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성북동

세 번째 성북동 문학 산책기

2025.05.25 | 조회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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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돌아 성북천

성북천을 둘러싼 공간, 사람, 풍경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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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천이 흐르던 성북로를 따라 올라가면 수연산방을 얼마 지나지 않아 한용운의 동상이 보인다. 그 위로는 ‘만해 한용운 옛집’이라고 쓰여있다.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광복을 1년 앞두고 입적하기까지 지냈던 ‘심우장(尋牛莊)’이다. 찾을 ‘심’, 소 ‘우’ 한마디로 ‘소를 찾는 집’이다. 무슨 뜻일까.

만해 한용운 옛집, 심우장
만해 한용운 옛집, 심우장

불교에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소를 찾는 과정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니까 심우장은 ‘진리를 찾는 집’이다. 그 과정을 그린 작품을 ‘심우도’라고 하는데 심우도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찾는 과정은 한 방향이 아니다. 심우도의 마지막 그림 ‘입전수수’는 깨우친 승려가 중생에게 돌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다시 세속으로 들어간다. 만해가 생각하는 진리를 찾는 과정은 연대하며 행동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심우장 현판 / 심우장 주방 / 마당의 향나무
심우장 현판 / 심우장 주방 / 마당의 향나무

이를테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만해는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다. 3.1운동을 계획하고 동지를 규합하다 발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일제 탄압을 피해 생활하던 만해에게 친구들이 돈을 모아 심우장을 지어줄 때 만해는 북향으로 창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광화문 뒤에서 경복궁을 가리던 조선총독부가 꼴도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또한 그는 승려로서 불교의 사회참여를 독려하고 승려의 결혼을 청원하는 등 조선 불교 개혁에 앞장섰다. 형식적인 금욕에서 벗어나 세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진리를 찾는 여정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었다.(실제로 만해는 결혼을 했고 딸도 있었다.) 한마디로 혼자 깨닫는 수양이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어릴 적 책장에서 보았던 책 제목이 떠오른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이러한 호연지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서대문 형무소 투옥 당시 찍은 사진을 보라. 팔짱을 끼고 달관한 표정으로 정면을 쳐다보는데 눈을 마주치는 순간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는 인상이 뇌리에 박힌다. 렌즈 너머 사진을 찍는 일본 교도관을 상상해보자. 감옥에서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출처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출처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 <님의 침묵>에서 그 기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시험에서 자유로운 채 읽으니 이렇게 절절한 시가 또 없다. 그중 한용운의 생각이 압축되었다고 생각한 구절은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다. 그렇다, 세상만사 사람의 일이라면 끝이 있고 또 돌아온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고, 반대로 이별이 있으면 만남도 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라고 한다. 이에 대한 믿음이 있어 만해는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광복을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분명히 올 광복을 향해 적극적으로 투쟁한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는다. 님의 침묵에서 볼 수 있는 만해의 기세는 바로 이 정수박이에 담긴 ‘새 희망’이다. 희망을 제 손으로 만드는 사람은 꺾이지 않는다. 비록 만해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입적했지만 그는 분명히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 ‘님의 침묵’ 속에서도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를 들었던 것처럼.

심우장 내부 전시관의 <님의침묵> 단행본
심우장 내부 전시관의 <님의침묵> 단행본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믿는 것은 결국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일이다. 오늘은 영원하지 않다는 믿음.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현재의 고통은 시간을 꽉 붙잡아 느리게 만들고 현재의 기쁨은 그것마저 외면해버리지 않던가. 2025년을 사는 우린 종종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산다. 이럴 땐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철 따라 변하는 자연이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시간의 존재를 드러낸다.(애석하게도 도심 빌딩 숲에는 계절이 없다.) 심우장에서 나와 좁고 가파른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고즈넉한 동네 북정마을이 나온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양도성 밑에는 낮은 집들이 빼곡하게 있고 능선 너머로는 북한산이 보인다. 그 외엔 모두 하늘이다. 시야에 꽉 찬 자연의 기운에 절로 호흡이 깊어진다. 이 기운이 호연지기일까? 가지고 있던 고민을 돌고도는 ‘사람의 일’로 퉁칠 수 있을 것만 같다. 

, 이제 현실로 내려갈 힘이 생겼다.

북정마을 풍경
북정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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