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의 성북동

두 번째 성북동 문학 산책기

2025.05.11 | 조회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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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돌아 성북천

성북천을 둘러싼 공간, 사람, 풍경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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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문인 그 시작은 조선의 모파상 상허 이태준이다.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집에서 큰길(그래봐야 왕복 2차선이지만)로 가면 수연산방이라는 전통찻집이 있다. 이태준은 수연산방에서 1933년부터 1946년까지 가족과 거주하면서 작품을 집필했다. <달밤>, <장마>, <까마귀> 같은 단편 소설이 여기서 탄생했다. 그의 친구들도 종종 수연산방에 와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조금 특별하다. 아니 익숙하리만치 특별하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박태원, <날개>의 이상, <향수>의 정지용,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등, 당대 걸출한 작가들이 수연산방을 드나들며 서로의 작품 세계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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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성북동은 정말 근대 문학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수연산방 바로 앞에는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이 있다. 그 외에도 수두룩빽빽.) 성북동 길을 걷다가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가 있다면 생각해보자. ‘저 나무는 이태준을 기억할까?’, ‘혹시 저 나무 아래에서 이상이 앉아있었을까?’ 사실을 확인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좋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태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 (여기서 ‘지용’은 그 유명한 <향수>의 정지용) 이렇게 산문 하면 이태준을 떠올릴 만큼 미문으로 유명했다. 이태준 문장의 핵심은 ‘글=말’에 있다. 글로 표현하려는 것은 결국 마음, 생각이고 이것과 가장 최단거리에 있는 표현 방식은 글보다는 말이다. 그에게 글 짓기는 말 짓기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 속 인물은 100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다. 말맛이 살아있어 시나리오를 보는 느낌도 든다.

그는 에디터이기도 했다.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 <조광> 등 여러 언론사에 글을 기고했고, 특히 <문장>에서는 요즘 편집장 역할인 주간을 맡았다. 그는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가지고 올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천재 시인 이상이 대표적인 작가다. 이상의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근무하던 이태준의 추천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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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그의 작품 속 성북동이 궁금해진다. 성북동이 등장하는 수많은 문장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읽으시면서 성북동에 대한 호기심이 몽실몽실 피어나리라. 1936년에 쓰인 <장마>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아내는 성북동으로 처음 나와볼 때, 왜 그때 이렇게 산보하기 좋은 데를 몰랐느냐고 나를 비웃었다.” 화자가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험한 길을 걷다 마침내 성북동에 도착했을 때를 회상하는 문장이다. 그렇다, 성북동은 이태준이 인정한 산책하기 좋은 동네다. 지금도 마찬가지. 오르락내리락, 꼬불꼬불한 길 덕에 걸을 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바뀌어 산책하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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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북동 지형을 안다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배가 된다. 역시 <장마> 속 문장이다. “나는 집을 나선다. 포도원 앞쯤 내려오면 늘 나는 생각, ‘버스가 이 돌다리까지 들어왔으면’을 오늘도 잊어버리지 않고 하면서 개울물을 내려다본다.” 성북동에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 문장에서 희열을 느낀다. 여기서 ‘집’은 수연산방이고, ‘포도원’은 지금의 간송 미술관 앞쪽에 있었다. 개울물은 북악산에서 이쪽까지 흘렀던 성북천일 테니 돌다리는 그 위에 있는 쌍다리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연산방에서 간송미술관까지는 내리막이니 ‘내려오면’이라는 표현도 이해가 간다. 지금 쓰면서도 문장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몹시 뿌듯하다. 나는 이 뿌듯함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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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태준이 궁금하다면 성북동에 오셔야 한다. 그것도 서두르셔야 하는 이유는 간송미술관 앞 쪽에 있는 성북근현대문확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이태준, 그리고 성북>이 6월 8일까지이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이태준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옛 성북동에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혹시 모른다. 이태준을 스치던 바람이 여러분을 상쾌하게 만들지.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글쓴이. 고운
사진. 돌고돌아 성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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