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14. 케이트 블란쳇의 순간들 (배우특집 ep.3)

케이트 블란쳇의 순간들

케이트 블란쳇은 국립 연극학교를 졸업 후 호주에서 활동하다 런던 연극계로 진출, 이어서 영화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 출연하는 작품마다 캐릭터와 혼연일체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배우입니다. 작품 선구안도 뛰어난 편인지 출연했던 대부분의 작품이 유수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었어요. 메릴 스트립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는데요. 이번 95회 아카데미를 포함하여 8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화배우로 익숙하지만, 데뷔는 연극무대였기 때문인지 연극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모국인 호주에서의 작품 활동에도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해요.

케이트 블란쳇이 대중과 평단에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1998년 영화 <엘리자베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당 작품에서 열연을 펼쳐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각국 비평가 협회에서 여우주연상을 석권했거든요. 이후 2004년 하워드 휴즈의 전기 영화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헵번을 완벽하게 연기해내며 제77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여담이지만 해당 작품은 아카데미에서 유독 상복이 없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대놓고 오스카를 노린 영화로 불렸다고 하는데요. 정작 트로피는 케이트 블란쳇에게 돌아갔네요.😂 2007년과 2008년에도 연달아 아카데미에 노미네이션 됐는데요. 특히 2008년에는 10년 만에 다시 엘리자베스 1세를 연기한 <골든 에이지>와 밥 딜런의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로 더블 노미네이션을 달성했어요. <아임 낫 데어>에서는 밥 딜런과 소름 돋는 싱크로율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남성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걷는 자세부터 세밀한 몸동작까지 분석하고 연구해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요. 이후 2013년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에서 뉴욕 상위 1% 상류층에서 한순간에 추락한 후 재기를 꿈꾸는 ‘재스민’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제86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물론 그해 모든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영화 <캐롤>로 다시 한번 각종 영화제에서 주연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어요.

케이트 블란쳇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신비로운 요정부터 위엄이 넘치는 여왕, 여배우, 남성, 노숙자, 악랄한 빌런 등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무엇보다 실존 인물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데요. <엘리자베스>와 <골든 에이지>에서는 역사책에서 보고 머릿속으로 그렸던 엘리자베스 1세 그 자체였고, <에비에이터>에서는 지적이면서도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케서린 헵번이 되었다가, <아임 낫 데어>에서는 밥 딜런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여성임에도 남성 실존 인물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그리고 <블루 재스민>과 최근 개봉한 <타르>를 보면 창조된 캐릭터지만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는데요. 모든 작품마다 케이트 블란쳇이 케이트 블란쳇 했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배우입니다.

제가 케이트 블란쳇을 처음 본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었어요. 그때는 갈라드리엘이 케이트 블란쳇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한참 뒤에 알고 깜짝 놀랐지만요.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작품은 브래드 피트와 함께 작업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였습니다. 발레리나로 나왔던 케이트 블란쳇의 고혹적인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 그 이후로 그녀의 이전 작품과 출연 작품을 틈틈이 찾아서 보게 됐거든요. 모든 작품마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에 감탄하며 팬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배우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만큼 추천 영화도 많지만 이번 레터에서는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블루 재스민>과 <캐롤>을 소개해 드립니다.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우디 앨런, 2013년 개봉

재스민은 사업가 ‘할’과의 결혼으로 부와 사랑을 모두 가진 뉴욕의 상위 1%로 햄튼에 위치한 고급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맨해튼 5번가에서 명품 쇼핑을 즐기며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산산조각 나는데요. 결혼생활을 끝내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그녀는 여동생 ‘진저’에게 신세를 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고급 매장 하나 없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 재스민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여동생과 루저 같아 보이는 그녀의 남자친구 ‘찰리’와는 사사건건 부딪치며 갈등을 빚습니다.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 혼잣말은 늘어만 가고 신경안정제마저 더 이상 듣지 않던 어느 날, 그녀는 근사한 외교관 ‘드와이트’를 만나면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는데요. 과연 재스민은 예전의 호화로운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블루 재스민>은 남편을 잘 만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여성이 패가망신한 후 평범한 삶을 사는 여동생에게 얹혀살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우디 앨런의 영화로 1946년 말론 브란도와 비비안 리 주연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제86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케이트 블란쳇이 허영기 가득한 재스민을 완벽하게 연기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연출을 맡은 우디 앨런은 감독이자 각본가이기도 한데요. 시나리오를 쓸 때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경우는 드문데 <블루 재스민>은 자매로 나오는 케이트 블란쳇과 셀리 호킨스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재스민과 진저는 두 사람이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완벽한 싱크로율과 앙상블을 보여줬습니다.😆 우디 앨런은 다작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작품마다 본인의 열등감을 코미디로 승화시켜 페이소스를 만들어내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감독으로서도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역량이 뛰어난 만큼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7회, 각본상 후보에는 무려 16회나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어요.

영화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각색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벌어졌던 폰지 사기 사건도 참고했는데요.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이었던 버나드 메이도프가 650억 달러의 폰지 사기 사건으로 징역 150년 형을 받으면서 그의 아내가 남편이 파산한 후 여동생의 집에서 2년간 얹혀살았다고 해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여주인공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사고를 치고 여동생의 집에 얹혀살면서 매제와 갈등을 빚게 되자 본인을 구원해 줄 남자를 찾아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거짓말이 발각돼 완전히 패가망신하는 이야기인데요. <블루 재스민>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토리라인에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에서 따온 남편의 금융 사기로 가정이 파탄 난 여성이라는 모티브를 더해 각색한 영화인 셈이죠.

<블루 재스민>은 편집 방식과 소품 등을 통해 재스민의 허영과 과거의 화려했던 삶과 대조되는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요. 특정한 순간의 과거 경험을 현재에 붙여 넣는 방식의 편집은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함과 동시에 재스민의 현재 상황을 더욱 도드라지게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 소품과 의상으로 인물의 허영기 가득한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는데요. 재스민은 망해서 동생의 집으로 가는 와중에도 1등석을 타고, 어디를 가던 샤넬 트위드 자켓을 입고 에르메스 버킨백을 듭니다. 샤넬 트위드 자켓과 에르메스 버킨백은 일종의 계급적인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재스민이 부적처럼 들고 다니던 가방을 내려놓은 모습을 통해 그녀가 심리적으로도 완전히 무너졌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재스민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전장에 나가는 무사의 갑옷과 무기 같은 역할을 하는 샤넬 트위드 자켓과 에르메스 버킨백은 우디 앨런이 세심하게 설정해 둔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한 인터뷰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밝힌 바에 따르면, 우대 앨런은 사람들이 기분에 따라 착장을 고르고 패션 스타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라고 해요. 20년간 똑같은 랄프 로렌 스웻 팬츠와 티셔츠만 입는다고요.😂 (괴짜들은 다 그런 걸까요? 잡스가 블랙 터틀넥에 청바지만 고수한 것처럼요.🤔) 반대로 케이트 블란쳇에게 캐릭터의 스타일링은 인물을 표현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니 아마 해당 설정은 케이트의 아이디어였을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불편해 보이는 자리에서도 꿋꿋이 입고 있던 샤넬 트위드 자켓은 칼 라거펠트에게 빌려온 것이라고 해요.

<블루 재스민>의 명장면으로 많은 분이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마지막 엔딩 신을 꼽지 않을까 싶습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벤치에서 혼잣말을 늘어놓던 재스민을 보며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의 모습은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불행은 강도보다 행복에서 불행까지 떨어지는 낙차가 클수록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는 재스민이 가장 불행한 여자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재스민의 불행은 허영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재스민처럼 허영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재스민은 모 드라마 속 대사처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부자가 아닌 적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입양아입니다. 그리고 동생 진저와 달리 자신의 외적인 아름다움과 만들어진 이미지로 부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인물로 본인이 창조해 낸 이미지로 호화로운 삶을 살았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다시 한번 같은 방법으로 재기를 꿈꾸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거죠. 재스민을 보고 있으면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 같습니다. 누구나 안정적이고 윤택한 삶을 희망하지만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을거예요. 그런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건 내가 입고 있는 옷, 들고 다니는 가방이 아니라 자아라고 생각해요. 허영심이 없는 인간은 없고, 중요한 것은 지나친 허영에 자아를 잠식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캐롤 (Carol), 토드 헤인즈, 2015년 개봉

1950년대 뉴욕.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낍니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관계에 확신이 없던 테레즈는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고, 감정의 혼란 속에서도 두 사람은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확신하게 되는데요. 과연 테레즈와 캐롤 두 사람의 끝은 해피 엔딩이 될 수 있을까요?

<캐롤>은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소금의 값 (Price of Salt)⟫을 원작으로 하는 토드 헤인즈 감독의 퀴어 영화입니다. 장르 특성상 투자에 난항을 겪으며 제작이 완료되기 전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하는데요. 테레즈 역할을 맡은 배우는 루니 마라가 아닌 호주 출신의 배우 미아 와시코스브카였고, 감독도 <브루클린>을 연출한 존 크로울리에서 토드 헤인즈로 바뀌게 되었어요. 원작의 팬이었던 케이트 블란쳇은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작품을 위해 직접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작품은 개봉과 동시에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는데요. 한 해에 별5개 작품은 손에 꼽히는 것으로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는 별 5개와 함께 “멜로드라마의 역사가 장르에 내린 햇살 같은 축복”이라 평했습니다. (‘햇살 같은 축복’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찬사가 있을까요?) <캐롤>은 칸 영화제 최초 공개 때부터 찬사를 몰고 다녔지만, 배우들의 연기상을 제외하면 작품으로서 받은 상은 많지 않은데요.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도 불발되었고, 제88회 아카데미에서는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서는 제외되고 노미네이트 된 부분에서도 모두 무관에 그쳐 당시 비판 여론이 많았습니다. 보수적이란 평을 쇄신하기 위해 힘쓰는 지금과 달리 작품이 개봉했던 시기만 해도 퀴어 장르에 대한 문턱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원작 소설은 작가가 쓴 유일한 러브스토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주로 심리묘사가 탁월한 범죄 소설을 집필했던 작가라고 해요. 작가로서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킨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기도 했고요. 책이 출간되었던 시기가 영화 속 배경과 비슷한 1950년대로 작가는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했고, 오랫동안 본인이 클레어 모건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출간 당시 제목이었던 ⟪소금의 값⟫이 ⟪캐롤⟫로 바뀌면서 작가의 이름도 공개되었어요.

멜로는 20세기 전반까지 대체로 보수적이고 체제 옹호적인 장르로 여겨졌는데 멜로의 지향점이 일부일처제, 남녀 간의 사랑, 결혼에 대한 견해 등 가부장적인 시선을 중심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1950년대는 가장 윤택했던 시대이면서 가장 보수적인 시대이기도 한데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사랑의 아름다움’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한 <캐롤> 섬세한 연출도 인상적입니다. 캐롤과 테레즈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오직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랑의 유일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됐을 때 나는 그 사랑을 알아보고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캐롤>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신으로는 법정에서 캐롤이 ‘테레즈를 사랑하는 캐롤’로서 자기 존재를 규정하던 장면을 골랐는데요. 남편과의 양육권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자신의 감정과 사랑을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무엇보다 테레즈는 사랑 앞에서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거짓말보다 진실의 대가가 더 가혹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캐롤은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감당해야 할 대가가 어떨지 알면서도 자기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캐롤을 너무나 멋지게 표현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이 폭발하는 장면이기도 했고요

⟪캐롤⟫은 동성애를 다룬 소설 중 주인공이 비극적 운명을 맞지 않는 최초의 책이라 여러모로 센세이션 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요. 영화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캐롤과 테레즈의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끝이 납니다. 퀴어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원작과 영화 모두 기존의 틀을 깨는 구성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랑의 보편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는데요. 보통 퀴어 장르는 두 사람의 사랑이 야기보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비판이 도드라지게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았는데 <캐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에 집중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앞서 소개한 한 줄 평 “멜로드라마의 역사가 장르에 내린 햇살 같은 축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 달까요.🙂

Epilogue

모든 작품이 다 인생 연기지만 <블루 재스민>과 <캐롤>은 케이트 블란쳇이 아닌 재스민과 캐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배우 본연의 매력과 뛰어난 연기력이 잘 어우러져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매력을 하나만 이야기하라면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꼽고 싶어요. 전기 영화에서는 마치 그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만들어진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창조된 인물인 것을 알면서도 꼭 어딘가에서 본 적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본인에게 주어진 인물을 완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라는 점이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본업은 물론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구설수 없이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인 만큼 부디 오래오래 연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타르>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가 정점에 오른 순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서서히 추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남성들의 전유물로 알려진 지휘자 세계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리디아 타르를 통해 한 인간의 권력과 욕망을 밀도 있게 그려냈는데요. 영화는 타르가 커리어의 정점에 오른 순간에서 시작해 서서히 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로서의 모습부터 추락해가면서 점점 드러내는 광기 어린 모습까지 타르를 입체적으로 표현해 케이트가 아닌 타르는 상상할 수 없는, 케이트가 곧 리디아 타르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았는데요. 최고의 스텝들과 배우들이 완성한 <타르>는 세계 각국의 시상식에서 23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53개 부문을 수상했고, 이번 95회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편집상, 각본상까지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면 초반 몰입도는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촘촘한 전개와 케이트 블란쳇의 몰입도 높은 연기만으로도 후반부까지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큰 영화로 ‘좋은 영화는 취향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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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 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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