 완전히 집중하기 위해 저는 마지막으로 그를 설득해야 했어요.
이런 식이었죠. “우리 이걸 몇 달만 더 해보고 상황을 보자. 그런데 계속 돈을 받고 싶다면, 우리가 이걸 지속할 방법은 이것뿐이야.” 저는 그 말을 위협적으로 하려던 건 전혀 아니었어요. 어차피 현실적으로 당시에 게임으로는 절대 투자를 못 받았으니까요. 다행히 그는 제 말을 이해했고, 결국 동참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투표했고, 이번에는 플리커 쪽이 이겼습니다.
Q. 결국 팀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군요. 그렇다면 당시 시장의 반응은 어땠나요? 플리커에 우호적이었나요?
당시 거의 모든 사진 공유는 전적으로 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그게 사람들이 사진으로 하고 싶어 하는 전부라고 여겨졌죠. 어떤 의미에서는 그 덕분에 오히려 쉬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쟁이 심했어요. 스냅 피시, 셔터 플라이도 있었고, 코닥이 인수해서 강하게 밀고 있던 오포토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들 중 누구도 인터넷 자체를 사회적 매체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또 사진을 올려두기에 가치 있는 장소라고 보지도 않았고요.
지금은 사진 공유라는 개념이 익숙하게 느껴지죠.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의 전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태깅, 공유, 팔로우, 밈까지. 어떻게 보면 첫 소셜미디어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만의 강력한 무기도 존재했습니다. 바로 문화였어요. 플리커가 온라인 커뮤니티로 성공하려면, 진짜 커뮤니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화를 만드는 데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플리커 공동 창업자이자 제 전 배우자인 카테리나 페이크는 모든 사용자를 한 명 한 명 직접 맞아줬어요. 우리 팀의 다른 디자이너였던 조지 오츠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결국 플리커를 위대하게 만든 많은 것들이, 저는 공동체의 작은 씨앗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Q. 플리커 커뮤니티는 빠르게 성장했고, 2005년에 야후에 매각됐죠. 그리고 2008년 당신은 야후를 떠났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저는 돈도, 인맥도, 실적도 있었죠. 과연 제가 뭘 했을까요? 저는 새로운 온라인 소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글리치’라는 게임이었어요. 아이디어는 거의 ‘게임 네버엔딩’과 같았어요. 다만 기술이 훨씬 좋아져서 사람들이 더 창의적일 수 있었고, 표현의 충실도도 훨씬 높았죠.
돌이켜보면 확실히 쉬운 판매 대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게임은 다를 거라고. 이번 게임은 크게 성공할 거라고. 우리로서는 이제 돈도 있었고, 인맥도 더 좋아졌고요. 게다가 그 7~8년 사이에 컴퓨터 하드웨어가 100배는 좋아졌죠. 우리도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로서 더 경험이 많아졌고 더 유능해졌고요.
그러니 생각은 이랬어요. “아, 이번에는 실패할 수가 없겠다.” 이렇게 많은 10배 요소들이 겹쳐서 우리에겐 1,000배, 혹은 1만 배쯤 쉬워진 셈이니, 실패한다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Q. 확실히 이전과 비교했을 때 자원이 훨씬 풍부해졌는데요. 피벗을 두 번 했다는 건 글리치도 잘 안됐다는 거겠죠?
게임이 어느 정도 배포됐을 때, 저는 이미 이게 상업적으로 적합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물론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는 제품이었죠. 그 사람들은 일주일에 20시간씩 플레이했고, 굉장히 헌신적이었고, 커뮤니티도 정말 단단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 그러니까 가입자의 97%쯤은 5분 안에 나가버렸습니다.

우리는 다시 빠르게 돈을 잃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번엔 걸린 것도 훨씬 컸죠. 4년의 개발, 직원 45명, 수만 명의 플레이어, 1,750만 달러의 투자금. 저는 생애 두 번째로 생명줄이 필요해졌습니다.
마지막 18개월은 거의 실험의 연속이었어요. “이걸 해보면 어떨까? 저걸 해보면 어떨까? 뭔가 이 기능 하나만 빠진 건 아닐까?” 우린 어느 정도 평판도 있었고, 인맥도 더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꽤 능숙했어요. 그래서 늘 다음 시도가 글리치를 살려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밤이었어요. 그냥 믿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좋아, 이걸 되살리기 위해 우리가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디어 15개를 우선순위대로 다 시도해 봤어. 그런데 앞의 15개가 안 됐는데, 16번째가 될 리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제가 사랑하는 제품과 팀을 다시 접어야 했습니다.
정말, 너무 힘들어요. 왜냐하면 CEO의 일이란 대개 충분한 수의 사람이 믿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세상에서 뭔가를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투자자도 설득해야 하고, 언론도 설득해야 하고, 잠재적 직원도 설득해야 하고, 고객도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많은 사람을 설득해 왔어요.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라고, 전에 하던 일을 떠나라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낮은 급여를 받고 대신 지분을 받으라고.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게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거죠.
우리 이사회와 투자자들과도 결론을 내기 어려웠어요. 사실 그들은 우리가 계속 가길 원했거든요. 다른 공동 창업자들과의 대화도 어려웠습니다. 그들 역시 계속 가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런 대화를 다 하고 나서 전체 회의를 열었습니다. 사전 공지가 없었던 이례적인 전체 회의였기 때문에, 이미 방 안에는 긴장감이 있었어요. 제가 앞으로 나가서 말을 시작했는데, 첫 문장을 끝내기도 전에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딱 한 직원과 눈이 마주쳤어요. 불과 3개월 전에 우리와 일하려고 밴쿠버로 이사 온 사람이었죠. 그 사람은 장인이 사는 곳을 떠나왔는데, 장인이 그때 18개월이나 두 살쯤 됐던 딸을 돌봐주고 있었어요. 집도 샀고요. 그런데 이제 제가 그에게 “당신은 더 이상 직장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거죠.
Q. 정말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존경하는 부분은, 그런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단순히 책임만 진 걸 넘어서 직원들을 위해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는 사실이죠.
저와 몇몇 웹 개발자들은 글리치닷컴에 페이지 하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Hire A Genius’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어요. 거기에 모든 직원의 링크드인, 포트폴리오, 사진을 올렸죠. 그리고 언론사들이 보도자료를 받는 순간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정보가 같이 나가도록 설계했습니다. 직원 추천서를 쓰고, 이력서 코칭도 했고요.
저는 “모든 사람이 다음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일한다”라고 결정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새 일자리를 찾아줬어요. 고객에게는 환불받거나, 우리가 돈을 보관하게 두거나, 정해진 자선단체 목록에 기부하도록 선택권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걸 굉장히 우아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나중에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큼 많은 호의와 신뢰도 쌓을 수 있었죠.

Q. 피벗의 핵심이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충분히 돌봄 받았다고 느끼면, 계속해서 당신을 돌봐준다는 것이요. 그리고 동료들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위해 장대한 작별 파티를 열었다고요?
글리치에 있던 많은 사람이 원한 건, 그 커뮤니티에 멋진 작별 인사를 해주는 것이었어요. 우리에겐 기수 캐릭터가 있었는데, 원래는 종말의 기사 중 하나 같은 존재였죠. 종말의 종을 들고 다니면서 “끝이 가까워졌다” 같은 말을 하곤 했어요.
많은 사용자들이 “세상의 끝” 파티를 하자고 외쳤어요. 세계의 한 구역에서 큰 파티가 열리면, 그 구역이 닫히고, 그러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이어가는 식이었죠.
사실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런 경험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도 맞지만요. 실제로 아까 말한 그 직원도 우리가 다시 채용했고, 그는 초기 슬랙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결국 잘 풀렸죠.
Q. 정말 우아하게 마무리를 지었는데요. 그 이후로 바로 슬랙으로 넘어간 건가요?
우리는 분명 계속 함께 일하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아직 돈도 남아 있었죠. 투자자들도 돈을 돌려받고 싶어 하진 않았습니다.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아직 여기서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왜 3분의 2 손실을 확정 짓겠어요?
그때 은행에 550만 달러쯤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완전히 닫을 필요는 없었죠. 그런데 실제로 많은 회사가 마지막 1달러까지 버티면서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우리가 일찍 접은 것의 좋은 점은,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었어요.
몇 주 안에, 아마 3주쯤이었을 거예요. 물론 그 전에 멍청한 아이디어들도 많았지만, 우리가 게임을 만들며 내부용으로 개발했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하나의 제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걸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엄청난 연습량이 축적된 결과이기도 했지만, 거의 산 정상에서 내려온 계시처럼 느껴지는 비전이기도 했죠.
사실 성공적인 피벗은 대체로 회사의 원래 미션과 어느 정도 가까운 곳에 머문다는 원칙이 있죠. 하지만 저는 이 지점에서 예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창업자들에게 이렇게 자문해 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위에서, 다른 대안적 플레이로 이어질 만한 무언가를 본 적이 있는가?”
피벗은 하늘에서 아이디어를 꺼내 오는 식이면 안 됩니다. “자,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자. 이커머스 사이트를 만들까? 모바일 게임은 어때? 피자 배달 식당은?” 이런 식이면 안 되죠. 질문은 “우리의 경로에서 무엇이 보였는가?”여야 합니다.
Q.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슬랙을 만들고 있었던 거군요. 그 초창기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는 넷뿐이었고, 자연스럽게 아주 오래된 인터넷 프로토콜인 IRC를 썼어요. 인터넷 릴레이 채팅이죠. 웹보다도 몇 년 먼저 나온 기술입니다. 너무 오래된 기술이라, 지금은 너무 당연한 기능들이 많이 빠져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메시지 저장 및 전달 기능이었죠. 예를 들어 제가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데, 당신이 그 순간 접속해 있지 않으면 보낼 방법이 아예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오프라인일 때 전송된 메시지를 모두 기록해 두는 봇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온라인으로 돌아왔을 때 읽을 수 있게 하려고요. 그렇게 만들고 나니 “와, 이 메시지들을 검색할 수 있으면 진짜 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검색 기능도 쉽게 붙일 수 있었고요.

그건 우리가 따로 생각하거나 토론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이름도 없었고요. 그냥 배경에 있는 무언가였습니다. 저는 이게 의도할 수 없는, 그리고 재현할 수도 없는 최고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자아를 최대한 빼는 거죠. 추측도 없고, “사용자는 이걸 원할 것 같아” 같은 상상도 없습니다. 그저 내게 가장 짜증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소한의 시간을 들이고, 직접 써보고, 그다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보는 거죠.
Q. 그리고 이번에도 팀을 설득해야 했겠군요. 이번에는 쉽게 설득이 됐나요?
제가 “내 생각엔 우리가 슬랙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나 만든 적이 있어요. 아직 실제로 만들기 시작하기도 전이었죠. 놀라운 건, 거기엔 우리가 실제 출시 때 사용한 가격 정책이 그대로 들어 있었고, 제품 비전도 정확히 같았고, 마케팅 방식도 정확히 같았다는 거예요.
모든 게 미리 설정돼 있었고, 바꿀 필요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만의 1인 시장, 즉 우리 팀 자체를 상대로 3년 반 동안 제품-시장 적합성을 찾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글리치를 개발하는 3년 반 동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3년 반 동안 슬랙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이 모든 일은 사실 72시간 안에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주일 안에는 완전히 이 계획 위에 올라타 있었죠. 우리가 뭔가를 손에 넣었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그걸 써보며 얻은 가치가 컸으니까요. 다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Q. 예상치 못한 피벗 이후 슬랙을 만들기까지 흐름이 굉장히 수월하게 들리는데요. 그 사이 어려움은 없었나요?
한 가지 우리가 과소평가한 건, 사람들을 갈아타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렵냐는 점이었어요.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가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우리가 경쟁하던 건 다른 제품이 아니었어요. 사실상 이메일이 경쟁 상대였고, 이메일과 경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또 버그 트래커를 쓰든, 위키를 쓰든, 구글 행아웃을 쓰든, 스카이프를 쓰든, 사람들이 원래 하던 각자의 방식이 경쟁 상대였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겐 슬랙이 필요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슬랙을 써보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우리에게는 사회적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우리 팀 말고 다른 팀 사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죠. 우리가 우리 제품을 쓰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요.
지금은 사라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라디오에서 일하던 친구들이 있었고, 제가 이사회에 있던 집주인-세입자 앱 코지라는 회사도 있었고, 원트풀이라는 기프팅 서비스 회사를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우리는 그 사무실들에 계속 찾아가서, 왜 이 제품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할 방법을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그들은 우선 친구들이었고, 기술 친화적이었고, 새로운 제품을 써보는 데도 적극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어려운 건, 한 사람만 바꾸는 게 아니라 한 그룹 전체를 한꺼번에 바꿔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벽을 넘고 나면, 그 어려움 자체가 장점이 되기도 했어요. 한 그룹이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시 다른 무언가로 갈아타게 만드는 건 훨씬 더 어려워지거든요. 그래서 슬랙은 초기에 스케일 시키기 아주 흥미로운 제품이었습니다. 회사와 회사 사이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아주 약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이분법적이었어요. 100% 전환되거나, 아니면 아예 안 되거나 둘 중 하나였죠.
Q.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뭐였나요?
과거의 저 자신에게 전화해서 단 하나의 조언만 해줄 수 있다면, 저는 그냥 그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라고 말할 것 같아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 말이죠. 왜냐하면 그걸 못 하면,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시장에 대한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외부 요인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제가 사업을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팀을 그 여정에 함께 데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훌륭한 이야기로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바뀐 순간들을 찾아내야 하죠. 호텔 화장실이든, 산 정상에서 내려온 듯한 아이디어를 팀에게 들고 와야 했던 순간이던 말이죠.
당신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내세요. 그러면 공동 창업자, 직원, 투자자를 함께 데리고 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Q.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저는 이전 글리치를 정리하며 여러 직원을 해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슬랙을 시작하며 옛 동료들에게 다시 연락했고, 다행히도 몇몇을 합류시킬 수 있었어요. 약간 동창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슬랙’이 탄생했죠.
저와 제 팀의 길이 끝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너무나 흐릿하고 힘들었지만, 언젠가 당신이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점을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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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비즈쿠키는 늘 독자분들께 "도움이 되는" 아티클을 제공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 아티클마다 독자분들이 어떻게 느끼셨는지가 참 궁금해요.
독자분들의 짧은 한 마디를 보면서 에디터들은 일주일 동안 뿌듯해 한답니다. (정말로요)
P.S.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후기를 남겨주시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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