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의 성북동

여섯 번째 성북동 문학 산책기

2025.10.12 | 조회 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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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천을 둘러싼 공간, 사람, 풍경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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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은 오래된 동네다. 건물들이 이를 증명한다. 길상사는 1997년에 세워져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건물은 원래 대원각이라는 식당이었다. 이 기간까지 고려하면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성북동 대들보 간송 미술관도 있다. 간송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 사립 미술관으로 무려 1938년에 완공되었다. 국보급 문화재도 여러 점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 문화재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바람도 산들산들 분다. 각국 대사들이 사는 집이 몰려있어 맛있는 빵집들이 있기도 하고, SNS에 알려진 가게들이 성북동에 입점하기도 한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다같이 놀아재끼자며 운동회도 연다는데… 이름하야 성북동 명랑운동회. 글의 첫 문단을 쓰는 현재 운동회 개최 1주일 전, 직장 이슈로 참석하지 못하는 한을 담아 더 열심히 써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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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성북동 문인은 근원 김용준(1904-1967)이다. 김용준은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서양화가이면서 후에는 동양화가로 활동했고, 미술평론가이자 수필가로 활동했다. 붓으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탁월했던 그야말로 천재. 김용준은 1934년부터 1944년까지 성북동에 살았다. 현재 누룽지삼계탕 맞은편,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수월암이 집터라고 전해진다. 오래된 감나무가 마당에 있다고 하여 노시산방이라고 불리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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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은 이제까지 소개했던 성북동 예술가 세계관 속에 있다. 우선, 노시산방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다. 이 두 사람은 일본 유학시절부터 교류했던 절친한 사이였고 서로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김용준이 동양화로 전향하게 되는 데 이태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리고 노시산방에 김용준 다음으로 살았던 인물은 바로 수화 김환기다. 김용준은 성북동을 떠난 뒤에도 김환기를 만나러 성북동에 올 정도로 김환기를 아꼈다. 이 세 인물은 모두 조선의 골동품을 좋아했다. 성북동엔 골동품과 수집품 기운이 흐른다. 아무래도 진경산수화에 등장할 듯한 산세를 가지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태준이 1946년까지 수연산방에 살았단 것을 감안하면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골동품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아, 이 얼마나 황홀한 풍경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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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은 일본을 통해 서양 문물이 쏟아지던 시기에 활동했다. 서양화가이면서 동양화가인 그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는 맹목적으로 서양화를 좇는 흐름 속에서 한발 물러설 줄 아는 예술가였다. 옛것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았다. 오래된 새로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이미 지났지만 현재에도 유효한 아름다움이겠지.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을 관통한다. 사람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김용준은 김홍도, 신윤복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 풍속화를 좋아했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옛날 사람도 일하기는 싫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수작을 부렸으며, 아이들에게 우는 모습은 최고 놀림거리였다. 지독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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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써서 수필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그의 수필집 <근원수필>은 “소설은 이태준, 시는 정지용, 수필은 김용준”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 셋이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들과 친했던 무리에서 서로 추켜세우며 장난을 친 것 같기도 하지만, 또 그 무리가 현대 근현대 문학의 걸출한 작가들이니 그냥 인정할 수밖에... 실제로 읽어보면 너무 잘 쓴 나머지 화가 난다. <어쩌다 김용준>으로 출간되어도 손색없는 현대적인 문장에, 글의 깊이는 어찌 이리 깊은지. 일상 풍경에서 시작되어 예술과 삶에 관한 생각으로 빠져드는 속도가 빠르고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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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수필>에는 이맘때 성북동을 묘사하는 문장이 있다. 1936년 문예잡지 <조광>에 수록된 글 ‘서울 사람 시골 사람’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포도원에 포도송이가 보기 좋게 익어 가는 초가을이면 성북동의 호젓한 길녘은 산보하는 청춘 남녀로 가득 차고 맙니다.” 여러분은 이 문장을 읽고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는지? 나는 여전히 성북동명랑운동회 풍경이 아른거린다. 심지어 글을 쓰면서 시간이 흘러 글의 마지막 문단을 쓰는 지금은 운동회 하루 전….! 오래된 동네 성북동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운동회라.. 재미와 멋이 넘실거린다. 분명 김용준 선생님도 흐뭇해하실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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