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도리어 진 것 같은 마음

🎼 Video Age 「Is it Her?」, 2018

재생하여 함께 읽으시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한 주 잘 보내셨나요?

2월 9일, 첫 레터를 발송한다는 공지를 했었지요. 2월 10일에 접속해보니 ‘미발송 건 재발송하기’라는 버튼이 있더라고요. 예약 발행을 해두었는데, 발송이 되지 않은 건이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서 어서 재발송을 하였는데요. 이 때문에 10일에 받아보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눈물). 약속한 날짜보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직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 레터 발행자의 실수를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저는 지난 주말 간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몰리는 외주 마감과 더불어 주말에 갑자기 생긴 악재를 처리하며 남은 2월을 보낼 것 같습니다. 진짜 새해를 시작하는 건 2월의 액땜을 정리한 후 또 3월로 미뤄야만 할 것 같고요. 실은 늘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가 한 해가 갔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새해나 연말이나, 상반기나 하반기나,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고. 그냥 한 해는 언제나 이런 날들로만 가득하지 않았나, 앞으로도 대체로 이렇지 않겠나, 생각해요.

구독자 님은 무사히 한 해를 시작했다는 기분을 느끼시나요?
저처럼 아직 2022년에 적응 못 하신 건 아닐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 주 이렇게 살았습니다.

🏋️‍♀️ 2월 둘째 주의 일: 초급 한국어

뉴욕에서 응용통계학을 공부하는 리타(Rita)라는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차 때문에 그는 밤에, 저는 아침에 줌(zoom)에 접속하는데요. 아침 해를 가득 받으며 정자세로 앉은 저와 달리, 그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조금은 물렁하고 느슨해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리타는 ‘ㅓ’나 ‘ㅕ’를 ‘ㅗ’나 ‘ㅛ’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ㅈ’은 ‘ㅊ’과 자주 혼동하고요. 가령 “저는 코미디 영화를 좋아해요.”라는 예문은 “처는 코미디 용화를 좋아해요.”에 가깝게 말한달까요. 우리는 ‘어’, ‘여’를 여러 번 반복했고, 제니나 정국과 같은 ‘ㅈ’이 들어간 아이돌 멤버의 이름을 자주 불렀습니다. 오늘은 잘 나오지 않는 선크림을 힘주어 짰더니 잔뜩 흘러나와서, 평소보다 과도한 백탁현상을 자랑하며 수업에 임했는데요. 마지막으로 왜 한국 여자들은 다들 얼굴이 하얀 거냐고 질문했고, 그 부분은 짧은 영어로 답하기가 좀체 쉽지 않았습니다. 당황하면 머릿속이 하얘져 종종 마가 뜨고 마는 영어 학습자와 한국어 학습자의 시간입니다.

(그나저나 문지혁 작가의 『초급 한국어』 읽어보셨는지.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인데요. 『중급 한국어』도 나온다고 하기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 2월 둘째 주의 장소 : 김해 천문대

복잡한 일이 생겨서 한참 전에 예약한 김해 천문대에 갈까 말까, 동거인과 한참을 고민하다가 ‘에라이!’ 하며 차에 올랐습니다. 김해는 심정적이나 물리적으로 저와 가까워서가 아니라 본관(本貫)이라서, 제 이름이나 뿌리 같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지명인데요.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고향의 높은 곳에 올라 별을 보는 주말은 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저는 별이나 우주 따위에 별 관심도 없는데 말이죠.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 조금은 심드렁한 마음으로 천문대에 갔어요.

별 보러 온 사람은 꽤 많았어요. 해당 계절에 볼 수 있는 별자리를 천장의 스크린에 쏘아 설명해주는 ‘가상 별자리’ 프로그램과 실제 천체망원경으로 달과 별을 직접 관측하는 ‘야간 천체관측’ 프로그램을 신청해보았는데요. 몇 개의 반짝이는 점 위에 황소나 쌍둥이 같은 걸 그려놓는 건 아무래도 억지스럽다고 말하면서도. 늙어서 죽어가고 있다는 붉은 별을 그 곁의 다른 별들과 구분할 줄 알게 되는 것이나, 몇 개의 선만 잇고 나면 겨울철의 별자리 지도가 한 눈에 보이는 건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알데바란, 폴룩스, 프로키온, 카펠라…. 전부 금방 까먹고 말 글자들로 되어있었지만요.

마지막 관측 지점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미세먼지로 하늘이 어두워서 별이 잘 안 보이는 날이라고. 천왕성의 위성도 하나가 무척 흐릿하게 보이지 않느냐고. 좋은 계절과 날씨를 골라 오면 목성이나 토성의 고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위성이나 고리 따위가 저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제발트 읽고 싶다... 그런 생각이나 했는 걸요), 집에 돌아오는 깊은 밤중에 다시 천문대를 찾을 날을 꼽아보았습니다. 별자리 전설이나 운세 같은 것을 하나씩 읽어보며 기다릴 요량입니다. @김해천문대

📚 2월 둘째 주의 책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민음사, 2012

어떤 책은 좀처럼 혼자 읽기 어렵습니다. 유독 잘 넘어가는 책장 덕분에 금방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고 아쉬워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한 페이지조차 넘기기 어려울 때도 있거든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제겐 그랬고, 책방을 운영하는 기간 동안 함께 읽겠다는 사람들과 모여 겨우 8권까지 읽었는데요. 그 후 책은 10권까지 출간되었고, 책방은 문을 닫아서. 9권과 10권은 제 책장에 조용히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새 책인 채로 잠만 자는 책이 한두 권은 아니지만) 8권까지 읽어내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건 좀 아까워서 올해 다시 완주해보기로 했어요. 조금 더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1권은 얼마 전 무사히 다 읽었고, 어제부터 2권 읽기를 시작했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죽을 때까지 다 못 읽을 게 분명한데. 똑같은 책을 두 번이나 읽는 짓은 왜 하는 걸까요. 그렇다고 재미있어서 못 참을 만한 책도... 아닌데 말이죠.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괜찮은 대답은 떠오르지 않지만, 두 번째 읽을 땐 반드시, 처음 읽을 때 보이지 않았던 멋있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단지 이런 이유 때문이냐고 물어도, 대답은 쉽지 않지만요.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스완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비슷한 고뇌로 괴로워했으며, 그래서 그만큼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사람도 없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의 고뇌란 자기가 가 있지 않은, 자기가 함께 가 있을 수 없는 쾌락의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이 가 있다고 느끼는 고뇌다. 스완에게 고뇌를 알게 한 것은 바로 사랑으로, 사랑이 고뇌를 숙명적으로 만들고, 독점하고, 특별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처럼, 사랑이 아직 우리 삶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고뇌가 먼저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고뇌는 사랑을 기다리는 동안 막연하고 자유롭게, 정해진 목적 없이, 오늘은 이 감정에서 다음 날은 저 감정으로, 어떤 때는 자식으로서의 애정에, 또 어떤 때는 친구에 대한 우정으로 표류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p.62

이 시골 방들은-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로 공기나 바다 전체가 빛을 발하거나 향기를 내뿜는 몇몇 고장에서처럼- 미덕, 지혜, 습관 같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은밀하고도 눈에 보이지 않으며 넘쳐흐르는, 온갖 삶이 발산하는 무수한 냄새들로 우리를 매혹했다. 그것은 물론 여전히 자연 그대로의 냄새이며 또 가까운 들판의 냄새처럼 그날의 빛깔을 가진 냄새지만, 집 안에 틀어박히기를 좋아하는 인간적이고 밀폐된 냄새, 과수원에서 방 벽장으로 옮겨진 그해 모든 과일로 솜씨 있게 만든 투명한 젤리 냄새, 계절에 따라 변하면서도 가구와 집 안에서 나는 냄새로 톡 쏘는 하얀 젤리 맛을 따끈한 빵의 달콤함으로 중화하는 냄새, 마을의 큰 시계처럼 한가로우면서도 규칙적인 냄새, 빈둥거리면서도 질서 있는 냄새, 태평하면서도 용의주도한 냄새, 세탁물 냄새, 아침 냄새, 신앙심 냄새, 불안만을 가중하는 평화와 그곳에 살지 않고 스쳐가는 사람들에게는 시의 커다란 보고로 사용되는 산문적인 것에 행복해하는 냄새였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p.94

표류하는 내 안의 고뇌를 돌아보는 시간, 서랍마다, 방마다 다르게 스며든 집안 곳곳의 냄새를 맡는 시간... 그런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길고 긴 여정의 즐거움을 부지런히 느끼고 있어요. 보물찾기하는 마음으로요.

잠시 언급했던 ‘복잡한 일’ 때문에 저는 이번 주를 조금 내려놓았습니다.
알람이 울려도 자주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고, 루미큐브 플레잉에 과도하게 빠져있었는데요. ‘우리가족사랑해’ 같은 닉네임을 가진 사람을 야멸차게 제치고 이길 때면, 도리어 진 것 같은 마음으로 괴롭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