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불쑥 용기를 내어 다가갈 수도

🎼  유라, 만동 「요술 수프」, 2022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저는 또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서 오늘 달력을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레터 쓰는 날이었네, 큰일이네... 하면서요.

평소보다 짧고 심심한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넷째 주 이야기, 가볍게 읽어주세요!

🏖 11월 넷째 주의 일 : 임장(2) 

이번 주말에도 여지없이 서울에 다녀왔어요. 지난주에 만난 여러 부동산에서 좋은 곳이 나왔다며 재차 연락을 주셨고, 저와 단짝은 새로운 지역의 집들을 살펴보면서 '서울 공부'를 다시 했거든요. 그렇게 토요일 새벽부터 KTX를 타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급하게 잡다 보니 좌석이 부족해서 우리는 남는 자리에 각각 따로 앉아 갔어요.

또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서울의 한복판을 거닐며 모르는 사람의 집에 불쑥 쳐들어가 곳곳을 훔쳐보는 일을 했습니다. (아! 끔찍해!) 급하게 뿌린 방향제 냄새가 났고, 어색하게 저희를 맞이하는 세입자들과 집주인들은 모두 지친 얼굴이었어요.

거의 끝자락까지 갔는데. 주인이 돌연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무산된 계약. 허무한 마음으로 다시 저녁 기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좌석은 붙어있었지만, 지친 둘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며 각자의 시간을 보냈어요.

후련하게 돌아오고 싶었는데요. 어쩌면 두 번 만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너무 큰 기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집에 도착하자마자 기뻐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어요. 치킨을 한 마리 시켰고요.

🏡 11월 넷째 주의 장소 : 책방 한탸(2) 

지난 목요일에는, (아마도 마지막으로) 책방 한탸를 하루 돌보고 왔어요. 이번 주말 폐업을 앞두고 사장님의 부재를 대신한 시간이었어요. 문을 열자마자 로쟈(고양이 식구)가 들어와서 제 곁을 오가는데. 그저 느낌으로 그가 밥을 먹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장님께 여쭤본 후 캔을 하나 따 주었는데요. 그때부터 곧장 다른 쪽으로 몸을 돌리더라고요. 잘못 해석했구나, 싶었습니다.

동물의 언어에 저는 정말 취약한데요. 배를 드러내고 죽어서 수족관 위에 둥둥 뜬 금붕어들과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박스에서 식어버린 병아리들이 제가 키워본 반려동물의 전부라서. 동물과 의사소통을 해보려고 애써본 경험이 없습니다.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동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아요. 동물은 제게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고요.

하지만 로쟈는 한탸에 올 때마다 먼저 다가와 주었어요. 처음 보는 날부터 꼬리로 은근히 톡톡 치거나, 무릎에 발톱을 박고 잠을 청하거나, 한참을 쳐다보았어요.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로쟈 덕분에 저는 길고양이들을 향한 높은 울타리를 멀리 치울 수 있었습니다. 덜 무서워졌고, 더 편안해졌기 때문이겠지요.

한탸에서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몇 권의 책, 몇 명의 작가, 몇 사람과 몇 자리들이 제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어쩐지 조금은 위축된 채로 지내던 시간이 덕분에 환해졌고요. 저 또한 누군가와 어딘가에 불쑥 용기를 내어 다가갈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사이 한탸는 문을 닫고, 저도 이 도시를 떠나게 되었지만요. 그것이 정말로 아쉽지만요.

로쟈는 슬쩍 책방을 떠났다가, 제가 퇴근하기 전 다시 돌아와 음식을 열심히 먹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어제는 부산에 비가 왔어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기예보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라, 비가 올 걸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오후 내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져서 문밖으로 나섰어요. 그제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는 걸 알게 됐고요.

다시 들어가기엔 이미 그 공간이 지루해졌고, 왜인지 점원을 보는 게 민망하기도 해서.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종일 졸음이 쏟아지고 몸이 무겁습니다. 홀딱 비를 맞았기 때문일까요.

다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소식도 들리더라고요.

구독자 님이 이 편지를 읽는 시간이 건강하고 따뜻하기를 바라봅니다.

2022.11.23.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