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오직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  Munya 「Boca Chica (Bon Voyage Version)」, 2022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초여름의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린 한 주였어요. 구독자 님의 마을에도 비가 내렸나요? 전국적인 비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출퇴근하는 곳이 없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일기예보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요. 중요한 약속이나 일정이 있는 날만 살펴볼까... 그마저도 잘 하지 않아서 빗속을 달리거나, 빈 상가 건물 속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기도 해요.

오늘도 날이 흐려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방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굳이 카페에 가 저녁을 모두 보냈습니다. 가끔은 의무감으로 대문을 엽니다. 한여름에는 새벽 햇볕에도 패배하고 하루를 전부 망쳐버릴 가능성이 높아서. 어쩔 수 없는 출퇴근 장소를 만들어볼까 고민 중입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려나요?

🚙 6월 둘째 주의 일 : 기타 등등

대학에 붙자마자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기타를 배우는 것이었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수학 학원에 다녔던 친구들과 그대로 실용음악 학원으로 위치를 옮겼어요. 셋이었는데. 모두 각자의 학교가 개강하기 전까지 함께 학원에 다녔어요. 누군가는 보컬 레슨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고, 누군가는 저처럼 기타를 쳐보고 싶다고 했었죠. 새로운 도시로 몸을 옮기기 전, 텅 빈 시간을 죄다 기타학원에서 죽이곤 했는데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곡 하나를 겨우 마치고 셋은 홀홀 서울로, 지방으로 떠났어요. 그리고 코드나 주법 같은 건 단숨에 잊었지요.

하지만 기타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꿈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남을 몇 개의 꿈 중 하나가 아닐까요. 구독자 님께도 확신에 찬 평생의 꿈이 있으신지요? (이 질문을 했을 때, 어떤 친구는 손주 원피스 같은 건 우습게 떠주는 뜨개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서브웨이' 같은 신문물이 등장해도 도망가지 않고 맞서서 샌드위치를 쟁취하고 말겠다는 결기를 드러냈어요.)

아무튼 평생의 꿈 기타인(人)을 품고 살다가, 우연히 집에서 멀지 않은 문화공간에서 클래식 기타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여 신청해보았답니다. 위 영상의 고충진 선생님께 배우는 시간인데요. 과연 결석의 왕이 되지 않고, 무사히 끝을 볼 수 있을지. 여전히 먼 미래를 그리며 다시 꿈으로만 남기게 될지. 종종 초보의 기타 수련 과정을 전할 수 있다면 레터에 남겨보겠습니다. (비장)

📍 6월 둘째 주의 장소 : 옛 동네

열세 살에 떠난 동네를 찾게 되었어요. 지금 서른셋이니, 정확히 20년 만이었네요. 남쪽 끝도 아니고, 바다 건너도 아닌. 경기도의 작은 마을일 뿐인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수원과 서울로, 용인과 동탄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그 작은 마을에 다시 방문할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난 주말에 결혼한 동창 덕분에 오랜만에 옛 동네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고 그곳엔 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많아서, 방문 전부터 긴장도 되고 기대도 컸어요. KTX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는 내내 노트를 펼쳐 제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이미지들을 적어보았지요. 야트막한 언덕 가에 있던 우리 집. 붉은 벽돌로 쌓은 여러 개의 빌라 동이 모여있는 단지. 각 동은 4층에서 5층 사이의 낮은 높이. 동 앞에는 귀여운 화단이 있었는데, 1층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그 화단을 가꿨던 것 같고. 일렬로 늘어진 붉은 벽돌 빌라 가운데 난 길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조금 자라면 세발자전거를, 롤러스케이트를, 그다음엔 킥보드와 블레이드를 부지런히 타던 나와 친구들. 유일한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보이는 신축 아파트 단지와 동사무소, 초등학교, 우체국과 농협. 번질나게 드나들던 피아노 학원과 서예 학원... 가능한 모든 유년의 풍경을 종이에 옮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한참을 걸었어요. 하지만 시작부터 '막힌다'는 느낌에 가까웠어요. 살던  집부터 찾을 수 없었거든요. 역을 기준으로 어느 쪽에 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요. 대신 페인트칠을 곱게 하고 잔디까지 심어 둔 초등학교 주변을 걸었고, 그 근처의 문구점에서 괜히 편지지도 샀어요. 사진을 찍어 가족에게도 보냈습니다. 엄마가 지금의 제 나이 정도에 두 아이를 낳고 기르던 동네이니까. 제가 지금 사는 부산의 이곳 저곳을 각별히 느끼는 마음과 비슷하겠죠?

요즘 저의 집 대문에는 땅과 집을 사고 싶다는 읍소와 함께 휴대폰 번호를 적은 쪽지가 매일 붙어요. 노후 지역인 이 동네가 재개발 소식으로 들썩이는 중이거든요. 내년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될 테니, 저와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겠지만. 부산에서 매일 본 2년 동안의 풍경이 머지않아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면 쓸쓸해져요. 엄마는 제가 보낸 옛 동네의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30여 년을 살며 제가 '머물렀다'고 말할 수 있는 몇 곳의 풍경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그런 생각을 하던 주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모습을 그리워할 게 뻔하지만. 실은 모든 게 빨리 바뀌기를 바랄 때도 많지요. 잠옷 바람에 슬리퍼만 끌고도 커피 한 잔을 잠시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거리에, 드디어 카페가 하나 생겼어요. 얼마나 감격스럽던지요!)

📚 6월 둘째 주의 책 : 임솔아 외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22

때를 맞춰 책을 읽는다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때와 상관없는 책도 있지만, '제때'를 맞춰야 하는 책도 있으니까요. 그런 시기를 놓치고 나면 그 책과는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듯 하고요. 매년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때'를 가진 책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책방을 운영할 때면, 이 책이 나오자마자 부지런히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독서 모임을 열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과,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서로 꼽아보기도 하고, 새로 발견한 작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즐거웠지요. 하지만 작년의 책은 홀로 마지막 장까지 가지 못했고, 올해도 그렇게 될까 싶어서 급히 독서 모임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오늘, 마지막 작품인 서이제 작가의 단편까지 다 읽을 수 있었어요.

사심 가득 담아 임솔아 작가님과 김지연 작가님의 작품이 가장 좋았는데, 혹시 읽으셨다면 구독자 님은 최애작으로 무엇을 고르실지도 궁금하네요! 단편소설의 일부를 옮기는 건 그 자체로 스포일러 같아서 꺼려지는데요. 대신 임솔아 작가의 '작가 노트' 마지막 파트를 남겨보려고 해요. 저도 언제나 저의 양친에게 듣던 말, 한때는 눈을 흘기며 흘려듣던 말이라서 밑줄 치며 읽었습니다. 저 역시 이제는 서운해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잘 먹기를, 잘 자기를, 행복하기를.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정도만 덧붙여본다면, 깨어있기를 바라며 지냅니다.

구독자 님도 덜 무서운 한 주 보내셨기를 빌어요.

또 한 주가 흘렀습니다. 6월의 절반.

레터에 담지 못한 결혼식도, 그 외의 귀한 만남도, 새로운 배움도, 각오도 있었던 한 주라 그런지 이상하게 어깨가 무겁지만요.

마음을 누르는 몇 가지 짐을 떠올리다 무서워지면, 인용한 작가노트를 다시 한 번 읽고 따뜻한 차도 마셔봅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2022.06.15.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