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더 물러졌고, 더 지루해졌다

🎼  NewJeans 「Attention」, 2022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한 주 쉬고 다시 돌아온 편지. 하얀 화면에 주절주절 적는 시간이 즐거운 걸 보면, 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섯 달이 남은 올해. 8월이 지나고 날이 선선해지면 더욱 실감이 나겠지요? 그러니 힘차게 지내도 괜찮을 것 같은 달이에요. 가을 타기 전 마지막으로 가볍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달이에요.

🏖 8월 첫째 주의 일 : 여름 휴가

작년,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결혼한 탓에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다녀왔답니다. 제주는 양가 부모님이 모두 본인들의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30여 년 전의 신혼여행 대표 장소였는데요. 게다가 여행 기간의 반절 정도는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었어요. 올여름 휴가는 반드시 국제선을 타자는 마음으로 표를 끊었습니다. 다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는 불안한 상황이었지만요.

따뜻하고 안전한 나라, 비행시간이 너무 길지 않은 나라로 정해서 쉬다 왔어요. 쉬었다고 하기엔 스노클링과 수영을, 그리고 엄청난 과식을 번갈아 하며 탐욕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소화제까지 챙겨 먹었다니까요(끔찍). 가까운 휴양지라 그런지 한국인이 정말 많더라고요. (저를 포함한) 부지런한 사람들이 조식 시간을 절대 놓치지 않고 접시에 온갖 음식을 퍼 나르는 모습을 보다보니... 어느 날엔가는 조금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일까, 여행의 후반부에는 베란다 쪽의 커튼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며 멍때리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창문 프레임에 걸린 광경은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는 남태평양의 깨끗한 바다 한 조각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제가 바라보는 것이 베란다가 맞는지 궁금해졌어요. 김병운 작가의 소설 토막 때문이었는데요. 집에 돌아와 다시 읽어보니 베란다가 아니었습니다. 발코니였어요. 건물 외벽에 돌출된 작고 하얀 공간. 부실해 보이는 빨래 건조대 위엔 색색의 수영복이 널려 있고, 양 끝엔 붉은 꽃을 심어 꾸며둔 곳.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이번 여행을 떠올리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그 발코니를 한참 바라보던 때가 가장 먼저 기억 속에서 달려 나올 것 같아요.

구독자 님은 이번 여름에 테라스와 베란다 또는 발코니에서 시간을 보내셨나요? 겨울엔 결코 만들 수 없는 시간이 구독자 님께 있기를 바라요.

🏡 8월 첫째 주의 장소 : home~sweet~home

여행 후에 가장 귀해지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 집'인 것 같습니다. 집의 소중함을 깨닫는 건 체크아웃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눈을 떠야 하는 바로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는데요. 이번 여행은 코로나 때문에 미리 음성 확인서를 받은 후 이동해야 했고, 빡빡한 입국 심사와, 무한 대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김해공항에서 내려 집에 돌아오니 그제서야 안도감이 몰려왔어요.

친구에게 이 얘길 했더니 "역시 집이 최고다!" 외치려고 떠나는 게 여행이라며 허허 웃더라고요. 그치, 맞지, 하면서 사진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집을 담은 사진을 찾아보았는데요. 대부분의 사진은 어딘가로 놀러 갔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찍었던 것이었어요. 집을 찍은 아주 적은 수의 사진은 온통 난감했던 순간만 담고 있더라고요. 이럴 때만 카메라를 켜고 싶은 건 무슨 마음인 건지.

📚 8월 첫째 주의 책 :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

구독자 님은 본 영화 또 보기, 본 드라마 또 보기, 읽은 책 또 읽기, 들었던 음악 또 듣기... 를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음악만 질릴 때까지 반복할 뿐, 나머지는 다시 보거나 읽지 않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좋았던 기억을 망가뜨리는 게 싫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기나 상황에 따라 어떤 작품은 과하게 좋거나, 과하게 실망하곤 하니까요. 타이밍이 잘 맞았던 작품은 그때의 마음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데요.

이번 휴가에는 새로운 책을 읽는 대신, 정말 좋아했던 책 한 권을 챙겼어요. 자신있게 챙길 수 있었던 건 다시 읽어도 좋을 거라는 확신 덕분이었어요. 더불어 남은 한 해는 새로운 책을 과하게 탐하는 대신에 마음에 꼭 들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들춰보자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이 다짐은 지금 다니는 글방에서 만난 모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난 덕분입니다. 아픈 시절에 너무 좋아했던 영화를 최근에 다시 꺼내 봤다고. 기도문과 같은 음악이 흐르던 영화였다고. 그런데 다시 보고 나니 이제 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쓰셨더라고요. 새로운 장면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맺은 글을 다 읽고 나니, 저도 궁금해졌죠. 저 또한 삶의 새로운 장면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지 말예요.

한참 좋아했던 책을 다시 찾아서 휴가지에 챙겨 갔습니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이에요. 이번엔 거꾸로, 맨 마지막 단편부터 보았는데요. ⌜폭풍⌟이라는 단편은 강렬했던 다른 단편들에 무게에 눌려 까맣게 잊고 있었더라고요. 

가장자리를 말하는 어떤 시(詩)도. 누나랑 다르지 않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누나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을 가졌던 과거의 나도... 하나씩, 천천히 생각났어요. 폭풍같은 소설 한 편을 읽고 나서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 평화로운 발코니를 무지 오래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오늘 밤, 편지를 보내고 나면 내일 이른 아침에 서울행 열차를 탈 예정이에요. 양지윤 사서 선생님(이자 작가님이자 번역가님)이 꾸리는 지혜의 집 도서관에서 작은 북토크(라고 쓰지만, 수다 자리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가 있거든요.

오랜만의 서울행이라 조금 설레기도 하고요. 여기저기 들러보고 싶은 곳이 많은데, 마침 코로나가 또 시끄럽네요. 다음 주 편지에는 북토크 후기도, 오랜만에 엄마 밥 먹은 기억도 적어보고 싶어요.

일반적인 여름휴가 기간이 지금이지요?
구독자 님이 시원한 곳에서 즐겁게 지내는 중이길 빕니다. ☺️

2022.08.03.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