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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새로운 트렌드, 리버스 플립

인도 스타트업, 왜 리버스 플립을 채택할까

2023.05.23 | 조회 906

CapitalEDGE

글로벌 테크 + 벤처 + 투자에 관한 '관점'과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상장을 위해 인도로 방향을 튼 역외 인도 유니콘들

얼마 전 영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이 런던 증시 대신 나스닥 단독 상장을 선택하며 영국 당국이 자존심을 구긴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신임 총리인 리시 수낙이 직접 나서 ARM을 소유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설득에 나섰지만 비전펀드의 실적을 회복하기 위한 한 방이 절실한 소프트뱅크는 결국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미국 단독 상장을 선택한 것입니다.

ARM의 미국 상장을 영국 자본시장의 추락으로 묘사한 파이낸셜타임즈 기사
ARM의 미국 상장을 영국 자본시장의 추락으로 묘사한 파이낸셜타임즈 기사

반면 최근 들어 미국과 같은 글로벌 거래소 상장을 포기하고 자국 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해 미국이나 싱가폴에 설립된 법인까지 본국으로 이전시키는 '리버스 플립(Reverse Flip)'으로 주목받고 있는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큰 벤처 투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인도가 그 주인공입니다.

 

어떤 의미인가?

인도는 100개가 넘는 유니콘 기업을 배출한 스타트업의 요람입니다. 특히 미-중 갈등 이후 중국의 대체 시장으로 주목받으며 이머징 마켓 투자를 원하는 벤처 자금이 몰리고 있는 곳이며, 연간 벤처 투자 규모가 30조 원을 넘는 시장입니다.

2022년 말 기준 108개의 유니콘 기업이 위치한 인도
2022년 말 기준 108개의 유니콘 기업이 위치한 인도

한편, 인도는 자본시장의 폐쇄성과 규제의 모호성 측면에서 한국과 종종 비교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본의 국적을 묻고, 해외투자를 약탈적 자본으로 간주하며 스타트업이 해외에 법인을 세우는 것도 '국부유출'이란 프레임을 적용하는 곳이 인도이기도 합니다.

  • 인도 기업이 해외 거래소에 상장할 경우, 일정 기간 내 인도 증시에 동시 상장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 결과 미국에 상장된 인도 스타트업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 2018년 플립카트를 월마트에 매각하며 4조 원의 차익을 얻은 타이거글로벌은 아직까지 인도 정부와 세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인도 정부가 2017년 인도-모리셔스 간 이중과세방지협약을 개정한 후 이를 소급 적용하겠다는 억지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인도의 스타트업 중 상당수는 설립 단계부터 해외 투자 유치가 수월하고 달러 결제가 간편한 미국 또는 싱가폴을 법인 설립지로 채택하여 왔습니다. 특히 인도에서 인기가 높은 와이콤비네이터 프로그램이 참여 조건으로 미국 또는 싱가폴 법인 설립을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한국의 쿠팡처럼 '미국 델라웨어 모회사 - 인도 자회사'의 구조를 채택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업가치가 조 단위에 이른 IPO 이전 단계 인도 스타트업들이 미국/싱가폴 모회사 구조를 버리고 100% 인도 기업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인도 UPI 결제의 50%를 차지한 플립카트의 자회사 PhonePe가 올해 초 인도 상장을 준비하기 위해 싱가폴 법인에서 리버스 플립을 통해 인도 법인으로 전환한 바 있습니다.
  • 또 다른 인도 핀테크 유니콘 Razorpay 또한 지난주 미국 델라웨어에서 인도 법인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인도 유니콘의 '리버스 플립'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UPI App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PhonePe (2023년 3월)
UPI App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PhonePe (2023년 3월)

인도 정부의 적극적인 구애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가 수행한 '2023년 경제 인식 조사'에서 역외 스타트업의 '리버스 플립'을 하나의 트렌드로 언급하였으며, 인도 의회는 2023년 3월 의회 보고서를 통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스타트업들의 '리버스 플립'을 독려하기 위한 주무부처 설립 및 특구 조성을 주문하고 나섰습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PhonePe나 Razorpay와 같이 상장이 다가온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인도로 리버스 플립을 감행한 이유는 성공적인 기업공개를 위해서입니다. 인도 시장의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인도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상장의 가시성 뿐 아니라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도 미국보다 인도 거래소가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나스닥 및 뭄바이 거래소에 상장된 인도 유니콘 기업의 공모가 대비 주가 변동
나스닥 및 뭄바이 거래소에 상장된 인도 유니콘 기업의 공모가 대비 주가 변동

적자 유니콘 기업의 상장에 인색하던 인도 뭄바이 거래소는 2021년 개인투자자의 청약을 제한하고 기존 주주 락업 기간을 1년으로 설정하는 것을 조건으로 유니콘 기업의 특례 상장을 허용합니다. 그 결과 2021년 7월 인도의 1위 음식 배달 기업 Zomato를 필두로 현지 유니콘 기업의 뭄바이 거래소 상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 기업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Zomato, Delhivery와 같은 플랫폼 기업은 기술주 폭락에도 불구, 공모가 대비 주가 하락폭이 크지 않은 수준입니다.
  • Zomato의 경우 4월부터 주가가 반등, 올해는 연간 최저점 대비 30% 이상의 주가 상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인도의 CRM SaaS 기업으로 2021년 9월 나스닥에 상장한 'Freshworks'는 여전히 공모가 대비 57% 하락한 주가를 기록하며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 Freshworks는 쿠팡처럼 '미국 모회사 - 현지 자회사' 구조를 채택한 덕분에 주력 사업이 인도에 위치함에도 불구 나스닥 상장이 가능하였지만...
  • ...미국의 내로라하는 SaaS 기업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며 주가가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결국 인도의 역외 유니콘 기업들은 상장 국면에서 '큰 연못의 작은 고기'가 될 것인지 '작은 연못의 큰 고기'가 될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직면한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플립과 같은 거래의 가장 큰 단점은 플립 실행 단계에서 세금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월마트가 대주주 지분을 보유한 PhonePe의 경우 '리버스 플립'을 진행하며 발생한 세금만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월마트와 같은 대기업은 자금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지분 매각 전 양도세를 선납하는 형태가 되는 '리버스 플립' 세금을 납부하면서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반면 와이콤비네이터, 타이거글로벌, 세콰이어캐피탈, 리빗캐피탈 등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투자자로부터 1조 원 가까운 자금을 조달한 Razorpay가 리버스 플립에 성공한다면 인도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거액의 세금을 선납하더라도 인도 상장을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고 있다는 시그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도 역외 핀테크 스타트업의 '리버스 플립' 시 예상 세금
인도 역외 핀테크 스타트업의 '리버스 플립' 시 예상 세금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고민하지 않은 스타트업은 있지만 한 번만 고민한 스타트업은 없다는 화두가 바로 '플립'입니다. 주식시장이 조정을 겪으며 대규모 투자를 받은 법인의 미국 플립 추진 뉴스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초기 스타트업들이 실리콘밸리 플립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인도 스타트업들의 '리버스 플립'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정답은 없습니다. 오히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미국 플립'을 성장의 돌파구 내지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치트키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Razorpay의 사례처럼 미국에 법인이 있고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하여도 상황이 바뀌자 본국으로 플립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의 '플립'에 대해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해진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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