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2024년 상반기 회고

🎼  WAVE TO EARTH 「Pink」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요즘 '스틸 라이프'라는 멤버십 뉴스레터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사물을 바라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인데요.

신기하게도 멤버십 구독은 하지 않는 일반 구독자 수가 미미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왤까요?)

새로 구독해주신 분들, 그리고 멤버십 없이 저를 여전히 구독해주시는 분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상반기 회고의 결과물을 나눠요.

일주일에 한 번 글 쓰는 자리에 나가는데요. 지난 한 주 무얼 했냐는 근황 토크 시간에 항상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기억에서 자꾸 멀어지는 일상... 뉴스레터에라도 정리해보았어요.

지난 반 년동안 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 상반기의 여행 : 양양과 속초  

상반기 내내 저는 집에서 정말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크고 작은,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그것이 저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멀리 떠날 의욕도 생기지 않았어요. 누구보다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었는데 말이죠. 이런 격차야말로 사람을 반쯤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4월에는 양양에 일을 하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L의 제안을 덜컥 수락했어요. Y도 단번에 오케이를 외쳤고요. 셋은 양양에 잠시 들렀다가 속초로 이동했습니다. 속초에서는 무려 세 곳의 책방(동아서점, 완벽한 날들, 문우당서림)을 들러 책을 샀고요. 이미 서울은 다 져버린 벚꽃이 뒤늦게 만개한 것도 볼 수 있었어요. 이런 게 과거로의 시간 여행 아닌가? 하면서 우리는 큰 벚나무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남들 다 사는 닭강정도 몇 박스를 샀어요. 그중 한 박스를 뜯고는 트렁크에 당당하게 싣고 온 캠핑 의자를 펼쳐 맥주를 마셨습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속초 바다를 보면서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웃고 떠들다 보니 금세 하늘은 새카만 색이 되었고 수평선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 상반기의 책 :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문학동네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보고 싶어서 선택한 '상반기의 책'.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는 건 책 읽을 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실제로 저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67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완독한 책의 수가 그렇고요. 여기저기 들춰본 책의 수는 그보다 더 많을 테니까요.

앤드루 포터의 신간 <사라진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총 열다섯 편의 단편이 담긴 콜렉션인데요. 신기하게도 책을 넘기다 보니 떠오르는 건, 제가 이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었고. 그 단편들에 대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까지 어렴풋이 그려진다는 점이었어요! 그렇다고 독서모임을 이곳에서만 한 건 아니었는데. 아마 처음 보는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모임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올해 많은 책을 읽으면서 내게 깊이 남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면? 음,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저 게걸스럽게 뭔가를 먹어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만 책을 읽었던 게 아닌지 돌아보았어요. 새로운 반기엔 새로운 방식으로 읽을 수... 아니 살 수 있을까요? 새롭게 살기. 제겐 지금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상반기의 영화 : <인사이드 아웃 2> 

나만 빼고 전부 다 본 것 같아서 서둘러 보고 온 <인사이드 아웃 2>. 저는 전작이 더 좋았는데요. 주변에 들어보면 '1이 더 좋았다'와 '2가 짱이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 같더라고요. 1이 전해준 '감정의 세계'의 신선함이 사라져서인지. 2는 한 소녀의 사춘기 시절을 생생하게 재현한 작품 정도로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었지만요!

전작에서는 기쁨이와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와 소심이까지 총 다섯 개의 감정이 등장하고, 우리가 평소에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느꼈던 기쁨 외의 감정들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는데요. 신작에서는 불안이, 당황이, 따분이와 부럽이 등 새로운 감정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춘기와 함께 생겨나는 것들인데요. 특히 이 중에서도 '불안'이가 엄청난 활약(?)을 하며 사춘기 시절을 추동하는 감정으로 전면에 등장해요. 

'큰 위로를 받았다', '불안해하는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등의 리뷰를 읽었지만 저는 오히려 의문에 빠졌습니다. 왜 서른다섯 먹은 나는 라일리와 다르지 않은 채로 사는가. 13세의 불안 상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데에는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울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계속 갸우뚱한 채로 영화관에서 서둘러 벗어났고요.

🫖 상반기의 장소 : 월하보이 

이십 대, 공연장에서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친구와 연초에 안부 인사를 나누었어요. 우리 올해는 꼭 보자.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다가 드디어 만나게 되었지요. 친구가 오래 살았다는 서촌을 약속 장소로 정했어요. 척척박사처럼 밥집부터 카페까지 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간 곳은 '월하보이'라는 찻집이었는데요. 이름에 들어간 '보이' 덕분에 쉽게 알 수 있는 보이차 전문점입니다. 저와 친구는 이곳에서 50분짜리 티 테이스팅 코스를 신청했어요. 보이생차와 보이숙차 두 종류를 비교하며 테이스팅을 도와주시고 다정한 설명을 해주시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아직 차 맛은 잘 모르지만 아기자기한 다기가 참 예뻤고 낮은 천장과 어두운 조도의 공간에서 피어오르는 차 향이 참 좋았습니다. 실은 보이차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곳을 단골 손님으로 자주 찾다가 일을 하게 되었다는 당일의 티 마스터였는데요! "저 이 일이 너무 좋아요. 언제 또 일하러 가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들어요."라며 눈을 반짝이시더라고요.

이제 친구들과 만나면 각자의 삶에서 어떤 부분이 불만인지 이야기하느라 바쁜 것 같은데. 차 마스터와 다르지 않게, 찻집에 함께 간 제 친구 역시 자신의 삶의 많은 면면에 감사하며 살고 있었어요. 원하는 방식으로 일해서 기쁘고, 더는 사회적 나이에 휘둘리지 않아서 기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서 기쁘고...

그날은 무척 더웠고 (늘 그랬듯) 몸이 무거웠는데요. 불만으로 가득 차있던 제 몸 어딘가를 깨끗하게 닦아낸 날이었어요. 어딘가 가벼워진 것도 같았고요.

저는 다시 멤버십 레터를 열심히 쓰러 자리를 뜹니다.

또 언제 이런 메일을 불쑥 보내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여전히 구독해주시는 구독자 님의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여름, 시원하게 보내세요. 💙

2024.06.30.
서울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