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쉼표 JEONGSEON입니다.
며칠 전이 한글날이었지요. 달력에 빨간 날이 하나 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가는 날이지만, 올해는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날 저녁 문득, 어릴 적 들고 다니던 작은 메모장이 생각났거든요.
저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연필을 꺼내 메모장에 한 줄씩 옮겨 적었지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디에 쓰려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 문장을 조금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옮겨 적다 보면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눈으로 읽을 때는 그냥 좋은 문장이던 것이, 손으로 따라 쓰는 동안에는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찍힌 자리까지 따라가다 보면,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어디에서 숨을 골랐는지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시절 가장 여러 번 옮겨 적은 글은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시인의 수필이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안에는 이런 문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찾아가도 반겨 줄 친구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정확한 원문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속에서는 늘 이 모양이었습니다.
그 메모장 맨 뒷장에는 이런 말을 적어 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 한 줄을 적어 두고, 실제로 제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 몇십 년이 흘렀으니까요. 그동안 메모장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저는 글과는 먼 곳에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글을 쓰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제 손끝에서 나온 문장 어딘가에, 그 옛날 옮겨 적던 문장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것 같아서요. 잊었다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사실은 한 번도 저를 떠난 적이 없었던 겁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오랫동안 남의 문장을 곁에 두고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자기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메모를 합니다. 다른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스레드에서 누군가의 짧은 한 줄을 만나다가, 마음이 멈추는 문장이 있으면 조용히 옮겨 둡니다. 어릴 적 그 아이처럼.
혹시 당신에게도 그런 문장이 있나요.
힘든 날 꺼내 읽던 한 줄, 누군가 무심코 건넨 말인데 오래 남은 한마디, 책 귀퉁이를 접어 두었던 그 페이지.
그 문장들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생각보다 깊이 우리를 지켜 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 주도 참 애쓰셨습니다.
다음 일요일 저녁, 또 한 통의 안부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잠시 멈춰, 마음의 안부를 묻습니다.
— 쉼표 JEONGSEON
이번 주도 여기까지 잘 걸어오셨습니다. 쉼표의 글과 이야기는 다른 공간에서도 계속됩니다.
P.S. 당신의 메모장에 남아 있는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답장으로 보내 주시면 소중히 옮겨 적어 두겠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다음 편지에서 함께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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