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29. 총성 없는 전쟁, 증오와 차별의 시대

총성 없는 전쟁, 증오와 차별의 시대

홀로코스트(Holocaust)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가 동맹국을 비롯한 협력자들과 함께 60만여 명의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하는데요. 그 근간에는 유대인을 향한 증오와 편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유대주의 정서는 당시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나치가 인종적 반유대주의를 악랄하게 이용하고 조장했다고 볼 수 있어요. 나치는 세계가 인종별로 나뉘어져 있고 이들 중 다른 인종보다 우월한 인종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들에게 유대인은 열등하고 위험한 인종이기 때문에 독일 사회에서 제거 되어야 할 위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독일인들이 우수한 인종에 속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리아인’과 ‘비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을 적용했는데요. 원래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수천 년 전 인도, 페르시아 및 유럽 전역에 정착한 인도-유럽 또는 인도-게르만 민족을 식별하기 위한 용어였다고 합니다. 특히 유럽 언어와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사이의 유사점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적 특성’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였다고 해요. 이러한 언어 범주가 민족이나 인종을 지칭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어 지금까지 굳어지게 된 거죠. 그리고 일부 사상가들이 이를 기반으로 아리아인이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이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보통 홀로코스트는 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 나치 집권 초기에는 반유대차별법과 같은 법적인 차별, 다윗의 별로 불리는 표식을 통한 강제 식별, 유대인 강제 이동 등을 통해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들을 몰아내는 방식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만 따로 모아 혼잡한 환경에서 살도록 분리한 지역을 게토(Ghetto)라고 불렀는데요. 독일 점령군이 이 구역에 장벽을 세우고 경비원을 세워 유대인들이 허가 없이 게토를 떠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게토에서 유대인들을 선발해 게토 인근에 세워진 공장이나 작업장에 유대인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기도 했고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 유대인들이 주거지, 재산, 사업체, 그리고 직업까지 빼앗기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살 곳을 빼앗긴 이들이 내몰린 곳이 바로 이 게토인 거죠. 그러나 게토 안의 생활도 처참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게토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유대인들도 정말 많았다고 해요.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면 반유대주의 정서와 차별이 점차 과격해지는데요.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대량 학살 계획이 시행되면서 총살, 수용소 내 가스 방출 등의 잔혹한 방식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특히 이런 행위는 ‘절멸 수용소’라고 불리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자행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인체 실험과 같은 행위도 만연했다고 합니다. 가장 이름이 알려진 아우슈비츠 역시 이러한 절멸 수용소 중 한 곳이에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통칭하는 ‘홀로코스트’는 히브리어로 대재앙을 뜻하는 ‘쇼아(Shoah)’라고도 하는데요.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명칭보다 쇼아라는 명칭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는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지칭한 용어로 ‘전부(holo)를 태운다(kaustos)’라는 뜻의 그리스어 ‘홀로카우스톤(holokauston)’에서 따와 ‘대량 학살’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어원의 의미가 신에게 바치기 위해 태우는 방식으로 희생된 동물을 뜻하기에 유대인들은 나치의 대량 학살이 신을 위한 제물에 비유된다는 것으로 홀로코스트라는 명칭 대신 쇼아를 쓰는 거죠.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스티븐 스필버그, 1993년 개봉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큐멘터리 적 기법으로 다룬 작품으로 호주 작가 토머스 캐닐리가 실존 인물인 오스카 쉰들러의 일화를 바탕으로 집필한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가 원작입니다. 쉰들러가 구출한 유대인을 지칭하는 ‘쉰들러 유대인’ 중 한 사람이 종전 후 미국에서 가게를 운영했는데 자신의 가게를 찾은 작가에게 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에 흥미를 느낀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원작을 읽고 판권을 사 영화를 제작했는데요. 원래는 제작만 하고 연출은 마틴 스콜세이지, 로만 폴란스키 등에게 부탁했으나 돌고 돌아 결국은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빨간 코트를 입고 등장하는 아이와 후반부 쉰들러의 묘비를 찾은 유대인 등장 장면을 제외하면 모두 흑백으로 연출되었는데요. 특히 작중 쉰들러는 빨간 코트를 입은 아이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유대인을 돕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후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상징하게 되었는데요. 여담으로 실제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를 연기했던 소녀는 장성하여 현재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도시에서 난민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처참했던 유대인들의 상황과 철저한 기회주의자였던 쉰들러가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며 무려 3억 2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린 것은 물론 제66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무려 7개 부문을 수상했어요. 영화는 대부분 실화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와 다른 부분도 일부 존재하는데요. 오스카 쉰들러가 아내를 두고도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 등은 영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에 묘사된 홀로코스트 장면 대부분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나체 상태로 신체 검열을 당하는 장면이나 가스실 촬영 장면에서는 일부 배우들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촬영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유대계 감독이기도 한 스필버그 역시 촬영 내내 이루 말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과 고통에 시달렸다고 밝혔는데요. 그런 그가 의지할 수 있었던 대상이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였다고 해요. 스필버그 감독은 로빈 윌리엄스와 매주 전화 통화를 하며 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해 제작 과정에서 오는 압박과 우울감을 극복했다고 합니다.

1939년, 독일에 점령당한 폴란드의 한 도시를 찾은 독일인 사업가이자 냉정한 기회주이자인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치 장교들을 구워삶아 공장을 인수하고, 인건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수백 명의 유대인을 고용한 쉰들러는 실력 좋은 유대인 회계사 스턴을 고용하면서 그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이 심해질수록 그의 양심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데요.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했던 쉰들러는 유대인들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마침내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유대인들을 구해 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의 회계사 스턴과 함께 자신이 구해낼 유대인 명단이 적힌 쉰들러 리스트를 만듭니다.

영화는 내내 흑백 화면을 보여주다 독일군 장교 괴트(랄프 파인즈)가 게토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유대인 대학살 장면에서 처음으로 빨간 코트 입은 소녀를 등장시키는데요. 이는 오스카 쉰들러가 그동안 편의를 봐주던 인심 좋은 사장님에서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구해내는 의인으로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쉰들러가 유대인들을 구해야겠다 마음먹고 자신의 군수품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수용소에서 빼내 오기 위해 작성한 명단을 말하는데요. 그는 독일 장교들을 온갖 뇌물로 매수해 명단에 적힌 이들을 모두 수용소에서 구해냅니다. 그리고 그의 공장은 수개월 동안 실질적인 생산품을 만들지 못하고 버티다 종전을 맞이하게 되죠.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빼돌리는 비용에 공장이 돌아가는 동안 유대인들을 먹여 살리는 비용까지 그가 벌어들인 재산을 대부분 잃게 되는데요. 쉰들러가 구해낸 유대인들은 종전 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었다는 이유로 전범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재산을 모두 잃고 전범자로 낙인까지 찍힌 와중에도 쉰들러가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해내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악랄한 짓을 서슴없이 벌이던 괴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던 그가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던 유대인들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강강약약’의 모습을 지닌 이상적인 의인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강강약약’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요.😔) 그리고 고마움을 잊지 않고 대를 이어 쉰들러를 기리는 유대인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어요. 쉰들러 유대인들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탈무드의 글귀를 새긴 금반지를 만들어 건네주는데요. 이 금반지는 한 유대인의 금니를 뽑아 녹여서 만든 반지입니다. 이가 생으로 뽑히는 고통 속에서도 쉰들러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유대인의 미소가 잊히지 않더라고요.

쉰들러 유대인들이 오스카 쉰들러에게 건네준 금반지에 새긴 탈무드의 격언인데요. 실제로 쉰들러가 구한 유대인들은 삶을 이어 나가 후손을 이을 수 있었으니 쉰들러는 세상을 구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쉰들러의 인류애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주제이기도 하지만 편견과 증오가 만연해진 지금 사회에서도 누군가의 선의가 불러올 연대의 힘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쉰들러 리스트>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한 행동이라고는 믿기 힘든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참상의 근원이 단순히 다른 이를 향한 미움과 증오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더 위태로워 보이는데요.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속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어요. 오스카 쉰들러와 쉰들러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증오와 차별의 시대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의 근원은 역시 ‘사람’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날 희망과 인간애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조 래빗 (Jojo Rabbit), 타이카 와이티티, 2019년 개봉

<조조 래빗>은 크리스트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Caging Skies)⟫이 원작으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뤘다는 이유로 불호를 표현한 관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으며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받았는데요. 토론토 국제 영화제 관객상의 경우 현장에서 관객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최우수 작품에 해당하는 상으로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분의 수상으로 직결되는 것은 물론 흥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킹스 스피치>, <라라랜드>, <그린 북> 등이 모두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후 그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조조 래빗> 역시 제92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각색상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12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23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어요.

영화에는 스칼렛 요한슨,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토마신 맥켄지, 샘 록웰 등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들이 참여했는데요. 특히 주인공 조조의 미망인 엄마 로지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광기만 남은 전시 상황에서도 아들 조조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 ‘로지’를 그녀만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그려내며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 넣었습니다. 극 중 조조의 상상 속 친구인 아돌프 히틀러는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직접 연기했는데요. 원래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으나 아무도 히틀러를 연기하려고 하지 않는데다😅 감독이 직접 연기해야만 제작이 가능한 조건이었다고 해요. 참고로 감독은 폴리네이시아계 유대인 혼혈입니다.

와이티티 감독의 어머니가 원작 소설을 읽고 아들에게 영화로 만들어 볼 것을 권유했다고 하는데요. 감독은 “끔찍한 2차 대전의 이야기를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들려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어두운 배경 속에 풍자와 코미디를 균형 있게 녹여내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영화 속 나치 캐릭터들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그려내 유머 속에 ‘악의적인 이념이 얼마나 쉽게 퍼지는지에 대한 경고’를 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 방식은 새로운 결의 전쟁 영화로서 해외 유수의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1940년대 기록 영상을 많이 참조했다고 밝혔는데요. 예상과 달리 밝고 세련된 느낌에 영감을 얻어 <조조 래빗>을 밝고 생기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아이인 ‘조조’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밝은 톤의 색감과 함께 주인공들의 의상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이 역시 방대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토대로 그 당시 사람들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내 그 시절의 정서를 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색감과 패턴을 활용해 직접 의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이탈리아 코스튬 하우스를 뒤져 빈티지 의상을 공수하는 등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모습과 대비되는 사회상을 완벽히 재연해 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 시키는 데에는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를 비롯해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 등 주옥같은 명곡을 독일어 버전으로 삽입, 관객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차 대전 말기, 엄마 로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10살 소년 조조는 그토록 염원하던 독일 소년단에 입단합니다. 하지만 겁쟁이 토끼라 놀림 받는 것도 모자라 수류탄 사고로 얼굴에 흉을 얻자 낙담하게 되고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건 상상 속 친구 히틀러뿐인데요.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우연히 집에 숨어들어온 미스터리 한 소녀 엘사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엘사와의 공존 아닌 공존을 통해 겁 많고 소심했던 조조는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순수한 소년 조조의 시선을 따라가며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감독은 “어른들에 의해 생긴 역사적 증오의 감정”이 자신이 어린 시절 느낀 것과 비슷했다”라고 밝히며, 원작을 ‘세뇌된 독일 어린이의 시선’을 소재로 각색했다고 하는데요. 감독은 폴리네시아계 유대인으로 그의 어머니 역시 러시아계 유대인입니다. 원작가는 영화를 보고 “관객의 양심을 간지럽혀 관객들이 스스로 웃음 코드를 찾아내도록 하는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웃음을 단순하게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역사적 비극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 것이 옳은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희극적인 부분이 부각되지만 불편하다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어요. 아마 영화가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섰더라면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오히려 많은 이들이 영화에 공감했다는 것은 영화가 희극적인 부분을 담고 있지만 적정선을 잘 지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영화는 홀로코스트 이야기이자 어린 조조의 성장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조조가 성장하게 되는 단계마다 각각 다른 이들이 옆에서 도와줍니다. 처음 조조를 도와주는 건 조조의 상상 속 히틀러로 나치 소년단에 입단해 기쁘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느끼는 조조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두 번째는 수류탄 사고로 얼굴에 흉이 생긴 조조가 밖에 나가기 싫어하자 조조의 엄마 로지가 용기를 주죠. 마지막 조력자는 조조의 집에 숨어 지내는 유대인 소녀 엘사로 조조는 그녀를 통해 비로소 유대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영화는 조조 주변의 세 사람을 통해 조조가 어떻게 유대인들을 이해하게 되는가를 그리고 있는 셈입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조조 래빗>은 조조의 별명이기도 한데요. 조조는 나치 소년단 캠프에서 토끼를 죽여야 하는데 죽이지 못해 토끼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영화에서 토끼는 유대인을 비유하는 동물이기도 한데요. 나치는 유대인들을 토끼 같은 유약하고 박멸해야 하는 존재로 봅니다. (귀여운 토끼를 어떻게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유대인인 엘사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거예요. 조조와의 첫 대면부터 정체가 발각될 위기의 순간까지 엘사는 한 번도 유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뛰어난 임기응변과 함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죠. 감독은 이를 통해 사실 유대인들은 전혀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부수고 조조가 변화하고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소개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신은 인간을 만들기 전에 (Go to the Limits of your Longing)』의 한 구절인데요.(어쩌다 보니 이번 레터의 한 마디는 모두 영화 속 대사가 아닌 격언과 시 구절을 고르게 되었네요🤓) 저는 이걸 영화의 주제와 연관 지어 ‘공감’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어요. ‘조조’가 마침내 엘사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장하게 된 것은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알고 변화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나치와 같은 악한 이들은 타인에게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는데요. 발행인이 (다소 거창하지만) 인간으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 목표가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이기에 개인적으로 영화도 릴케의 시 구절도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Epilogue

홀로코스트는 그동안 영화에서 많이 다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정확한 의미를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 레터를 준비하면서 구체적인 정의와 개념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게 되었어요. 세상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영화도 알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커진다고 한 인간의 열등감과 증오심에서 비롯된 끔찍한 참상을 겪고도 여전히 증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나온 역사와 타인의 고통은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마크 허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아일랜드 작가 존 보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유대인 학살을 다루고 있음에도 잔혹한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는 결말로 인해 짙은 여운을 남긴 작품이란 평이 많은데요. 특히 두 소년의 우정을 통해 드러내놓고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쉰들러 리스트>, <조조 래빗>과 함께 보기 좋은 작품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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