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힘들게 쌓고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들

🎼 Nouvelle vague 「I Melt with You (feat. Silja)」, 2021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뉴스레터 Cornertable(코너테이블)을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에 발송하기로 약속한 성은입니다.

어떤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는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구독하셨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게 생각보다 더 막막하게만 느껴져서 글을 시작하는 데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구독자 님은 저를 개인적으로 아는 분일 수도 있지만, 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이 글을 받아보실 수도 있겠죠?

뒤늦게 약속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부랴부랴 PC 앞에 앉아 ‘안녕하세요’ 다섯 글자만 우선 쓰고 한참을 노려보았습니다. 단서 하나 없이 수신인의 얼굴을 그려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금방 포기했습니다.

나이와 성별, 취미나 관심사 같은 것도 모르는 먼 나라의 사람과 펜팔하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애초에 레터를 시작하기로 한 것도 대단한 마음에서 비롯되지는 않았거든요.

저는 4년 정도 경기도 모처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는데요. 작년 3월 폐업 후 임시로 부산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연고가 없는 동네에서 새로 시작하는 삶이었습니다. 멋진 도시에서 한 달씩 사는 게 유행이라지만, 한 동네를 잘 알기 위해 제겐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부산에서 거주한다는 실감이 크지 않고, ‘생활인’보다는 ‘체류자’라는 단어에 가깝게 지내고 있거든요. 슬프게도 내년 이맘때면 부산에서 만든 짐을 업고 서울을 헤매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돌아갈 날이 다가옵니다.

남은 약 1년간의 부산 생활을 잘 기록하고,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어요. 굳이 일기장에 가두지 않기로 한 이유는 수신과 발신이 그리운 일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동거인(풀타임 직장인)만이 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낮엔 영상을 많이 보고요. 듣지 않던 음악도 부러 찾아 듣습니다. 두껍고 얇은 온갖 책도 쌓아두고요. 실제로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각종 캐릭터와 인물에게 많은 말을 마음속으로 건넵니다. 대신 실제 인간들을 마주하고 말하는 방법은 조금씩 잊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 앞에서 자주 뚝딱거려요. 위험 신호입니다.

부디 잘 수신해주시기를 빌면서.

저는 한 주 이렇게 살았습니다.

🏋️‍♀️ 2월 첫 주의 일: 퍼스널 트레이닝

1월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1월은 잘 없었던 것 같고, 운동을 끝까지 한 1월도 잘 없었던 것 같아요. 새해부터 난생처음 PT를 받고 있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스쾃 한 세트를 마치자마자 구토할 것 같은 느낌에 헬스장에서 뛰쳐나왔어요. 아무리 부산이라지만 한파가 기승인 이 계절에, 반팔과 반바지 차림의 비곗덩어리는 바닥에 앉아 한참 명상을 했습니다. 운동을 왜 해야 하는가 생각하다가, 평생 ‘운동’과 ‘왜’를 붙여대다가 지금 요 모양 요 꼴로 산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 달이 넘게 근육통과 싸우고 있지만(보통 2주 정도면 근육통은 없어진다면서요?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서 난감합니다), 체중은 여러 사유(명절과 주말의 치팅, PMS 극복을 위한 당 충전, 마감을 위한 탄수화물 섭취...)로 늘기만 합니다. 그래도 한 달은 무사히 갔고, 2월도 한 주가 흘렀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도 선생님을 만나러 갑니다. 구토 같은 건 없는 하루가 되길 빌면서.

☕ 2월 첫 주의 장소 : 어라우즈 로스터리

부산에 살면 오션뷰를 즐길 줄로만 알았으나, (좋게 말해) 시티뷰, 아니, (솔직하게 말해) 도로뷰를 보며 사는데요. 가끔은 물이 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집을 떠나 이동합니다. 물론 종종 보는 검고 파란 바다도 아름답지만, 저와 동거인은 최근 잔잔한 낙동강의 멋에 빠져있습니다. 오션뷰를 보려면 부산의 어딜 가든 사람이 많다는 게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하여 연휴가 끝난 주말, 강가의 카페에서 ‘강-멍-’하며 책 읽었습니다. 좋은 장소들을 많이 탐색해보려는 새해입니다. @어라우즈로스터리

📚 2월 첫 주의 책 :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현대문학, 2021

부산에 내려오기 전 궁금했던 장소 가운데 하나가 @F1963이었어요. yes24 중고서점과 테라로사, 현대모터스튜디오, 국제갤러리, 복순도가 등이 함께 모여있어서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전시도 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에요. F1963 도서관이라는 회원제 예술 전문 도서관도 있고요. 공간 곁의 고즈넉한 대나무숲을 걸어도 참 좋은데요.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국제갤러리에서 안규철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진실은 사물의 표면보다 보이지 않는 이면에 숨어있다"는 핵심 사유를 담았다고 하는데요. 작품을 즐겁게 감상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가, 같은 제목의 책을 찾아 읽어봤어요.

『사물의 뒷모습』은 안규철 작가가 2014년부터 문예지 『현대문학』을 통해 연재했던 글과 그림을 모은 것인데요. 책 속의 몇몇 드로잉 작품은 국제갤러리에서 본 적이 있던 작품이라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물과 그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어서, 자연스럽게 주변의 조용한 정물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돼요.
무엇보다도 이 책은 설 연휴를 건너며 읽었어요. 경주와 경기, 서울을 거치며 세 곳의 다른 이부자리에 누워서 나눠 읽었거든요. 각각의 잠자리에는 당연히 제 것이 아닌 살림살이가 있었는데요. 이 책 덕분에 22년도의 첫 명절은 작가의 사물과, 제 캐리어 속의 짐, 그리고 다른 이의 살림에 관해 생각한 3박 4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높이가 맞지 않는 베개와, 낯선 조도의 조명, 익숙하지 않은 볼륨의 소음과 함께한 날들로요.

운동도, 음악 감상도, 책 읽기와 글쓰기도... 작년엔 전부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쌓는 건 어려운데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서 허무와 싸우는 시간이 길었는데요. 올해는 천천히 쌓고 잘 정리해서 매주 구독자 님과 나눠보고 싶어요.

구독자 님은 어떤 한 주를 보내셨나요?

1월에 어김없이 운동은 시작하셨는지,
플레이리스트를 채운 음악은 무엇인지,
가방 속에 넣고 다닌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첫 레터를 어떻게 읽으셨을지 가장 궁금해요.
주절주절 적다 보니 너무 길었나, 싶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싶기도 하고요.

한 주 건강하시기를!
저도 한 주를 살고, 다음 주의 안부 편지 전해보겠습니다.

2022.02.09.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