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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가 CTO를 신설한 이유는

미국 정부가 21세기 기술 전쟁을 준비하는 방법

2023.10.31 | 조회 1.41K

2022년 처음으로 CTO 직을 신설한 미국 중앙정보국 CIA

2021년 3월 바이든 정부의 첫 CIA 국장으로 임명된 윌리엄 번스는 임기 내 목표 중 하나로 미래 스파이 및 기술 전쟁에 대비하는 최첨단 정보국으로의 탈바꿈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2022년 3월 CIA의 75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CTO 직책을 신설, 미국 펜타곤 합동인공지능센터의 CTO 겸 대행 센터장을 역임한 낸드 물찬다니 (Nand Mulchandani)를 CIA의 첫 CTO로 임명합니다.

CIA의 CTO 임명은 미국이 미래의 국가 간 경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윌리엄 번스는 과거 CIA가 국가 안보를 위한 정보 획득의 최전방에서 '국제 정세 파악', '무기 거래 탐지', '휴민트 관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활동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AI, 양자컴퓨팅, 인공위성, 우주개발, 핵융합과 같은 첨단 기술 그 자체가 국가 안보와 직결될 것이라는 판단을 바탕으로 최첨단 기술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현 CIA 국장 윌리엄 번스 - 국무부 차관까지 지낸 직업 외교관 출신 인물
현 CIA 국장 윌리엄 번스 - 국무부 차관까지 지낸 직업 외교관 출신 인물

 

"이제는 기술 자체가 경쟁과 분쟁의 영역이 되고 있습니다. CIA는 역사적으로 군사 무기에 집중해 왔으며 군사, 하드웨어, 무기 시스템에 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 그 자체가 실제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그 자체가 무기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영역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윌러엄 번스, CIA 국장

CIA가 CTO로 임명한 낸드 물찬다니의 이력 또한 흥미롭습니다. 낸드는 실리콘밸리 활동하며 25년간 무려 네 개의 기업을 창업, 모두 성공적으로 매각한 바 있는 베테랑 연쇄 창업가입니다. 워싱턴과 전혀 접점이 없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국방부의 인공지능센터에 부임, 정부부처의 기술 전략 수립 업무를 맡은 후 CIA의 CTO 자리까지 오르며 단숨에 워싱턴이 주목하는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CIA의 초대 CTO가 된 실리콘밸리 연쇄창업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지역에서 태어난 낸드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인물입니다. 코넬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후 곧바로 선마이크로시스템즈에 합류해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한 낸드는 당시 부서장을 맡았던 에릭 슈미트와 함께 근무하며 테크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합니다.

이후 1996년 처음 창업에 나선 낸드는 첫 스타트업 Oblix는 오라클, 두 번째 스타트업 Determina는 브이엠웨어(VMware), 세 번째 스타트업 OpenDNS는 시스코, 네 번째 스타트업 ScaleXtreme은 시트릭스(Citrix)에 매각하는 등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만 네 번의 연쇄 창업 이후 이를 모두 성공적인 M&A로 마무리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CIA의 초대 CTO 낸드 물찬다니
CIA의 초대 CTO 낸드 물찬다니

CIA에 합류한 낸드의 핵심 업무는 단순히 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영역을 넘어 무선통신, 반도체, 바이오엔지니어링, 퀀텀 컴퓨팅, 핀테크 및 핵 발전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 국가들이 이러한 기술을 어느 수준까지 발전시키고 향후 미국의 안보에 어떠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업무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물론 낸드가 부임하게 된 주요 배경 또한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기관들이 실리콘밸리와의 접점을 넓히고자 하는 최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AI와 같은 미래 기술 선점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는 곳이 실리콘밸리이기 때문에 CIA 또한 과거의 비공식 정보 수집 방식을 버리고 보다 직접적이고 공개된 행보를 통해 테크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늘리겠다는 전략입니다. 낸드는 최근 CIA 임원의 이름으로 워싱턴의 AWS Summit, 텍사스의 SWSX 행사에 참여하는 등 공개적인 행보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AI 정책의 토대를 마련한 백악관의 CTO

미국 주요 정부기관이 상징적인 CTO 자리를 신설한 것은 오바마 정부가 처음입니다. 과학 및 기술 정책 우선주의를 표방한 오바마 정부는 백악관의 CTO 직책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2009년 당선 이후 곧바로 버지니아 주지사의 과학기술 자문을 맡았던 아니쉬 초프라를 백악관의 초대 CTO로 임명합니다.

백악관의 CTO가 꽃을 피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정부였습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 그룹을 이끌었던 피터틸은 트럼프 당선 이후 자신의 측근 여러 명을 정부 인사로 추천하였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패밀리오피스에서 근무했던 마이클 크라시오스도 있었습니다. 2017년 불과 30살의 나이로 트럼프의 과학기술 정책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합류한 마이클은 2019년 백악관의 4대 CTO로 선임되며 트럼프 정부의 미래 과학기술 정책 입안을 진두지휘하게 됩니다. 

백악관의 4대 CTO를 역임한 마이클 크라시오스
백악관의 4대 CTO를 역임한 마이클 크라시오스

2017년 백악관 합류와 동시에 '중국 제조 2025'에 대응할 수 있는 대중 전략 수립을 이끌었던 마이클은 2019년 CTO 취임 이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가 바로 AI와 퀀텀 컴퓨팅 관련 정책 수립이었습니다.

2019년부터 백악관에서 주도한 American AI Initiatives의 기본 구조를 설계한 마이클은 AI 연구와 관련한 지원금을 2배로 늘리고, AI 서비스에 있어서는 각 정부 부처 별로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민간의 빠른 발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Light-touch 원칙을 적용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수립하였습니다.

백악관 The National Quantum Coordination Office 로고 설명
백악관 The National Quantum Coordination Office 로고 설명

또한 마이클은 백악관 내 국가양자조정실(The National Quantum Coordination Office) 설치를 주도, 미국 정부의 양자 컴퓨팅 주도권 확보의 기초를 놓았으며, 이는 바이든 정부 들어 국가양자계획(NQI) 자문위원회를 백악관 지휘권 하에 두는 조치로 이어지는 등 양자컴퓨팅 분야는 정파에 관계없이 미국의 미래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챗GPT가 등장하기 2년 전 백악관이 준비를 마친 일들입니다.

 

실리콘밸리만큼 혁신에 진심인 워싱턴

언론은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낸드, 그리스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마이클이 국가 기술 정책을 주도한다는 사실, 25년 민간에서 활동한 연쇄창업가와 경험이 일천한 30살의 보좌관에게 국가의 중차대한 업무를 맡긴 사실에 주목하지만 미국이란 사회가 가진 실용주의에 비춰볼 때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핵심은 오히려 글로벌 기술 주도권을 사수하고 미래 사회의 변화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 또한 민간 못지않게 대담하고 근본적이라는 점입니다.

1999년 CIA 주도로 설립된 벤처캐피탈 In-Q-Tel
1999년 CIA 주도로 설립된 벤처캐피탈 In-Q-Tel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부의 역할 또한 주목할 부분입니다. CIA는 이미 1999년부터 직접 투자를 통한 미래 기술 선점을 위해 In-Q-Tel 등 유관 벤처캐피탈을 활용하고 있지만 단순한 자금 출자 만으로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최근에는 내부 테크놀로지 자문 그룹을 확충하고 스타트업 기술을 직접 구매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펀드 출자가 민간 주도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챗GPT와 같은 혁신이 그저 실리콘밸리의 괴짜들에 의해 탄생하였다는 시각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 등장 이후 AI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던 그룹들이 있었고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미래를 준비해 온 결과가 오픈AI를 통해 분출되었다는 분석이 오히려 합리적입니다. 미국 정부 또한 AI의 규제 방향성에 대해 오랜 기간 검토와 준비를 해왔기에 챗GPT 등장 이후에도 허둥대지 않고 질서 있게 관련 규제와 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간 주도의 혁신을 위한 정책 담당자의 역할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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