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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클럽하우스의 키워드- 목소리, 커뮤니티, 탈중앙화

클럽하우스가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 있을까?

2021.02.12 | 조회 5.6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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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TMI.FM

Tomorrow of the Music Industry

안녕, 뜻밖의 레터라서 놀랐을까? ㅎㅎ

내가 요즘 클럽하우스에 과몰입한 건 사실인데,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클럽하우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써봤어. 불행하게도 매우 길지만, 그냥 슥슥 읽어줘. 공유와 인용은 언제나 환영. 

오늘의 호외 토크: 1. Not Audio But Voice 2. 커뮤니티/공동체가 대안적인 미디어다 3. '모더레이터'를 '커뮤니티 리더'로 성장시키는 서비스 4. 탈중앙화와 클럽하우스

지난 레터에 쓴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

클럽하우스는 커뮤니티의 성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를 위해 '신뢰'와 '헌신'이라는 덕목을 기술적으로 증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팬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Media | 클럽하우스 아이콘은 왜 뮤지션일까? (2021/02/07)

오늘 이야기는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는 시간이 될거야. 키워드는 목소리, 얼터너티브, 커뮤니티 리더.  

1. Not Audio But Voice

최근 클럽하우스에 대한 여러 분석들은 대체로 '음성 기반의 소셜 클럽'이나 '다른 형식의 팟캐스트', '강연/콘퍼런스 시장의 위협', 심지어 '하이텔 동호회' 같다는 얘기로 수렴되는 것 같아.

동시에 '카톡을 대체하지 않을까?' '과거에도 이런 서비스가 있었는데...?' '인스타처럼 상업적으로 변하면 어쩌지?' '인싸만 노는 곳' 등등의 의견도 있고 말이지. 

이런 의견에 대체로 동의해. 하지만 이런 의견은 클럽하우스의 핵심 가치를 '음성 콘텐츠' '커뮤니케이션'으로 볼 때 가능한 것 같아. 나도 처음엔 이런 맥락에서 클럽하우스를 이해하려고 했는데, 최근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이건 기능적이거나 형식적인 관점인데, 사실 클럽하우스를 쓰면 쓸수록 경험하는 건, 그 아래에 깔린 어떤 철학이랄까 관념적인 부분이야. 

나는 클럽하우스에서 중요한 게 '목소리'라고 생각해. 이 '목소리'야말로 클럽하우스를 독보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봐.  

목소리는 왜 중요할까?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그 함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우리가 보통 '00의 목소리'라고 표현할 때는 그 '00'의 생각이나 의지를 일컬어. 히어링(hearing)과 리스닝(listening)의 차이 같은 거랄까.

<인어공주>를 생각해봐.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주고 인간의 다리를 얻었을 때, 사실상 본래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어. 인어공주의 목소리가 곧 그의 본질이니까. 그래서 '목소리'라는 개념은 음성이나 오디오와는 질적으로 다른,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그 목소리의 주체성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목소리의 주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누굴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지를 말로 전하는 것,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그게 목소리라고 할 때 이것은 발화권력과 같은 의미이기도 해.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사회에서는 정치인이, 기업에서는 대표가 이런 목소리를 가진 자들로 여겨져.

그러므로 목소리에 대한 고민 그 자체가 바로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어. 인류의 역사는 사실 이 목소리를 가지기 위한 헤게모니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또한 20세기와 21세기를 나누는 기준도 바로 이 '목소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광대역 무선 통신의 일상화, 개인 미디어의 등장,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 수평적 기업 문화, MZ 세대의 출현, 젠더와 정체성 이슈의 보편화, 개미들을 위한 증권 거래 서비스, 블록체인 시스템(not 암호화폐)... 등이 21세기의 특징이라면, 이 반대편에는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 일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의 종말, 수직적 문화의 쇄락, 기성세대 가치관의 충돌, 이성애자-남성 중심주의의 균열, 월스트리트의 붕괴 같은 중앙집중형 권력 구조의 균열이 있어.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목소리', 다시 말해 미디어의 변화라고 생각해.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야말로 미디어를 가진다/미디어가 된다라는 뜻이니까. 

2. 커뮤니티/공동체가 대안적인 미디어다

닉 콜드리, <왜 목소리가 중요한가>(2015)
닉 콜드리, <왜 목소리가 중요한가>(2015)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봤어. 런던 정경대학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닉 콜드리 교수가 2010년에 발표한 책. 한국에서는 2015년에 번역되었어. (이 책을 번역한 대중음악 연구자인 이정엽은 내게 매우 중요한 선배라는 건 TMI...ㅎ)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쓰인 책이라서, 내용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중앙집권형의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춰. 사회학, 현상학, 포스트구조주의의 여러 학자와 작가들이 인용되는데, 핵심은 '목소리의 주체성'이야.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목소리가 하나의 주체성을 의미한다'는 관점이야. 그렇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이 단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여기지만, 그것이야말로 신화적인 상상이고 진짜 중요한 것은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해. 목소리는 말하기 이전에 잘 들어야만 하는 것이니까.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어. 2010년 이후의 사회학은 바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환경에 주목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런 목소리를 잘 듣는 일을 훈련해야 한다고. 그걸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야. 

이런 점에서 소위 오피니언 리더, 쉽게 말해 대기업이나 레거시 미디어에서 한 말씀 들으려고 모셔가는 사람들이 클럽하우스에서는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또한 매우 주의깊게 보게 돼. 공동체의 관점으로 이 서비스를 본다면, 이야기의 주제(유머, 주식, 소개팅 등등이든 뭐든)와 무관하게,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클럽하우스에서 더 많은 목소리가 등장할 때, 심지어 유머, 소개팅, 추천 영화, 하찮지만 소중한 일상에 대한 감상일지라도 더 많은 목소리들이 주체성을 가질 때, 다시말해 어떤 주제든 모두가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방'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듣기'와 '말하기'를 더 잘 훈련하리라고 생각해.

이때 규모는 중요하지 않아. 방을 만들고 한 명이든 열 명이든 함께 대화하는 경험이 중요한 거지. 적어도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아직은, 잘 듣고 잘 말하는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현재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복잡해진다고 생각하니까.     

현재 여러 경로로 유통되는 클럽하우스에 대한 리뷰 중 대부분은 '말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서비스에서 중요한 게 오히려 '듣는다'는 행위라고 봐. 말하는 쪽은 듣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판단할지, 또한 다른 의견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므로, 사실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입장을 넘어서는 개념이기도 하거든. 

한편, 이런 행위로 인해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되는 상황 자체가 하찮아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 비주류의 미디어, 혹은 정체성의 정치는 주류를 전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오히려 비주류의 목소리를 무수히 늘리고 늘려서 주류/비주류의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고 우습게(혹은 촌스럽게) 만드는 일이니까. 그런 미디어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더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보고, 그거야말로 '21세기의 공동체'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 공동체 자체가 곧 대안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어때? 말이 좀 될까....

3. '모더레이터'를 '커뮤니티 리더'로 성장시키는 서비스

내가 클럽하우스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음성, 오디오, 토크 같은 게 아니라 바로 이 '목소리'야. 개념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요소.

그런데 목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시피, 이미지나 영상과 달리 캐릭터를 포장하기 어렵다는 점이야. 적어도 30분 이상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 사람이 자주 쓰는 단어, 무심결에 하는 리액션, 입에 붙은 표현 등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목소리가 곧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셈.

심지어 말을 멈추는 순간, 상대방을 부르는 뉘앙스, 대화할 때의 추임새 등 비언어적인 면들도 말하는 사람의 성품이나 태도를 전달하지. 내가 20여 년 정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만나 보니 실제로 그렇더라고.

그래서 언어적 맥락을 가장 잘 전달하는 건 오히려 비언어적 반응이라고 생각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레토릭의 3요소인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의 기준 역시 말이니까. 목소리가 곧 인격이야.

  새로운 스토리텔링 | 차우진 (2020)
  새로운 스토리텔링 | 차우진 (2020)

이런 점에서 클럽하우스의 역할 중 가장 흥미로운 건 '모더레이터'인 것 같아. 오케이, 그럼 여기서 질문.

클럽하우스에서는 역할에 따라 리스너, 스피커, 모더레이터로 구분되는데 왜 하필 '모더레이터'라는 표현을 썼을까? 

아무리 작은 서비스라도 기획자들은 그 안에서 쓰는 용어나 개념을 오래 고민하면서 결정하잖아? 그렇다면 여러 용어들 중에 굳이 이 단어를 고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무의식 중에 서비스 철학이 반영되기도 하니까. 

모더레이터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어.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니까 참고한 것은 케임브리지 사전.

1. 다른 사람들이 합의에 도달하도록 돕는 사람
someone who tries to help other people come to an agreement

2. 공식적인 토론이 문제없이 진행되도록 규칙을 수행하는 사람
someone who makes certain that a formal discussion happens without problems and follows the rules

3. 위협적이거나 공격적인 메시지 등을 제거하면서 인터넷 토론이 망가지지 않게 규칙을 수행하는 사람
someone who makes sure that the rules of an internet discussion are not broken, for example by removing any threatening or offensive messages

https://dictionary.cambridge.org/

말 그대로 '중재자'의 역할이야. 그런데 우리는 보통 '말하는 사람'에게 더 집중해. 스피커의 언변, 지식, 정보들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니까. 대신 모더레이터는 그냥 제자리에 앉아 진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돼. 왜냐하면 모더레이터는 실제로도 말을 많이 하지 않거든.

대신 모더레이터에게는 일종의 통찰력이 있어야 해. 이 사안과 저 사안을 이해하고 있어야 어떤 발언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 또한 스피커에게 유용한 질문을 던지거나, 적당한 때에 농담을 던지면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해. 리스너와 스피커 중에 누구도 소외받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는 건 기본이고. 

따라서, 모더레이터의 지식, 태도, 철학은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을 만큼 깊고 단단하게 연결되어야 해.

이게 얼마나 어려워? ㅎㅎ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클럽하우스에 조금 먼저 가입해 활동하는 사람들은 종종 모더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스피커로 올라와주세요, 리스너로 내려가 주시면 됩니다."라는 표현은 위계적이므로 어떻게 다른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이나 소수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소통하려면 어떤 룰을 정해야할까?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또 실제로 이런 주제로 방을 만들어 사람들의 생각을 듣기도 하지.

이렇다보니, 클럽하우스에서 모더레이터는 대체로 이 서비스에 헌신하는 사람들이고, 그와 상응해 모임에 있어서는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돼. 이때 정말로 흥미로운 건, 이 절대적인 권한이 소수의 모더레이터에게 귀속되기는 커녕 사실상 그 방의 전원에게 분산될 수 있다는 점이야. 기술적으로도 클럽하우스에서 중요한 기능인 것 같아. 

왜 그랬을까. 

전략적으로는 이 서비스의 핵심 자산이 사용자의 체류 시간에 있기 때문일 거야. 클럽하우스에 처음 접속한 사람들은 보통 아래와 같은 패턴을 보이는 것 같은데 말야.

1) 이 방 저 방 배회하면서 무작정 듣는다
2)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한 마디 해본다
3) 이걸 반복하면서 다양한 룸에서 리스너와 스피커의 경험을 쌓는다 
4) 큰 맘 먹고 방을 만들고 사람들과 대화한다 
5) 모더레이터로서 다양한 변수와 문제를 경험한다 
6) 다른 방에 들러 리스너와 스피커로 참여한다 
7) 나름의 케이스 스터디를 한다 
8) 큰 맘 먹고 방을 만들고 사람들과 대화한다 
9) 변수와 문제를 개선한다 
10) 5번부터 계속 반복한다

이런 반복된 행동 패턴으로 사용자는 리스너, 스피커, 모더레이터의 경험을 동시적으로 경험하게 돼. 이 반복된 경험으로 만날 일 없던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동질감도 느끼고, 나아가 이 서비스에도 애착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도 하겠지. 이 서비스 경험이 나와 클럽하우스를 특별한 관계로 만들고, 마침내 이 서비스의 문화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러므로 클럽하우스의 핵심 가치는 '모더레이터'라고 생각해. 체류 시간(핵심 자산)과 모더레이터(핵심 가치)는 클럽하우스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요소야. 그를 위해 이 서비스는 '좋은' 모더레이터를 많이 양성해야 하고, 당연히 그를 위해 서비스의 가이드라인과 보상도 중요해지겠지.

클럽하우스는 아직도 베타 서비스 중인데, 오픈 이후 사용자의 목소리에 절대적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 클럽하우스의 블로그에 가면 그 동안 어떤 피드백을 받아서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한 공지를 한 번에 볼 수 있어. 매우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다양한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반영한 내용들이지.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건, 이 모더레이터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 한 마디로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역할도 수행하는 것 같다는 점이야. 

이 쯤에서 클럽하우스가 시작된 계기와 당시의 사회적 환경을 되짚어보자고.

공동창업자 폴 데이비슨(Paul Davison)과 로한 세스(Rohan Seth)는 2011년에 처음 만났어. 둘 다 소셜 서비스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 그러다가 2019년, 로한의 딸 리디아(Lydia)가 희귀병을 안고 태어나자, 두 사람은 ‘전 세계의 전문가들과 특정 주제로 연결되는 소셜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심해. 그게 바로 클럽하우스야.

그런데 당시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인해 공론의 장이라는 소셜미디어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이었어.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로 가득찼지. 하지만 이건 단지 행정부의 문제만은 아니었어. 인터넷 미디어 환경, 소셜 미디어를 운영하는 기업들, 여기에 돈을 대는 광고주, 또 정부의 정책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심지어 후퇴시키기도 했잖아?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은 그 언제보다 미디어와 사회적 건강성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어. 

클럽하우스의 블로그에서도 이런 대안에 대해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우니까 시간날 때 한 번 살펴봐. 

아무튼, 이런 맥락에서 클럽하우스의 사용자가 점점 '모더레이터'로 성장해가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도 보여. 내가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라고 썼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 그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고, 우리는 인간에 대한 관심, 애정, 배려, 통찰을 가진 시민성(citizenship)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게 곧 커뮤니티 리더와 같은 맥락이라고 봐. 공동체의 리더에게 필요한 소양은 잘 듣고 배려하고 모두의 이익에 우선하는 결정을 내리는 거니까. 이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쏟아내는 게 아닐 거야. (그 기준으로 회사의 리더나 정치인들을 분류해볼 수도 있겠지...) 

이렇게 보면, 클럽하우스는 토론이라는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을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를 갖춘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농담이 아니고, 나는 이걸 교육 서비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아.  

전에도 말했지만, 유튜브의 핵심 자산은 '크리에이터'야. 이 얘기는 유튜브가 창작자의 툴이라는 뜻이기도 하지. 인스타그램에서는 '인플루언서'라고 불러. 특정 분야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클럽하우스에서는 '모더레이터'야. 이들은 주제를 제안하고 대화를 이끌어.  

이 셋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메시지가 흐르는 방향에 있다고 봐. 유튜브, 인스타그램의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는 구독자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입장이야. 구조적으로 그렇지. 

하지만 클럽하우스의 모더레이터는 메시지의 흐름을 중재하면서 스피커와 리스너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아. 이런 이유로 클럽하우스에서 팔로워의 수는 중요하지 않아. 영향력이 아니라 신뢰도를 나타내는 지표일 뿐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선 이전 레터에서 충분히 얘기한 것 같으니 참고해줘 )   

4. 탈중앙화와 클럽하우스

자, 이제는 나름 참신한 관점으로 클럽하우스를 살펴 보려고 해. ^^; 탈중앙화(decentralized)의 관점으로 클럽하우스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탈중앙화는 블록체인의 철학이기도 하지.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야!) 알다시피, 블록체인 논의가 현실성을 가진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던 것 같아.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은행을 믿었는데 알고보니 은행도 기업과 똑같은 놈들이었네? 이게 그 사태 이후에 우리가 배운 점이지.

그래서 시스템적으로 한 군데에 몰빵한 신뢰 구조를 분산시키고, 누구도 그걸 변경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블록체인 시스템이야. 핵심은 신뢰라는 형이상학적이고 무형적인 가치를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클럽하우스에서 신뢰는 매우 중요한 가치야. 리스너, 스피커, 모더레이터를 왔다갔다하는 사용자들은 이런 구조적인 과정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클럽하우스라는 거대한 커뮤니티의 성장을 돕는 '커뮤니티 리더'로 성장해. 또한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지. 이런 구조에서 신뢰는 사이버머니처럼 적립되면서 사용자들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이 신뢰를 보여주는 게 팔로워와 노미네이트(추천인)인 것 같아. 이 둘은 프로필에서 가장 잘 보이도록 위치하고 있어. 이 영역이 신뢰를 측정하는 정량적인 기준이 된다면, 정성적으로는 사용자가 이 서비스 안에서 리스너, 스피커, 모더레이터를 유동적으로 경험하도록 설계한 것을 언급하고 싶어.

모더레이터의 권한을 나눠줄 수 있다는 특징은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클럽하우스에서는 누구도 고정된 정체성을 가지지 않아. 10만명이 팔로우하는 사람이 어떤 곳에서는 리스너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는 스피커가 될 수도 있어.

팔로워가 많다고 발언권이 더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는 것도 아니야. 팔로워가 많은 사람을 먼저 노출하는 건, 그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클럽하우스라는 커뮤니티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여기서는 누구나 평등한 관계에 있어. 물론 어떤 방에 갑자기 연예인이 들어오고,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거기에 쏠릴 수도 있거든? 하지만 그건 모더레이터가 그에게 발언권을 주면서 그쪽으로 관심이 몰리게 했기 때문이지,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그를 주목하게 한 탓은 아니야. 나는 이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시금 모더레이터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탈중앙화라는 관점에서 클럽하우스를 보면, 이 서비스의 철학적 토대가 분산+신뢰+공동체의 유기적인 결합이라고 생각하게 돼.

사실 우리는 이미 단일성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어. 음악을 예로 들면, 빌보드 차트 1위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 동시대의 대중음악이 어떻게 소비되고 어떻게 유통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거든.

여기에는 수익모델과 지속가능성도 포함돼. 빌보드 차트 1위는 매우 영광스러운 지위고, 실제 높은 수익의 방증이기도 하지만, 빌보드 차트 1위에 아무 관심도 없는 지역도 많아. 방탄소년단 직전에 누가 빌보드 차트 1위였는지 기억하는 사람?

그만큼 우리는 이미 분산된 미디어 환경에 살고 있고, 그런 경험으로 중앙화된 신뢰 구조에 대한 신뢰가 흐릿하다고 봐. 레거시 언론에 대해서도 그렇고, 플랫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  

누구나 커뮤니티의 리더가 되어 각자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권한이 매우 유동적이고, 또한 권한이 분산될수록 더 강한 리더십을 얻게 되는 클럽하우스의 구조는 매우 신선해. 이렇게 쌓아올린 신뢰를 바탕으로 커뮤니티의 성장에 기여하게 되는 역할 또한 그렇고. 나는 클럽하우스를 쓰면 쓸수록 블록체인이나 위키피디아의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느껴.

이런 구조를 보면 클럽하우스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수평적 공유, 토론 및 대화를 통한 새로운 결과값의 창출인 것 같아. 글로벌 기준으로 최소한 200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쓰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음악, 과학,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종사자들 뿐 아니라 부모들이나 기업가, 주식거래자, 비영리 단체의 지도자 등이 모두 어우러져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클럽하우스가 단지 음성 기반의 소셜 미디어라는 것보다 더 입체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어쩌면 이 서비스로 한국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그러나 아주 미미할 수도 있겠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거든. 

그래서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

우리는 지적 행위가 보통 어떤 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진 않아. 오히려 일단 거기에 참여하고, 경험하고, 그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 나의 지적인 스승님이자 팬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수잔 손택이 강조한 대로,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물로 경험하는 것"은 늘 부족하니까. (해석에 반대한다/수잔 손택)

관찰(심지어 외부에서 관찰하므로 부정확할 수밖에 없는)이 아니라 참여로, 그를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고,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 지도 몰라. 어쩌면 이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될 지도 모르고.

기껏 새로운 서비스 하나에 이 정도로 거창하게 말하는 게 못마땅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클럽하우스에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심지어 그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걸 알아.  

오히려 나는 이 서비스를 쓰는 동안 클럽하우스가 아니라, 동시대의 공동체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돼. 클럽하우스가 자극하는 신선함이라면 바로 이 부분인 것 같아. 우리는 이 세계를 어떻게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자 오늘은 여기까지.

기회가 될 때 우리, 클럽하우스에서 종종 만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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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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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Stage Maker

    0
    about 3 years 전

    👍👍👍👍👍

    ㄴ 답글 (1)
  • kimmy

    0
    about 3 years 전

    무척 공감하며 읽었어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ㄴ 답글 (1)
  • 꼬기

    0
    about 3 years 전

    이번 글 너무 엄청나서 여기저기 퍼다나르는 중! 감사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

    ㄴ 답글 (1)
  • Hoonsik

    0
    about 3 years 전

    우진님 너무 좋은 글 무척 잘 읽었습니다 인사이트에 감명받고 갑니다! 괜찮으실 때 합정에서 커피 대접할게요!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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