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26. 사랑하고 싶은 런던의 가을

노팅힐 (Notting Hill), 로저 미첼, 1999년 개봉

로맨스 영화 그것도 런던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노팅힐>을 빼놓을 순 없죠.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올 타임 베스트 로맨스 영화로 불리는 작품이자 ‘워킹 타이틀’을 로코의 명가로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그와 더불어 런던의 노팅힐 지역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어 주기도 했고요.😉 휴 그랜트가 노팅힐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 윌리엄 태커를, 줄리아 로버츠가 평범한 사랑을 기다리는 유명 배우 애나 스콧을 연기했는데요. 두 사람은 감독인 로저 미첼과 각본가 리차드 커티스가 윌리엄과 안나 역으로 가장 먼저 캐스팅하고 싶었던 배우였다고 합니다. 줄리아 로버츠의 경우 애나 스콧이 진부한 캐릭터라 생각해 거절하려 했으나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을 돌려 출연을 결심했다고 해요.

영화는 개봉 이후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인생 로맨스 영화로 불리며 사랑받았는데요. 제작비 4천2백만 달러로 무려 3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아 영국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을 비롯해 영국 코미디상, 영화 음악상인 브리트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특히 영화의 삽입곡인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이 곡은 원래 프랑스 가수 샤를 아즈나부르가 부른 곡이 원곡이라고 합니다. 감독이 영어 버전으로 번안을 부탁하여 사용하였고, 영화가 종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번안곡 역시 원곡의 인기를 뛰어넘게 됐어요.

세계적인 스타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불리는 ‘애나 스콧’. 보이는 화려함과 달리 그녀는 평범한 사랑을 꿈꿉니다. 런던 노팅힐에서 여행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남자 ‘윌리엄 태커’는 우연히 자신의 서점을 찾은 애나 스콧과의 예기치 못한 만남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아주 평범한 사랑을 기다리는 여자 애나와 너무 특별한 사랑이 두려운 남자 윌리엄의 동화 같은 로맨스가 런던 노팅힐에서 펼쳐집니다.

영화는 런던의 노팅힐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하다 못해 소심해서 어딘가 짠해 보이는 남자 윌리엄 태커가 우연히 자신의 서점을 찾아온 미국의 유명배우 애나 스콧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전형적인 로맨스 장르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보통의 로맨스 영화가 평범한 여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전개라면, <노팅힐>은 평범한 남자가 여신을 만난다고 해야 할까요. <노팅힐>이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며 때로는 ‘인생 로맨스 영화’로 불리는 이유는 매력적인 주인공과 윌리엄과 애나를 연기한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케미, 윌리엄의 친구들로 등장하는 감초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극 중 윌리엄은 어디 데려다 놔도 눈에 띄지 않을 무채색에 가까운 평범한 남자로 그려집니다. (그 시절 휴 그랜트의 미모가 유일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긴 합니다…🙄) 윌리엄의 평범함은 관객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애나와 윌리엄의 만남, 이별, 재회의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로맨스 감성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두 사람의 위치를 보여주는 장면들도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하나 남은 브라우니를 두고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 찾기 대결’ 장면은 특별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자 힘든 순간을 견뎌 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발행인 픽 <노팅힐> 속 장소는 윌리엄의 서점이 있던 ‘포토벨로 로드’입니다. 노팅힐(Notting Hill)은 빅토리아 양식의 고급 주택들이 늘어선 모던한 분위기와 캐주얼한 카페와 빈티지 숍이 자리한 포토벨로 로드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지역인데요. 포토벨로 로드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포토벨로 마켓’은 캠든, 버로우, 브릭레인과 함께 런던의 4대 마켓으로 불리며,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찾는 노팅힐의 대표 명소입니다. 서점으로 등장했던 곳은 원래 ‘니콜라스 앤틱’이라는 이름의 골동품 가게로 이후 영화와 똑같은 서점이 인근 골목에 생겼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고 해요. 윌리엄 태커가 살던 파란 대문 집은 각본을 쓴 리차드 커티스의 집으로 영화 개봉 이듬해 검은 문으로 교체된 후 경매에 부쳐졌다고 하니 아쉽지만 <노팅힐> 속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장소들은 관객의 추억 속에 묻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노팅힐>은 런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영화이기도 한 만큼, 노팅힐을 비롯해 피카딜리 리츠 호텔, 로스메드 정원, 햄스테드 히스, 코로넷 극장, 사보이 호텔 등 런던의 주요 명소들이 고루 담겨있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런던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런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설렘을 안겨주는 런던 여행의 바이블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Man Up), 벤 팔머, 2015년 개봉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재간둥이 포지션을 맡고 있는 사이먼 페그와 볼수록 매력적인 레이크 벨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개봉 기간이 짧아 생소한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발행인 역시 OTT의 바다에서 방황하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작품입니다. 심지어 원제목과 국내 버전 제목의 간극이 커서 더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원제목은 <Man Up>으로 ‘책임감 있게, 남자답게 행동하자’는 의미로 주인공 낸시가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내뱉는 말이기도 하며 지나간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고 마침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의미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로맨스’ 장르에 맞춰 제목을 좀 더 유하고 로맨틱하게 바꾼 것 같더라고요.

장르적인 클리셰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영국 특유의 유머가 가미되어 보고 있으면 피식피식 웃음 나는 생각보다 꽤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와 달리 주인공들이 엄청난 미남 미녀가 아니란 점도 영화 속 캐릭터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은데요. 개인적으로 사인먼 페그의 유머를 무척 사랑하는 팬으로서 볼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레이크 벨과의 케미가 돋보여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두 사람의 팬이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오랫동안 만났던 남자친구로부터 한순간 이별을 통보받고 오랫동안 연애 지수 0% 상태로 지내온 ‘낸시’는 부모님의 결혼 40주년 파티에 가는 기차 안에서 얻게 된 책 한 권 때문에 만나게 된 ‘잭’에게 묘한 끌림을 느낍니다. 그리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잭의 가짜 소개팅녀 행세를 하고, 두 사람은 런던에서 생애 최고의 유쾌한 데이트를 즐깁니다. 그러나 낸시 앞에 나타난 동창으로 인해 거짓말로 시작된 데이트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요. 솔직 발랄을 넘어 발칙한 낸시와 잭의 만남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요?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은 사랑에 아픔을 가진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진정한 짝을 이루게 되는 하루 동안의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라는 로맨스 장르의 큰 틀 안에 영국식 유머를 적당히 버무린 유쾌한 영화로 가볍게 보기 좋은데요. 그렇다고 영화가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시종일관 핑퐁처럼 주고받는 낸시와 잭의 대화 속에 남녀가 만나 평생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명적인 만남이나 극적인 로맨스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취향 그리고 대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노팅힐>이 런던을 배경으로 연애 감성 판타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로맨스 영화의 정석이라면,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은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도 결국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콩깍지 완벽하게 벗겨진 지나치게 현실적인 으른(?)들의 사랑이야기로 두 영화를 모두 보고 나면 런던 로맨스의 단짠 조합을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드실 수도 있을 거예요.😂

영화 속 ‘런던 시계탑’은 워털루역 시계탑을 말하는데요. 워털루역은 템즈 강 남쪽 사우스뱅크 지역에 위치한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철도역입니다. 여행자에게는 <해리포터 시리즈> 속 킹스 크로스 역의 배경이 된 ‘세인트 판크라스’역이 더 알려져 있을 것 같은데요.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유로스타가 원래는 워털루역에 있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으로 옮겨갔습니다. 워털루역은 주로 잉글랜드 남부를 오가는 지역 열차가 다니기 때문에 런던 사람들에게는 세인트 판크라스 보다 워털루 역이 더 익숙하고 친근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도 소개팅 만남의 장소로 등장한 게 아닐까요. 런더너들에게 워털루역에서 만나자는 의미를 서울로 치환하면 강남역이나 홍대 앞에서 만나자는 의미와 비슷할 것 같네요.

Epilogue

로맨스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며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마침내 두 사람이 이어지는 결말의 판타지 역시 커지는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로맨스 장르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지 장소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고 함께하는 곳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낭만과 판타지를 배가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런던은 사랑하고 싶은 도시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고백하자면 발행인 한정 최애 도시가 런던이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네요.😅)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마이크 뉴얼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노팅힐>의 각본을 쓴 리차드 커티스의 초기작으로 로맨스 영화 속 휴 그랜트의 ‘어설픈데 자꾸 생각나서 챙겨주고 싶은 남자’ 이미지를 처음 만든 영화이기도 합니다.😂 리차드 커티스는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무려 65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제목 그대로 4번의 결혼식과 1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주인공 찰스의 모습과 이 과정에서 사랑을 이룬 이, 사랑에 실패한 이, 죽음을 맞이한 이 등을 그리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았습니다. 영화는 실패할 거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제작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며 이후 워킹 타이틀이 로맨스 명가로 이어지는 기틀을 만들어 준 작품이 되었어요. 저는 제목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EBS 세계의 명화]를 통해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바쁜 영국 남자 찰스와 미국에서 온 여자 캐리는 한 결혼식장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고 서로에게 끌려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자꾸만 어긋나고, 절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사망하며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 찰스는 영원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과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모든 로맨스 영화의 결말이 그러하듯 찰스와 캐리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깨닫고 짧았던 인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을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잊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했던 찰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상적인 사랑을 이뤄내는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90년 런던의 풍경과 함께 영국의 결혼 문화를 엿보는 재미도 있는데요. <노팅힐>,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과 함께 보기 좋은 작품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소개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OTT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 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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