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오랩데이

대기업을 버리고 도전을 선택한 네 사람의 커리어 회고전

5월 다오랩데이 : 나도 작가 - 커리어 회고전

2025.06.11 | 조회 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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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오랩 뉴스레터

일과 조직의 미래를 탐험하는 DAOLAB 이야기

 

안녕하세요, 다오랩 멤버 여러분! 다오랩 뉴스레터를 쓰는 에디터 해이든입니다. 

5월 다오랩데이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드려요. 

이번 주제는 '나도 작가 - 나의 커리어 회고전'이었어요. 다오랩 멤버 네 분을 모셔서 각자의 커리어 여정을 들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을 작가라고 생각하고, 그들만의 최고의 순간, 고민들을 공유해 주셨어요.

 

"일이 너무 편안해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의 열심이었을 뿐, 내가 주도적으로 해본 것은 없었어요."

5월 다오랩데이에서 네 분의 멤버가 들려준 커리어 회고전은 이런 솔직한 고백들로 가득했습니다. 

 

계속 질문하며 도전하고 있는 네 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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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수진님 : 시대의 파도🌊를 넘나드는 커뮤니티형 기획자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Future Karrier 이고, Web1부터 Web3까지의 파도를 넘은 커뮤니티형 기획자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삼성에서 제조 기반 전략부터 Web3 커뮤니티 거버넌스 실험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거든요.

지금은 작고 유연한 팀과 개인은 어떤 항로를 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Q. 커리어의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글로벌 무대를 배경으로 멋지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죠.

제가 생일날 회사 프로젝트 룸에 갇혀서 일하면서 쓴 일기가 있어요.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 수 있다"라고 썼더라고요. 그때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촛불을 켤 수 있었어요.

 

출처 : https://www.instagram.com/stay_keen_/
출처 : https://www.instagram.com/stay_keen_/

그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원하는 삶과 실제로 살고 있는 삶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컸거든요. 회사에서 성과도 내고 인정받고 있었지만, 뭔가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Q. 그런 답답함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환점이 찾아왔어요. 바로 춤이었죠.

춤바람에 빠지면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이런 회고를 했어요.

 

일과 삶의 균형이 솔직히 버겁다. 근데 일을 그만두면 안 된다.
아직 쉬지마. 일은 내게 소중해 쉬지마.
쉬지마
쉬지마
쉬지마

이걸 랩처럼 써놨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춤바람에 퇴사까지 하게 되었어요.

 

출처 : https://brunch.co.kr/@sujin-keen/57
출처 : https://brunch.co.kr/@sujin-keen/57

 

Q. 퇴사 후에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나도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는 세상'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요. 제가 올렸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출처 : https://brunch.co.kr/@sujin-keen/
출처 : https://brunch.co.kr/@sujin-keen/

Q.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3개월 차에 한 인터뷰에서 "프리랜서와 크리에이터로 살아가면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 "하면서 배우는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하던 일은 장표 만들기였어요. PPT를 만들고 장표질을 하는 거였죠. 그런데 대기업에서 전략 컨설팅 같은 일을 하다가 스타트업에서는 장표를 만들면 아무도 파일을 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노션이라는 신 문물을 받아들이고 저의 정리력을 노션과 일체화시키는 경험을 했어요. "제 묘비에 노션 아이디를 새겨주세요"라는 말을 쓸 정도로 노션에 빠져있었답니다.

출처 : https://brunch.co.kr/@sujin-keen/
출처 : https://brunch.co.kr/@sujin-keen/

 

Q. 그다음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에게 꽂힌 키워드가 '오너십 이코노미(Ownership Economy)'였어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와 오너십 이코노미, 인터넷 자체에 결제 모듈이 없으니까 우리는 플랫폼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그걸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다가 Web3 세계에 빠져서 넘어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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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Web3에 대한 경험은 어떠셨나요?

솔직히 Web3가 아직까지는 정말 세상을 전혀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거기서 얘기하는 많은 것들이 POW, POS 이런 어려운 인프라적 용어나 금융 용어에 아직 그 단계에만 머물러 있고, 아직 진짜 유저들이 사용하는 앱, 애플리케이션으로 넘어오지 않았어요.

그런 어려운 용어를 어쨌든 꾸역꾸역 공부하면서 이 시대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3년을 기다렸는데 아직은 오고 있지는 않더라고요.😂

 

Q. 그럼에도 Web3에서 얻은 가치가 있다면?

기술로 연결되어 있지만, 비즈니스가 이어지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인 관계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곳이 Web3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웹3 커뮤니티에서 운영진을 하면서 커뮤니티 빌더로도 활동하게 되었어요. 그때 꽂힌 키워드가 바로 'DAO'였고, 이것이 다오랩 1기로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죠.

출처 : https://www.instagram.com/stay_keen_/
출처 : https://www.instagram.com/stay_keen_/

 

GLITCH 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1천 명 규모의 글로벌 해커톤을 열어보기도 했어요. 웹3 행사에 다니다 보면 비탈릭도 그냥 지나가다가 보고 "셀카 같이 찍자" 이러면 같이 찍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ENFP처럼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죠.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이더리움 파운데이션에서 그랜트를 받아서 관심 있었던 커뮤니티나 동양의 DAO라는 키워드를 'DAOeast'라고 만들어서 연구 페이퍼를 정리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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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정을 거쳐오면서 시대 정신의 파도에 맞춰서 얕고 넓게 사실 많이 돌아다녔어요. 지금 단계에서 깊어질 것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정리력과 관계력에 대해서는 내가 이걸 무형의 가치로 좀 깊게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현재는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눈을 떠보니 사실 Web3보다도 이미 AI가 덮쳐버리고 있고 되게 수많은 노이즈가 있는 것 같아요. 일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위협도 있고 AI로 금방 돈 번다라는 어떤 기회의 가면을 쓴 여러 가지 설들이 있는데 거기서 제가 뭘 해야 될까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Q. AI 시대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저는 기록과 정리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힌트를 찾았어요. 그런 거 관련된 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작년 12월에 한 달 정도 걸려서 MVP 'Project Deleuze' 를 만들었고, 저와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회고를 하는 트렌드를 만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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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고민이 생겼어요. "내가 유니콘이 될 상인가..?" 이렇게 툴을 계속 업데이트해도 세상은 AI로 더 빨리 만들더라고요. 그때 사실 좀 번아웃이 왔었던 것 같아요.

 

Q. 번아웃과 함께 다른 고민도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를 보고 '내가 그래도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려야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현실적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예요. 근데 문제는 할 사람은 없어요. 아직. 그래서 그 부분도 좀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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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잡고 계신가요?

툴 중심보다는 관계라는 부분, Web3에서 쌓아온 무형의 가치를 활용하려고 해요. 바이브 코딩 길드에서 코딩을 배우면서 리플릿이라는 툴로 앱 MVP를 만들어보고 있는데, 처음에는 '유니콘 기업이 되자!'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기업이 되는 것보다는 작고 유연한 조직으로서 매출을 내는 소셜 클럽 같은 형태로 가져가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가설을 가지고 5월부터는 좀 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지금의 마음가짐을 들려주세요.

여전히 시대의 파도🌊에 싸대기를 맞고 있는 단계지만, 이렇게 회고를 해보니까 앞으로 나아갈 키워드들을 정리하게 됐어요. 앞으로 가져가야 될 숙제도 여러분들한테 공유하고 선언하면서 계속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2기 릭님 : 소셜에 관심 있는 프로젝트 디자이너

Q. 주변에서 릭님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요.

저는 "뭐 하는 사람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이런저런 커리어를 바꿔가면서 일단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에요. 디자인, 미디어, 게임, 커뮤니티를 넘나드는 창작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어떤 커리어 과정을 거쳐오셨나요?

시각 디자인을 전공 했지만 정작 그쪽으로 일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방송 제작 쪽에도 좀 있었어요. 실제로 미디어 뒤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게 됐고, 그 다음부터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게 됐죠. 😂

가장 오래 한 건 온라인 게임 기획이에요. 일본 회사에서도 일했고,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때가 NC소프트에서 MMORPG 게임 기획자였어요.

 

출처 : 녹색경제신문
출처 : 녹색경제신문

 

Q. 게임 기획자 시절이 특별했던 이유가 있나요?

그때 조금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거의 몇십만 명이 동시에 몇백 명이 모여서 하는 게임이었거든요. 그냥 단순한 재미보다 이 유저 간의 인터랙션을 어떻게 설계해 나가냐가 제일 관건이에요. 그리고 저는 룰을 만들어서 이렇게 바꾸면 이렇게 움직이네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Q. 그런데 회사를 왜 그만두셨나요?

회사를 대차게 때려치고 프리랜서 기획자를 나와서 했습니다. 다양한 일을 회사 없이 했었고, 그 다음엔 (지금도 땅 치고 후회하는) 회사를 차렸어요. 

간혹 가다가 아직도 이전 회사에 있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아무래도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으니까 많이 물어봐요. "너 어떻게 먹고 사는 거야!" 그러면 제가 얘기하죠. 

 

회사에 있을 때 이것저것 해 보고 나와라. 절대 그냥 나오지 마.


 

Q. 그럼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현재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저는 프로젝트 디자이너라고 불러요. 무언가 재미있는 거를 만들고 브랜딩을 주로 많이 하고요. 그 다음에 커뮤니티 디자인 관련된 일도 해요. 지역 커뮤니티 디자인 관련해서 서울시랑 경기도 쪽 등 여러 가지 공동체 관련된 컨설팅 같은 것도 했어요.

그리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림 프로젝트로 많이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늘은 이거에 대한 얘기를 주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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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그림 프로젝트를 하셨나요?

현재 저를 있게 한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페이스 드로잉'을 했어요. 2013년에 회사를 관둘 무렵에 진짜 그냥 우연히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그런데 이게 갑자기 호응을 얻으면서 작가가 됐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디자인 의뢰도 받았어요. 결국 회사까지 만들어서 제게 여러 가지 기회랑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어요.

 

Q. 프로젝트 페이스 드로잉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원래 회사를 다닐 때도 그림은 그리고 있었어요. 우연히 인사동에서 친구를 만나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얼굴을 그려서 줬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얼굴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컨셉으로 잡아서, 1년 동안 100명 그리기를 목표로 했어요. 어떤 사람의 SNS를 관찰하거나, 인터뷰하여 그 사람의 인상을 잡아 그리는 과정이었어요. 제가 누구랑 얘기를 하면 느껴지는 색깔이 있거든요. 이 사람 색깔이 진하네, 연하네.. 이 사람은 독특하고 볼드하다.. 그런 거를 표현하는 거죠. 그래서 한 500개 정도를 아카이브 작품으로 볼 수 있어요.

 

출처 : https://reeccu.com/
출처 : https://reeccu.com/

 

Q. 이 프로젝트가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 프로젝트를 덕분에 지금 제 인간관계의 90% 이상을 만들어졌어요. 사람과, 그리고 세상과 저를 연결시켜준 프로젝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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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죠. 한번은 고양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제가 어떻게 해 줬는지 아세요? 고양이의 성격을 설문을 받았습니다. 고양이의 성격을 잡아보고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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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가족 사진인데 좀 안타까운 게 저 중에 한 분이 세상에 안 계셨어요. 근데 조합해서 만든 거예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최근에 프로젝트 페이스 드로잉을 오랫동안 쉬었다는데, 새롭게 두 번째 팝아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나 + 너 + 우리'라는 슬로건으로 '프로젝트 프리키'를 시작하려고 해요.

저는 일반적인 예술가보다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 더 관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설정한 인간 군상 "프리키"를 인터뷰하고, 그림으로 그려서, 아카이브하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이들을 연결하는 게 목표라서 '프리키 클럽'이라는 커뮤니티도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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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나는 정말 내 앞의 사람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인데 과연 나는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라고 고찰을 해요.

그래서 사람을 연결하는데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림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새로운 소셜의 방식을 늘 고민하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3기 퓨처코드님 : 30년 회사생활에서 새로운 실험으로

Q.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30년간의 CJ 커리어에서 전환기를 맞이한 실험가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제는 DAO와 AI를 탐구하며 인생의 후반 라운드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학습과 실험, 그 이후의 방향은?"이라는 질문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Q. 어떤 계기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나요?

제가 초등학교 때 다섯 번, 중학교 때 한 번, 총 6번을 전학을 했어요. 마지막 전학은 1981년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

그런데 그 당시에는 겨우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얘기를 귀담아들어줄 분들이 없었어요.

 

Q.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그래서 당시 세검정에 있는 자그마한 절을 찾았어요. 마침 대학생 불교 철학 연구반이 있었거든요. 거기 들어갔어요. (저는 깨어있는 중학생이라 대화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분들을 그냥 귀여워하셨을 것 같네요. 😅)

그런데 계속 얘기를 나눠도 그 갈증이 해소가 안 되더라고요. 대학생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더 깊은 답을 찾고 싶었는데, 그 연구반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Q.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셨나요?

그 당시에 가장 현인이라고 생각했던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 해인사로 내려갔습니다.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절제된 수련 과정의 기억은 꽤 힘들습니다. 하지만 성철 스님을 만나면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그 당시의 큰 기대감으로 버텼어요. 마지막 과정은 ‘삼천배’ 인데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이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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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5백배가 넘어가며 맑고 가벼운 정신이 지친 육신과 분리되는 경험을 했죠. 그리고는 찬물로 목욕재계를 하고 수련하시는 스님들과 함께 좁고 어두운 새벽 산길을 따라 백련암으로 향했습니다.

 

Q. 성철 스님을 만난 게 엄청 특별한 경험이었겠어요.

백련암에 들어가는 문이 굉장히 낡아 있었어요. 성철 스님은 단청 같은 장식을 "그런 거 필요 없다"며 굉장히 소박하게 사셨더라고요. 허물어져 가는 문을 넘어서는데 바로 왼쪽 반지하에 있는 주방에서 젊은 스님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조그마한 호박 한 덩어리를 반을 내서 호박밥을 만들고, 나머지 반을 다시 4분의 1로 쪼개서 호박국을 끓이는 거예요그 장면을 딱 보는 순간 뒤통수를 탁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막 흘렀습니다. 이유도 몰랐고,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려본 적도 없었습니다.

 

Q. 그 순간에 어떤 깨달음이 있었나요?

엄청나게 눈물을 흘리고 나서 갑자기 가슴과 머리가 되게 환해지더라고요. 깨달음의 근원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정화되고 해소가 된 것 같았어요성철 스님이 암자에서 내려오셔서 삼배를 하고 앉아서 법문을 듣는데… 그날 말씀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냥 이것 한 가지를 갖고 내려왔습니다.

"아.. 삶이란 그냥 살아가는 거구나"

그리고 나서 수계를 받았어요. 제 법명은 선행(禪行)입니다. 선의 해석 중에 하나가 끝없이 도를 찾아간다는 뜻이에요구도(求道)의 길. 결국 저는 끝없이 도를 찾아 길을 나서고, 끊임없이 실행해야 되는 사람이에요.

 

Q. 그럼 수행자의 길을 계속 가셨나요?

성철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참으로 수도를 하려면 최저의 생활로써 최고의 노력을 해야 된다.
옷도 한 벌, 아침마다 호박과 콩나물로 공양을 하면서 3년에 한 번씩은 토굴에 들어가서 면벽 수도를 해야 된다.

성철 스님

 

https://www.youtube.com/watch?v=QAF5znrAmLg
https://www.youtube.com/watch?v=QAF5znrAmLg

 

이 길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길로 수도의 길은 접고 바로 속세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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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번뇌가 많죠? 수도의 그 노력을 속세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속세에서 하는 노력을 지금 생각해 보니까 성장에 대한 욕망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욕망을 그 당시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Q. 그 길로 바로 속세로 오셨군요😂. 속세에서는 어떤 다양한 경험들을 하셨나요?

평범치 않은 도전들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대학시절엔 응원단에 들어가 91년도 연대 응원단장을 했습니다. 낙하산을 타고, 천리행군을 하는 제일 빡센 부대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했었고, 중국 유학 시절엔 그 대학의 마라톤 부에 들어가서 중국 3대 국제 마라톤을 다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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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방송 MD로서 주방 명품을 맡게 되었어요. 거창하게 명품이지만, 결국 프라이팬 냄비를 파는 거죠. 그러면 프라이팬 냄비를 쓰는 사람은 누구냐? 요리하는 사람이죠. 그러면 나도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요리를 해야겠다, 그 길로 요리 학원을 끊었습니다.

3년여 매일 평일 저녁과 주말을 바쳐가며 2013년과 2014년 서울 국제요리대회, 한국국제요리대회에서 종합우수상과 금메달들을 수상했어요. (한식,중식,양식 자격증도 덤으로 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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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엄청나시네요.. 그럼 회사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마 여러분들 한테 가장 친숙한 메뉴라고 하면 CJ 제일제당 브랜드 매니저 시절 만들었던 것 중에 하나인 동치미 물냉면 일 겁니다. 19년째 스테디셀러에요여러분은 19년전 제 작품을 드시고 계시는 겁니다.

출처 : CJ더마켓
출처 : CJ더마켓

그런데 저게 또 사연이 있는 게 한국 전통식 압착면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기계는 이탈리아에서 수입을 했거든요. 그래서 여름에는 냉면을 뽑고 다른 계절에는 스파게티를 주로 만들었습니다 ㅋㅋ.

그런데 면발이 조리하기 굉장히 어려운 면이다 보니 시식이 매우 중요했어요. (당시 마트에서는 시식을 통한 프로모션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내렸던 특단의 조치가 저와 수석 연구원이 함께 조리 영상을 찍었어요. 유튜브 같은 방송 개념이 없던 시절에 꽤 획기적인 발상이었어요.

그 영상을 사내 인터넷망을 통해서 전국에 있는 지점에 뿌렸어요. 그리고 순회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공중파밖에 없던 시절이라 영상에 나온 사람은 다 탤런트 같은 수준으로 대접을 받던 시대입니다. 갈 때마다 여사님들의 환영을 받으며, 그 해 역대 최고 냉면 매출을 이뤄냈습니다.

 

Q. 30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이렇게 속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30여년 동안 탑다운 방식의 큰 조직에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돌아보는 시간을 잠깐 가졌던 게 2023년이었어요.

지난 30년 동안 굉장히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가만히 돌아보니까 그것은 저한테 주어진 공간 안에서의 열심이었고 노력이었고 성장이었던 것 같아요. 뭔가 틀을 깨고 주도적으로 해봤던 것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다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Q. 오..! 어떤 전환점이었나요?

먼저 접했던 건 비폭력 대화입니다. 8주 과정을 다니면서 마지막 8주 차에 또 엄청 울었습니다. 성철 스님 식사를 보고 울었을 때의 한 90% 정도 수준으로 울었던 것 같아요.

이유는 30년 동안 같이 했던 제 동료들이나 부하 직원들한테 내가 참으로 폭력적인 언어를 많이 했겠구나.. 그런 후회와 반성,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것들이 많이 되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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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난 게 DAO입니다. DAO는 사실 지금도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뭐든지 그냥 다오래요. 왠지 "답을 다오" 하면 답을 줄 것 같고, 왠지 있어 보여서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중1 때 찾고 싶었던 '삶이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DAO란 무엇인가'로 이어져서 여러분과 계속 함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작년에 비폭력 대화와 DAO라는 그릇을 통해서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DAO 2기에 낙방을 하고 재수 끝에 3기에 최고령으로 붙어 수료했습니다. 순탄한 길은 아니었죠~ (ㅋㅋ). 수료 후에는 4기 셰르파, 그리고 지금은 트레일 메이커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이슨이 뭔가 문을 만들면 제가 자꾸 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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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DAO에서의 경험은 어떠셨나요?

결국은 제가 몸과 마음이 같이 반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그 이유 중에 하나는 DAO에서의 경험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들의 경험이 달랐고, 그들이 소통하는 방식,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다름과 새로움이 저에게 굉장히 새로운 동력을 많이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AI를 본격적으로 접한 지 3년이 넘었습니다AI로 만든 책도 출간하고 최근에는 AI영화도 출품해가면서 Vibe Coding, Foundation Agent 연구 등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실행해 나가고 있어요변화가 가져온 자유로움의 절반은 여기 DAO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 문제는 뭐냐하면 제가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것을 깨달을 때 저는 아마 하산을 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화두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화두는 '성장'입니다.요즘 커뮤니티나 어디를 갈 때마다 저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계속 발견하게 되는데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성장의 의미는 무엇이고, 성장이라는 갈증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기 롤라님 : 커뮤니티와 커리어를 연결하는 솔로프러너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미스크라는 임팩트 투자사이자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에서 4년 2개월 정도 일했어요. 최근에 퇴사를 한 후 해외에 여기저기 조금 떠돌다가 얼마 전에 귀국했어요. 그리고 DAO랩의 신청 마지막 주자로 급하게 전화해서 합류한 솔로프러너 롤라입니다.

회사를 다닐 때 회사 일도 너무 재미있게 했지만, 그 외에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저는 또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잘하는 사람인지 계속 고민하면서 지내왔어요. 지금도 퇴사 후에도 계속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강의·멘토링부터 글로벌 무대로의 새로운 도전까지 '커뮤니티와 커리어, 나의 삶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Q. 커리어에서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커리어 회고전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인생 커리어에서 최고의 순간 세 가지를 골라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최고의 순간 세 가지를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 지금까지 그래도 후회 없이 잘 살았다'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는데, 바로 주변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로부터 받았던 피드백을 읽었을 때였어요.


저는 가장 저의 인생에서 좋았던 경험들이 이 문장들 속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을 할 때 정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관계였고 사람이었어요. 그걸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함께하고 싶은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동료들한테 받았던 피드백이나 다른 회사에서 저희 회사에 인턴 파견 요청을 하면서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로 적어주셔서,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꼈어요.

 

Q. 회사 일 외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회사를 다니면서 제가 회사 일을 정말 좋아했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느끼실 감정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리 회사를 좋아하고 일을 좋아해도 회사 가기 싫은 날이 있잖아요. 그리고 내가 정말 오늘만큼은 정말 쉬고 싶다, 혹은 이제는 오늘은 진짜 일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회사에 가야 하고 내가 컨디션이 진짜 좋을 때만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뭔가 계속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챌린저스'라는 어플을 사용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내가 내 삶을 좀 주체적으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어플을 깔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사진 찍어서 인증하는 그런 활동을 했었는데, 제가 사진 찍고 다시 자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는 계속 인증을 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나를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넣어야겠다'라는 생각에 리추얼 클럽이라는 걸 만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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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리추얼 클럽은 어떻게 발전했나요?

사실 처음부터 리추얼 클럽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 아니었고, 모닝 리추얼 챌린지라는 챌린지 하나로 시작을 했습니다. 내가 다시 자지 않으려면 그냥 누군가를 만나야겠다, 해서 온라인으로 만나서 각자 할 일 하고 싶은 것들 내가 주체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 느낌을 받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모임에 점점 제 주변에서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모이기 시작하고 그게 확장이 됐어요. 처음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모임을 시작했다가 지금은 밤에 책도 읽고 하루에 한 30분씩 영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매일매일 기록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확장이 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Q. 다른 커뮤니티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다양한 커뮤니티들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제주 여성들이 커리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 제우파(Jeju Woman Power)라는 걸 만들었어요. 그때 한창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였어서 이렇게 이름 지었어요 ㅋㅋ.

제주라는 지역에 파견으로 저도 가게 됐는데, 서울에는 정말 많은 모임들이 있고 어디에 가도 선배들이 있고 배울 수 있는 곳들이 정말 정말 많은데.. 그에 비해 지방에는 성장하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선배들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고 이런 컨퍼런스나 행사 참여하고 싶어도 오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럼 우리가 그런 공간을 만들자" 해서 그 커리어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제주 여성들이 모아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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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두 가지 경험을 하면서 저의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생각보다 다양하게 있겠다, 나는 그래도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그런데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되셨나요?

제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를 제가 요즘에 매주 적고 있는 퇴사 노트 첫 번째 에피소드에 적었어요.

저는 회사가 저의 비전이랑도 너무 잘 맞고 동료들도 너무 좋고 사실 안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정말 최고의 첫 직장을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일이 싫은 것도 아니고 사람이 힘든 시기도 지났는데, 이제는 퇴사를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게 너무 편안함이 느껴졌을 때였어요.

너무 일도 편안하고 그냥 회사에서 어려운 일이 없고, 내가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그러면 이제 어디에서 또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될까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 있으셨나요?

사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스타트업들을 멘토링하고 강의하는 일들이었어요. 외부적으로는 되게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고 굉장히 편안하고 안정적이어 보이지만, 저는 제가 창업도 안 해보고 제가 직접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내 제품 만들어서 개발하고 팔아보지도 않았는데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이게 한계가 오지 않을까, 공부해서 이야기하는 거는 언젠가는 한계가 있을 거고 내 경험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직급이나 연봉이 높아지고 이곳에 더 익숙해지면 더 떠나기가 두려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퇴사를 결심했어요.

 

Q. 퇴사 과정은 어떠셨나요?

주변에 정말 많이 말렸고, 퇴사를 처음 회사에 얘기하고 나서 퇴사 실제로 하기까지가 거의 1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동료들이랑도 계속 이야기하고 주변에서도 뭔가 이직할 곳이 결정되고 나서 나가는 게 좋지 않겠냐 그런 이야기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는 저의 성향을 알아서 제가 뭔가를 하려면 어떤 환경에 저를 끄집어 던져놔야 제가 뭔가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있으면 저는 회사에만 몰입하고 회사 일에 완전히 집중해서 다른 거를 잘 도전하지 못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사랑하는 회사임에도 떠났고 후회할까 걱정도 했지만, 아직 후회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brunch.co.kr/@lolajjoo/5
출처 : https://brunch.co.kr/@lolajjoo/5

 

Q. 퇴사 후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지금 퇴사 후에 제가 새롭게 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건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건데요. 정말 매일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깨지고 내가 생각했던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 일을 할 때 접했던 회사 밖의 분들과 연결이 돼서, 회사를 나오고 나서도 불러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제 본업인 비즈니스 관련된 강의나 멘토링들도 지속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알바처럼 뛰고 있어요.

 

Q. 글쓰기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맞아요.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이 글쓰기인데요. '퇴사 노트'라는 뉴스레터를 시작해서 해외 여행한 경험을 뉴스레터로 쓰고 있어요. 브런치도 시작을 했고 기록이 주는 힘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가장 많이 도움을 준 게 기록이었던 것 같거든요. 계속해서 이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록을 꾸준히 하다 보면 뭔가 내가 나중에 길을 찾아나가는 데 힌트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있으신가요?

제가 퇴사를 결심하면서 사실 이직만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퇴사를 할 때 세 가지 다음 회사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서 정리를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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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가지로 정했는데, 지금 매일매일 사람을 만나면서 이게 깨지고 있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가장 큰 고민은 내가 풀고 싶은 문제가 뭔가예요. 영어로 일하는 거 혹은 해외 어느 나라에서 일하는 거, PM으로 일하는 거 이런 것들이 다 너무 중요한 고민이지만 진짜 내가 풀고 싶은 문제가 뭔지가 가장 중요해요.

내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전문가로 어떤 문제를 푸는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이거에 대한 고민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은 지역에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더 많이 살 수 있고, 그래서 지역을 어떻게 하면 더 지속 가능하게 해서 지역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이런 고민들을 가장 많이 하고 있어요. 이걸 저만의 방식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로 어떻게 해결을 해 나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 "너는 그냥 사업을 해야 된다, 창업을 해야 된다" 예요. 그리고 저도 최근에 들어서 나는 정말 내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취업, 해외 취업 준비를 하던 중 내 거, 내 사업을 만들어 볼까.. 이런 대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 혼란의 여정들을 기록으로 많이 남기고 있는데 퇴사 노트 안에 제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어요. 이렇게 회고를 해보니까 앞으로 나아갈 키워드를 정리하게 됐고, 앞으로 가져가야 될 숙제도 여러분들한테 공유하고 선언하면서 계속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 네 분의 공통점과 배운 점

1.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서고 있다.

수진님은 삼성에서, 릭님은 NC소프트에서, 퓨처코드님은 CJ에서, 롤라님은 미스크에서 각각 나와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어요. 안정보다는 성장과 도전을 선택했죠.

이는 미래의 일하는 방식이 조직에 종속되기보다는 개인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요?

 

2. '사람'과 '관계'를 중시한다.

수진님은 커뮤니티 빌더로, 릭님은 사람을 연결하는 창작자로, 퓨처코드님은 비폭력 대화를 통해, 롤라님은 동료들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AI나 기술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인간관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3. '기록'의 힘을 믿고 계셨다.

기록을 단순한 추억 보관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방향 설정의 도구로 활용하고 계셨어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기록은 자신만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기록은 과거의 패턴을 분석하고 미래의 선택지를 명확히 하는 전략적 도구인 것 같아요.

 

4. 네 분 모두 현재 완성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실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거죠. 그런 솔직함과 용기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완성'보다는 '성장'하는 삶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이번 커리어 회고전을 통해 네 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어요.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용기 있게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번 커리어 회고전에는 또 어떤 멋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까요? 혹시 자신의 커리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다오랩 멤버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든 신청해 주세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다오랩이길 바라며, 다음 뉴스레터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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