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단 한 사람을 위해 마련해둔 글쓰기 방

🎼  알레프 「Daisy (with 969)」, 2022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의 글을 보내고 난 뒤, 몸이 괜찮은지 묻는 따뜻한 답장과 연락을 받았어요. 누군가 분명 읽고 있다는 실감이 무척 좋았네요. 감사합니다.

집에 머무르면서 〈애나 만들기〉 같은 시리즈를 한두 개 틀어놓고 누워 있다 보면 한 주는 시시하게 금방 흘러가더라고요. 어느덧 4월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뭔가를 바쁘게 쓰고 찍고 만든 후, 멀리멀리 내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대신 꾸준히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서, 시작하는 게 좀 무서웠지요. 그래서 뉴스레터는 2월부터 4월까지, 딱 3개월만 우선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요. 할 수 있을까? 의심했던 석 달도 거짓말처럼 다 갔습니다.

드디어 4월의 마지막 편지이자, 뉴스레터 첫 시즌의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지난주의 무거운 마음은 내려두고, 요즘 날씨처럼 환한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 4월 넷째 주의 일 : 글쓰기 모임 @ 책방한탸

얼마 전 편지에서, 부산의 한 책방에서 참여한 독서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곳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바로 ‘일기’를 쓰는 모임이에요. 모임 이름은 ‘일기와 읽기’인데요. ‘일기’라고 알려진 책을 읽고, 내 일기도 한 편을 써서 참여하는(독서 모임이자 동시에 글쓰기 모임인) 자리랍니다. 그래서 작가들의 일기를 읽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쓴 일기를 대놓고 훔쳐보기도 하는 시간이더라고요. 저는 어떤 모임인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살펴보는 대신, 그냥 ‘선착순 8명’이라는 글자만 보고는 당장 대표님께 참여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어요. ([우와, 빠른 신청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제가 1등이었겠죠?)

첫 시간, 모두의 일기가 A4용지에 인쇄되어 묶여 있었는데요. 천천히 읽어볼까, 했더니 돌아가며 자신의 글을 낭독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뜨악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첫 시간에는 제 글이 뒤에 묶여 있어서 낭독하지 않고 하루가 끝났어요. 마음 편히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감상을 주고받았죠. 그렇지만 이번 주에 있었던 두 번째 시간에는 결국 제 차례가 왔고, 일기를 낭독해야만 했어요. 인쇄된 글을 그대로 읽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더라고요. 부끄러움을 이기면서 글을 쓰고, 보여주고, 남들 앞에서 읽고, 몇 가지 지적을 전해 듣고 나니 개운해졌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겠다고 저녁마다 책방에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제가 책방을 운영할 때는, 종종 책방이 함께하자고 권하는 일의 허들이 어느 정도의 높인지 미처 알지 못했는데요. (이렇게 재미있는데, 다들 왜 안 오지? 라는 생각만 했었답니다….) 운영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어 전에 몰랐던 여러 가지를 알아가고 있어요. 오랜만에 간 책방에 새로 꽂힌 책을 발견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보기도 하고, 책을 고르고 나면 책방 사장님과 주변 손님들이 덧붙인 피드백(“와, 그 책 되게 좋아요!”, “주인공이 완전 귀엽다니까요!”)을 생각하며 독서하기도 해요. 책방 다니는 재미가 이런 것이었지, 작년엔 이런 시간이 하나도 없었지, 생각하면서요.

다음 시간에는 궈징의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라는 책을 읽고 일기 쓰기로 했는데요. 2020년 1월, 봉쇄된 우한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를 묶은 책이라고 해요. 이 역시 책방이 아니었으면 알지도, 읽지도 못했을 책. 궁금하시다면 구독자 님도 함께 읽어요!

📍 4월 넷째 주의 장소 : 부산시민공원

주말 아침, 대청소를 마치고 장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큰 마트들이 모두 쉬는 주간이었어요. 큰 곳에서 사야만 하는 몇 가지 품목이 있어서, 장 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캔슬되었고요. 중요한 일정이 하나 사라지고 나니 허무해져서. 집과 멀지 않은 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답니다. 차 타고 지나다니면서 ‘부산시민공원’이라는 표지판을 자주 보았는데, 도보로 갈만한 곳은 아니라서, 갈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더라고요. 펑크난 날에 딱 맞는 장소라는 생각에 집에 있는 과일과 물을 챙기고 김밥과 돗자리를 샀어요.

공원엔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어요. 유모차를 타는 아이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아이, 엄마와 아빠, 우드 테이블과 바스켓, 하얀 레이스 테이블 러너까지 야무지게 준비한 커플, 맥주와 피자, 블루투스 스피커가 펼쳐진 잔디 위.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주말의 한낮을 제대로 즐기려고 마음먹은 사람들뿐이더라고요. 맑은 날씨까지 모두를 완벽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와 동거인은 아무래도 준비가 부족했어요. 완벽한 피크닉을 위해 다음부턴 공원에 가는 날을 미리 정하려고 해요. 베개로 쓸만한 도톰한 담요도 하나 챙기고요(누워서 하늘 보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무엇보다도 먹을 것을 넉넉히 가져가야겠어요(공원도 식후경).

쉬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책도 챙기지 않았는데, 결국 뭔가 읽고 싶어지던 오후. 쌓아둔 소설 한두 권도 잊지 않고 가방에 넣을 거예요.

📚 4월 넷째 주의 책 : 김혜나 「코너스툴」 (『2의 세계』 &(앤드), 2022 中)

김혜나 작가님과 처음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2019년 5월이었어요. 당시 저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고요. 지원 사업을 통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이었답니다. 그중 하나는 경기도 동두천시(책방이 있던 곳)를 배경으로 소규모 인원이 모여 단편 소설을 창작해보는 것이었어요. 소설 창작을 해본 경험이 전무하거나, 습작 정도만 해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걱정이 많았죠.

선생님이 꼭 필요했어요. 모 출판사 마케터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혜나 작가님을 소개 받았고, 그렇게 작가님이 책방에 놀러 오셨어요. 저희는 작가님의 소설을 함께 읽기도 하고, 창작하며 답답했던 점에 관해 질문하기도 했어요. 작가님은 작법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셨고, 좋은 책들도 소개해주셨지요.

참가자들은 모두 소설 한 편을 써냈어요. 묶어서 작은 문집을 만들며 프로그램은 끝이 났는데요. 그 후에도 종종 작가님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작업 이야기나, 신간 소식 같은 것을 전하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작가님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코너스툴’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써도 괜찮을지 궁금하다고요. 신이 나더라고요! 내가 꾸리던 공간이 곧 소설 속의 공간이 된다는 사실이요. OO역이나, OO백화점이나, OO동이 아니라, 책방 이름이 그대로 들어가는 소설이 쓰인다는 사실이요. 수락하고 나니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고요. 이번 주에 드디어 책이 출간되었답니다.

단편소설 「코너스툴」이 실린 『2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1이라고 했을 때, 그 너머의 세계, 즉 제2의 세계라고 할만한 곳을 다룬 이야기들을 모아서 엮었다고 해요. 총 일곱 편의 소설을 모은 앤솔러지인데요. 아직 다른 여섯 편은 읽지 못했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코너스툴」부터 펼쳐 읽었어요.

‘코너스툴’이라는 책방의 주인과 한 소설가의 이야기가 담겨있었어요. 소설 곳곳에 19년도 당시 작가님이 책방에서 보았던(저와 손님들 또한 분명하게 보았던) 여러 장면을 넣어주셔서. 저의 작은 책방은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공간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책방을 운영했던 이야기를 담은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의 일부도 인용해주셔서 민망하면서도 감사했고요.

소설 속 코너스툴과 제가 잠시 살았던 코너스툴이 일치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둘 사이의 교집합이 보이거든요. 작가님과 모여 소설을 썼던 분들이라면 확실히 그 너른 교집합을 발견하고, 2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노팅 힐〉을 보고 나면 포토벨로로 떠나고 싶어지듯, 저도 언제든 「코너스툴」을 읽고 나면 길을 잃은 것 같은 마음으로 함께 쓰던 소설과, 서로의 글을 정성스럽게 읽어주던 시간을 그리게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나도 모르게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게 될 것 같아요.

구독자 님은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뉴스레터와 함께한 지난 석 달은 또 어떠셨는지요?

생각보다 힘들고, 또 즐거웠던 분기와 작별하며.

5월부터는 뉴스레터로 할 수 있는 다른 재미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 중인데요.

혹시 구독자 님께서 받아보고 싶은 이야기나,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댓글이나 답장 등으로 나눠주셔도 좋습니다. (웃음)

아주 늦지는 않게, 돌아올게요!

2022.04.27.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