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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S의 제왕,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위기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한때 25%를 넘나들던 경이적인 매출 성장률은 이제 7~8% 수준으로 떨어졌고, 시장은 ‘AI 서사 피로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에 행동주의 펀드들의 거센 압박에 못 이겨 대규모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에 나섰던 기억도 아직 생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M&A 러버 마크 베니오프 CEO가 다시 한번 칼을 빼 들었습니다. 약 80억 달러(약 11조 원)를 들여 데이터 관리 기업 인포매티카(Informatica)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죠.
M&A 중독자의 오랜 습관이 다시 도진 걸까요? 아니면 이 거대한 베팅이 정말로 세일즈포스의 위기를 해결할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요?
AI가 CRM을 삼키려 한다
세일즈포스의 위기는 단순히 ‘성장 둔화’로만 볼수는 없습니다. 더 깊은 곳에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위협이 자리 잡고 있죠. 바로 ‘에이전트 AI(Agentic AI)’의 부상.
에이전트 AI는 스스로 데이터를 찾고, 판단하고, 여러 시스템에 걸쳐 복잡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죠. 이게 세일즈포스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한번 상상해 보시죠. 유저는 더 이상 세일즈포스에 직접 로그인해서 복잡한 리포트를 만들거나 고객 정보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AI 에이전트에게 “이번 달 예상 매출 보고서 만들어서 팀에 공유해 줘”라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일즈포스는 뭐가 될까요? 지금의 핵심 가치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AI 에이전트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저 뒤에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백엔드’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세일즈포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심각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렇다보니 세일즈포스도 이 위협을 인지하고 ‘에이전트포스(Agentforce)’와 ‘데이터 클라우드’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대응에 나섰죠. 하지만 똑똑한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가 믿을 만한 결과를 내놓으려면, 그 기반이 되는 데이터가 깨끗하고,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전제조건이 붙기 때문이죠.
지표 | FY24 | FY25 (실제/추정) | FY26 (전망) |
전체 매출 성장률 (YoY %) | ~11% | 9% | 7% - 8% |
구독 지원 매출 성장률 (YoY%) | ~11% | 10% | ~8.5% |
데이터 클라우드 & AI ARR | ~$409M | $900M | N/A |
데이터 클라우드 & AI ARR 성장률 | N/A | 120% | N/A |
Non-GAAP 영업이익률 (%) | 30.5% | 33.0% | 34.0% |
해결책은 데이터
바로 이 지점에서 인포매티카 인수의 진짜 이유가 드러납니다. 인포매티카는 데이터 통합, 품질 관리, 거버넌스, 마스터 데이터 관리(MDM) 등 소위 ‘데이터 정제’ 분야의 숨은 강자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업의 복잡하고 지저분한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깨끗한 연료’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죠.
세일즈포스는 인포매티카의 기술을 자사의 플랫폼에 깊숙이 통합함으로써,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강력한 ‘데이터 해자(moat)’를 구축하려 하는데요, 세가지 영역에서 기대효과가 보이죠
- 에이전트포스 강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위에서 더 똑똑한 AI 에이전트로의 발전
- 뮬소프트/태블로 시너지: 데이터 통합(뮬소프트)과 분석(태블로)의 전 과정에서 데이터 품질과 신뢰도 향상
- 데이터 클라우드 확장: 다양한 소스의 데이터를 더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관리하여 고객에게 더 완전한 데이터 뷰를 제공
결국 이번 인수는 AI의 위협을 기회로 바꾸기 위한 전략적 포석입니다. AI 에이전트 경쟁에서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가졌는가’를 넘어,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위에서 AI를 작동시키는가’의 싸움으로 경쟁의 룰을 바꾸려는 시도인 셈입니다.
슬랙(Slack)의 교훈
그런데 말입니다, 세일즈포스/마크 베니오프의 M&A 역사를 돌이켜보면 항상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2021년, 무려 277억 달러를 쏟아부었던 슬랙(Slack) 인수는 ‘전략적 당위성은 의심스러운데 가격은 엄청나게 비쌌다’는 비판을 받으며 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인포매티카 인수는 어떨까요? 시장은 의외로 ‘다르다’고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 먼저 전략적 명분이 확실합니다. 슬랙과 달리 인포매티카의 기술은 세일즈포스의 핵심인 데이터 및 AI 전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죠
- 둘째, 가격이 합리적입니다. 1년 전 논의되던 가격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인수했으며, 이는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호되게 자극받은 재무 규율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 셋째, 인수 타이밍이 절묘합니다. 인포매티카가 클라우드 전환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으로 주가가 부진한 틈을 타, 핵심 자산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확보한 기회주의적 측면도 있습니다
마치 슬랙이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난 뒤, 더 신중하고 노련해진 투자자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항목 | 인포매티카 | 슬랙 |
인수가 | 약 80억달러 | 약 277억 달러 |
전략적 목표 | AI를 위한 데이터 기반 강화 | 기업용 협업 시장 공략 |
전략적 적합성 평가 | 핵심 비즈니스와 직결 | 시너지 모호 |
시장 반응 | 신중한 낙관론, 재무적 긍정 평가 | 가격 및 시너지에 대한 지속적 우려 |
새로운 전쟁의 시작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과연 이번 인수로 세일즈포스의 위기가 해결될까요?
단기적으로는 '아니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가 제 생각입니다.
이번 인수는 위기를 단번에 해결하는 마법 지팡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미래에 베팅하는 ‘승부수’에 가깝습니다. 두 거대 조직의 기술과 문화를 통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며, 인포매티카가 가진 ‘데이터 업계의 스위스’라는 중립적 지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너지를 내야 하는 어려운 숙제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수는 세일즈포스가 직면한 ‘성장 둔화’와 ‘AI의 위협’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가장 합리적이면서 도전적인 답변입니다. 세일즈포스가 단순히 CRM 애플리케이션 회사를 넘어, 기업의 모든 데이터를 관장하는 ‘통합 AI 및 데이터 플랫폼’으로 진화하겠다는 야심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죠.
성공한다면 세일즈포스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장착하고 AI 시대의 리더십을 공고히 할 겁니다. 실패한다면, 슬랙의 악몽이 재현되며 리더십은 또다시 흔들리겠죠.
이번 인수는 세일즈포스가 던진 가장 큰 승부수입니다. 위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죠. 그 결과는 앞으로 2~3년 안에 판가름 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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