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서 도착한 곳엔 천국이 없다.

"승부는 끝까지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랍니다."

2023.01.01 | 조회 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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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일기

초보 작사가 마작을 배우며 느낀 점을 보내드립니다.

2022년 12월 13일

  • 종국 리치 1판, 일발 1판, 역패 1판, 혼일색 3판, 도라 2판, 적도라 1판, 뒷도라 1판 배만

 

동장전 동국. 내게 주어진 패는 일만 둘, 백 둘, 칠삭과 일삭이 둘씩. 치또이쯔를 노리기 괜찮은 패다. 첫 국이니 크게 나지 않고 순서를 돌리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패가 세 번 버려지기도 전에 대가에서 백을 내놓는다.

백으로 퐁을 하면 역패는 완성. 중을 하나 가졌으니, 잘 기다리면 더 큰 패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판수는 치또이쯔가 역패보다 하나 높다. 손에는 중이 하나 들려있다. 이미 머리가 4개 완성 되었으니, 기다리면 치또이쯔는 반드시 온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퐁을 부르고, 손에 중이 들어오면 역패 2판을 노려볼 수도 있다. 어쩌면 대삼원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시멜로를 눈 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퐁을 불렀다. 바로 전에 상가의 패 하나를 퐁 하지 못한 불안감이 더해진 것도 있었다. 아직 패를 읽는 것도, 패를 만들어가는 배짱도 부족한 나는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순간의 패 하나에 흔들리고 덜컹거렸다.

퐁을 부르자마자 들어온 패는 손에 있던 오만. 머리 하나가 더 완성된 것이다. 바로 그 다음에 머리로 쓸 패가 또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퐁은 불렀고, 쥐고 있던 머리는 이제 버려야 할 패가 됐다.

노련하게 칼을 갈았더라면 퐁을 불렀던 각오대로 중과 발을 기다려 대삼원을 노리거나, 이미 역패는 완성 되었으니 다른 몸통을 완성해 1판이라도 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초보의 마음은 이미 떠나간 2판짜리 역이 아까워서 1판의 역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4국 중 동국, 그 중에서도 첫줄(패버림 6번)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졌다"는 기분이 몸을 덮었다. 홧김에 화면을 꺼버렸다. 사실, 치또이쯔는 마작을 치다보면 자연스레 한두번씩은 보게 되는 흔한 역 중 하나이다. 모으는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모으는 노력에 비하여 점수가 적으므로 더 큰 역을 노리게 되어 자연스레 버리게 되는 것이지 출현확률 자체는 낮지 않다. 그런데도 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 자체로 스스로가 바보같이 여겨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과 달리, 약 1달 전의 나는 기초 역도 다 외우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치또이쯔를 놓친 것이 더 쓰라리게 느껴졌다.

그러나 화면을 끄는 동시에 다른 후회가 닥쳐들었다. 한 번의 실수로 승부에서 도망치다니. 실수는 만회할 수 있지만, 도망은 돌이킬 수 없다. 다시 국에 돌어가니 이미 차례가 3번 돌아, 어느덧 꽤 많은 패가 강에 버려져 있었다.

그 국은 결국 상가가 하가를 론 하면서 끝났다. 누가 무슨 패를 버렸는지를 다 보기도 전에 생긴 일이었다. 정신이 없는 채로 남국이 시작되었다. 남국은 패가 한 줄을 다 채우기도 전에 대가가 리치를 걸더니, 일발으로 상가를 론하면서 끝났다.

내 점수는 1점도 늘거나 줄지 않은 2만 5천점,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상가가 났다가, 대가가 났다가 하며 순위가 바뀌었다. 마작의 세계란 그런 것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순위가 바뀔 수 있다. 그러니, 이기고 싶다면 그게 목숨을 거는 일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국이 넘어가면서 대기화면엔 게임 캐릭터가 윙크하는 그림과 함께 문구가 떠올랐다. "승부는 끝까지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랍니다." 무슨 주문처럼, 내 마음 안에 화르륵 불이 타올랐다.

다음 국, 1판 짜리 역인 역패를 완성하며 가볍게 났다. 내가 친인 국이었기 때문에 연장에 들어갔다. 연장 국에서는 하가가 상가에게 뺏겼던 점수를 빼앗아왔고 순서는 계속 돌았다.

마침내 마지막 국. 내 점수와 순위는 여전히 26500점, 3위에서 부동. 이제 마음은 다시 자리를 잡았지만 이렇다할 성과 없이 국이 도니 마음은 느슨해지고 어깨는 피로했다. 어떤 마음으로 게임을 계속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패가 좋지 않았다. 만, 통, 삭이 어지럽게 섞여있고 노려볼만한 것은 2개짜리 발 하나뿐이었다. 발을 모아서 역패를 만들고 국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지나갔다. 운이 따랐는지 이상하게도 만패만이 들어왔다. 나중에는 일기통관을 노려봐도 괜찮겠다, 그러려면 어느 패를 버려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검은 5만을 버리고 빨간 5만을 가져 텐이 완성 된 바로 다음, 하가가 발을 버렸다. 론.

마작은 일종의 예술이다. 패가 예쁠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 패가 예쁘다는 것은, 패에 통일성이 있거나 특이한 패만을 모았다는 뜻이다. 내 손에는 4만을 제외하고 일만부터 구만까지 모인 만패와, 선명한 녹빛을 내는 발패가 한 줄로 모여있었다.

점수를 계산하는 화면에 7개의 역이 고장난 슬롯머신처럼 촤르륵, 멈추지 않고 연달아 떠오르더니 아래쪽에 총 16800점을 얻었다는 커다란 도장이 찍혔다. 이윽고 종국 정산 화면에 내 이름이 1위로 떠올랐다.


"승부는 끝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이에요."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승부에 임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눈치채기 어렵다. 펀치 한 번에 이가 흔들리고 골이 띵 울리면 더 맞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저 사람을 이겨야지, 이겨서 얻어맞은만큼 되갚아 줘야지. 그런 마음은 강하기보단 집요한 사람이 갖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단 맞으면 아프고, 물러서고 싶고, 억울하더라도 싸움부터 끝내고 싶어하는 타입이다.

그러나 돌아서서 안전한 곳으로 물러서고 나면 그제야 맞은 곳이 쑤시고 욱신거린다. 다친 몸보다 마음이 더 고동친다. 한 대 더 맞더라도 한 마디 해주기라도 할 걸, 후회가 든다.

승부라는 것은 그렇게, 끝난 뒤가 더 잔혹한 습성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긴 흔적을 남기는 것이 승부다.

그렇다면, 이왕 마음에 흔적을 남길 거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싸워보고 지는 것이랑, 져보지도 못하고 도망치는 것은 너무나 다른 일이니까.

배만으로 국을 종료한 내가 처음 노렸던 것은 한 판이냐, 두 판이냐의 차이인 역패와 치또이쯔였다. 그 때의 나는 더 먼 곳을 볼 여유가 없었다. 옆구리를 스쳤을 뿐인 펀치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1판의 역이 그토록 간절하게 느껴지는 애송이기도 했다.

인생이란 이토록 알기 어렵고, 늘 두려움의 연속이다. 또한 돌이키면 후회할 일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도망만 쳤다면, 그래서 두려운 일도 후회할 일도 마주칠 필요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주먹을 쥐는 법도 몰랐겠지. 그러나 맞아보고 아파보고 또 주먹이 부서져 보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계란도 수백번 내리치면 바위를 깬다는 사실을 안다.

마작의 세계는 그렇게 거칠지만 그러나 상냥한 방식으로 나를 어른으로 이끌어간다. 겪어보지 않은 것이 두렵다면, 이제부터 겪어보면 된다. 언젠가는 나를 때리던 펀치가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한 방이 될 것이다.


2023년을 맞아 1주일에 하나씩, 일요일마다 마작 일기를 발행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해봅니다.

마침 일요일이 1월 1일이라 더욱 뜻깊은 첫 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아직 틀을 찾아나가는 중입니다.

미숙하지만, 더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기록해보려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작일기가 재미있으셨나요? 마작의 세계는 언제든 열려있습니다. 함께 성장하는 작사가 되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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