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성북동

다섯 번째 성북동 문학 산책기

2025.08.15 | 조회 258 |
0
|
돌고돌아 성북천의 프로필 이미지

돌고돌아 성북천

성북천을 둘러싼 공간, 사람, 풍경을 소개합니다.

 

첨부 이미지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나와 성북동으로 올라오는 길에는 매일 음식트럭이 있다. 견과류, 찹쌀 도너츠, 순대, 야채곱창 등 요일별로 메뉴가 바뀐다. 가장 반가운 트럭은 금요일 저녁에 오는 전기구이 통닭 트럭이다. 구수하고 기름진 수증기 속에서 조리를 기다리는 사람까지 보아야 진짜 주말 시작이다. 금요일 퇴근 지하철이란 마지막 고비까지 넘긴 것이니까. 서로 다른 것이 반복면 순간 속에서도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순간 속에서 시간을 인식하면 어딘가 푸근하고 아련해진다. 우리가 성북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첨부 이미지

오늘 소개할 성북동 문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수화 김환기다. 성북동 문인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는 화가로서 한국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문예>, <문장>, <현대문학> 등 문학잡지의 표지화를 그렸고 그 역시 원고를 기고할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났다. 또한 박두진, 박목월 등 당시 핵심 문인을 비롯해 이전에 소개했던 성북동 문인 이태준, 김광섭과도 교류했다. 아마 그가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분명 인플루언서였을 것이다.(옷은 또 얼마나 잘 입는다고.)

첨부 이미지

 

그는 김향안과 결혼하면서 1944에 성북동에 왔고 1956년까지 성북동에 살았다. 그가 살았던 집은 현재 수월암(성북로 168)이라고 전해진다. 이태준의 수연산방, 한용운의 심우장에서 조금 더 산 쪽으로 올라가면 나온다. 집 이름은 수향산방, 김환기의 호 수화와 김향안의 이름을 합쳐지었다.  

첨부 이미지

 

김환기의 그림에도 시간이 배어 있다. 성북동 풍경처럼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흰색 네모 속 푸른 점이 푸른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모든 면을 점으로 채운 그림이라고 해서 전면점화(全面點) 라고 부른다. 가까이서 캔버스에 찍힌 점들을 보면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처럼 서로 다르다. 래서 시야에 가득 찬 점은 작가가 작품에 쏟은 시간으로 치환된다. 보는 사람을 작가의 시간으로 초대한다.만약 동시에 여러 개의 점을 그는 장치를 개발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상상해보자. 같은 크기, 같은 색상으로 균일하게 배열된 점에서 시간을 느낄 수 있을까? 동시에 그려졌으니 여러 개라고 할 수 없 시간 역시 느낄 수 없다.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반복될 때 그 틈으로 작가의 시간이 쌓인다.

첨부 이미지
첨부 이미지

 

김환기의 작품 철학을 상징하는 물건이 있다. 달항아리. 김환기는 한국에서는 물론 유학으로 떠난 파리에서도 달항아리를 그렸다. 그는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이 될 것 같소. 라고 친구에게 편지할 정도로 달항아리를 좋아했다. 달항아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완벽하지 않음에서 시작한다. 정교하게 대칭을 이루지도 않고 자세히 보면 색도 균일하지 않다. 하지만 전면점화가 그렇듯 이런 틈에서 도공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제야 묘한 균형감과 자연스러움 같은 아름다움이 보인다.

첨부 이미지

 

성북동에 거주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도 달항아리를 좋아했다.(최순우 옛집의 그 최순우다.) 두 사람은 달항아리를 두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렇게 할 말이 많을까? 성북동 주민으로서 달항아리가 궁금해졌다. 원고를 쓰다 대뜸 달항아리 가격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심지어 65억 원에 팔리는 이 항아리의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무지했던 내 마음을 손톱으로 눌러 접었다. 더 찾아보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달항아리 전시를 하고 있었다. 하지 여건이 되지 않았다. 아쉬워하던 그때 얼마 전 다이소 달항아리가 인기를 끌었던 것이 생각났다. 다이소 홈페이지에 가니 여전히 판매 중.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달항아리 대형과 소형 각각 오천 원, 이천 원. 배송비 삼천 원해서 딱 만 원이었다. 3 만에 도착했다.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생산한 균일한 품질의 달항아리,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었지만 두 거장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의 단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첨부 이미지

 

감상을 말하자면, 아쉽게도 최순우, 김환기 선생님처럼 몇 시간을 이야기할 만큼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했다. 대신 달항아리가 되게 새침다는 것을 느꼈. 옆에 항아리와 다르지만 애쓰지 않고 무심하게 있더라. 그래서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이어진 생각, 모두가 달라보이고 다면 오히려 지독하리만치 똑같은 게 아닐까?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빠져드는 늪처럼.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에너지는 애쓰지 않고 다만 부단히 노력하는 것에 비롯된다. 

첨부 이미지

 

, 여러분의 달항아리는 무엇인가? 물론 내 코가 석자다.

 

글쓴이. 고운

사진. 돌고돌아 성북천, 고운, 국립중앙박물관, 환기미술관, 2022 성북구 로드메이커, 성북마을아카이브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돌고돌아 성북천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이전 뉴스레터

다음 뉴스레터

© 2025 돌고돌아 성북천

성북천을 둘러싼 공간, 사람, 풍경을 소개합니다.

뉴스레터 문의doldol.sbchun@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