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윤수일, 김해원과 [한국 팝의 고고학]

TMI.FM의 DJ 차우진 | 말 많고 고독한 뉴스레터 대량 발행인. 뭘 많이 씁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파트에 대한 기억 하나는 갖고 있을 것이다. 그게 좋은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도 마찬가지다. 단층 양옥이든, 반지하든, 나홀로 아파트, 원룸이든 이제껏 한 번도 18평 이상의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던 나는 1년 반 전에 지금의 30평 아파트에 월세로 이사를 왔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기뻤다깁다는 이제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더 컸다. 그 감각은 차를 처음 샀을 때처럼 아마 꽤 오랫동안 내 몸에 남아있을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런 감각을 시각과 음악으로 재현한다. 아파트는 한국의 보편적인 욕망의 대상이란 점에서 [기생충]의 대저택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 놓인다. 그것은 계급 상승의 욕망보다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 다시 말해 아파트는 접근 가능한 욕망의 대상이고 '똑똑하게 굴면' 노동력과 금융제도를 레버리지 삼아 '똘똘한' 아파트 한 채는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이 현실적 거리감은 계급적인 불가능성으로 전환된다. 어쩌다 보니 살게 된 아파트가 우연히 대재난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입주민들이 스스로를 '선택 받은 존재'로 여기게 만든다. 

물론 그 안에서도 스스로를 더욱 구별짓고 싶은 욕망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주민회의에선 누군가 '이왕이면 자가 여부도 따져야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 말에 몇몇은 '자가'임을 항변하지만, 부녀회장은 "세상이 뒤집어졌고 이젠 위아래 없이 모두가 평등해졌다"고 말하며 그 의견을 묵살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저기 있었다면 당장 쫓겨나 죽어버렸겠다고 절망하는 동시에 어쩌면 부녀회장은 전세나 반전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 제발 실거주 우선으로 해주세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소름끼치게 현실적인 감각을 집어넣는다. 적어도 이런저런 상상으로 빈 틈을 메우게 한다. 이런 여지는 사실 디테일한 묘사 덕분이다. 생각해보면 관객(혹은 사용자)이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는 빈틈은 세부적인 디테일과 거시적인 엉성함이 만드는 게 아닌가. 수많은 아이돌의 세계관, 혹은 [기동전사 건담]이나 [스타워즈] 같은 이야기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익숙한 음악 두 곡이 등장한다. 하나는 "즐거운 나의 집", 그리고 윤수일의 "아파트".

"즐거운 나의 집"은 전반적으로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아파트"는 내러티브의 몰입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야기의 텐션을 높이는 핵심은 단연코 윤수일의 "아파트"다.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매우 중요한 장면에 쓰이는 이 노래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리메이크 버전으로 한 번 더 나온다.

음악 감독은 김해원. 영화 팬들에게는 [윤희에게], [피의 연대기], [소셜포비아] 등의 음악감독으로 알려졌을 그는 2014년 김사월x김해원이라는 프로젝트로 데뷔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열었던 '레코드 폐허'(레코드 페어 아님)에서 100장 한정 싱글 "비밀"을 발매한 후 몇 곡을 더해서 EP [비밀]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윤수일의 "아파트"와 [한국 팝의 고고학]

윤수일의 "아파트"는 1982년에 발표된 곡이다. 이 노래는 윤수일 밴드 2집의 히트곡으로, 윤수일 밴드 2집은 그가 직접 일기획(=윤수일 기획)이란 회사를 차리고 음반을 기획, 제작한 뒤 서울음반을 통해 발매한 앨범이다. 이 내용은 신현준, 최지선, 김학선이 쓴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중 '1980 욕망의 장소'에 실린 윤수일과의 인터뷰에 자세히 적혀 있다. 

당시 그는 1인 제작사의 대표이자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로서 방송 활동과 밤무대를 섭렵했다. '윤수일 밴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밴드로 활동했지만 비용 문제로 방송사가 혼자 출연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서는 밴드로 출연한 영상을 찾기가 꽤 어렵다.

"아파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한국 팝의 고고학]에서는 이 노래와 1980년대 히트곡을 설명하기 위해 '지리학'을 가져온다. 영동(=영등포 동쪽)이라는 말이 '강남'보다 자연스러웠던 시절에 한강 이북과 이남은 그 역할이 확연히 달랐다. 애초에 강남이 전원주택단지로 개발될 예정이었다는 점도 충격적이지만 강북 지역의 유흥업소는 제도적으로 규제를 한 반면, 강남은 규제를 풀어줬던 탓에 강북의 직장인들이 다리를 건너 2차를 가고, 그와 함께 당대의 음악가 및 코미디언, 연예인들이 강남에 '일'을 하러 오갔다는 얘기는 제 3한강교(=한남대교)가 상징하는 강남권의 대규모 아파트 개발 시대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한편 "아파트"보다 1년 먼저 발표한 1집의 수록곡이자 히트곡인 "제 2의 고향"은 이 도시 속 '콘크리트 빌딩 숲'의 정서를 좀 더 현대적으로 응시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직접 영향을 준 것은 박해천의 동명 저서(=그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의 3부작으로 한국 현대사를 다룬다)지만, [한국 팝의 고고학] 또한 한국 대중 음악과 장소성을 문화사회학의 관점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함께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2023년 현재, 아파트를 단지 세속적 욕망으로 치환하는 것은 그 맥락과 의미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이 선망하는 거의 유일한 핵심 자산이자 밀레니얼 및 제트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면서 베이비 부머의 욕망과 X세대의 향수를 반영하는 복잡한 대상이 된다. 이렇게 한국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드라마틱하게 겹치는 장소가 아파트라면, 영화에 흐르는 윤수일의 "아파트" 또한 배경음악과 영화적 장치라는 맥락을 넘어 2023년이라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정서가 교차되는 시공간의 지점으로 거듭난다.

영탁(이병헌)과 혜원(박지후)의 "아파트", 김해원 음악감독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엔딩 타이틀에는 "아파트"의 리메이크 버전이 흐른다. 본편의 영탁(이병헌)이 부르는 "아파트"와는 그 밀도와 역할이 다르다. 영탁이 부르는 "아파트"는 자동차의 서치라이트 조명으로 만들어지는 주민들의 기괴한 그림자 쇼와 함께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반면, 엔딩 타이틀에 흐르는 "아파트"는 좀 더 서늘하게 관객을 향해 겨누는 질문을 담는다. 

이 리메이크는 음악감독을 맡은 김해원이 편곡하고 연주했다. 보컬은 박지후, 영화에서 문혜원을 연기한 배우로, 아마 [벌새]의 은희로 가장 잘 알려졌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벌새]의 배경도 강남의 주공 아파트 단지였다) 영탁의 "아파트"가 저돌적이고 본능적이라면 박지후의 "아파트"는 염세적이고 공허하다. 전자는 돌진하고 후자는 응시한다. 미니멀한 기타 사운드에 세팅된 공간계 이펙트가 깊고 어두운 구덩이를 만들면 우리는 피할 도리 없이 그 심연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식이다.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에서도 매우 인상적이던 접근법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음악은 주로 아이러니로 기능하는데,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의 클리셰를 피하면서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충돌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김해원은 엄태화 감독이 설계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세계로 진입한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생채기를 남기는 역할을 맡는다. 이것은 그가 음악을 맡았던 [셔틀콕]이나 [은희에게]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영화의 음악감독이라기보다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서의 접근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관습을 벗어나 자기만의 법칙을 기어코 설득해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의 완결성, 엔터테인먼트의 쾌감이 아니라 '얘기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식 블록버스터의 어떤 유형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식 블록버스터란 장르 컨벤션에 작가주의(혹은 아트무비의 태도)를 끼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음악이 활용되는 방식도 흥미롭다.

트리비아: 알면 더 재미난 것들

1. 인트로에 등장하는 80년대 서울 아파트에 대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상은 엄태화 감독이 KBS [모던 코리아] 제작팀에게 요청해 이태웅 PD가 연출한 것이다. 

2.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제작사는 클라이맥스스튜디오로, 2018년 레진스튜디오로 출범해 2021년 클라이맥스스튜디오로 사명을 변경해, 지금은 SLL(스튜디오 룰루랄라) 소속 레이블 중 하나다. 최근 제작한 작품은 넷플릭스의 시리즈 [지옥]과 [D.P], [정이] 등이 있다. 

3. 공동제작사는 BH엔터테인먼트로 영화의 주연을 맡은 이병헌, 박보영, 박지후의 소속사다. 그외 소속 배우는 고수, 김고은, 박해수, 안소희, 정우, 유지태, 이지아, 한가인, 한지민, 한효주, 추자연 등이다. 2016년에 설립되었고 2018년에 카카오M이 100%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손자회사가 되었다.

4. 엄태화 감독은 엄태구 배우의 형이다. 엄태구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특별 출연으로 참여했다.

5. 황궁 아파트의 위치는 3호선 금호역 부근 산자락에 위치한 단지로 설정되었고, 민성(박서준)이 지진에 휩쓸리는 장소는 약수역 앞이라는 설정이다. 한편 드림팰리스는 역세권(혹은 더블 역세권)으로 설정되어 있다.

※ 참고: 씨네21, [콘크리트 유토피아] 제작기 

📻 김해원 - 오 내 사랑 (2018)

2018년 김해원의 앨범 [바다와 나의 변화]에 실린 곡. 어둡고 무서운 어느 바닥에 달라붙은 듯한 김해원 특유의 고통스럽고 탐미적인 감각이 매우 잘 반영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요. 이 앨범은 김사월이 공동 프로듀서와 스타일링을 맡았고 아를이 코러스와 연주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영상과 사진 촬영은 황예지 작가가 맡았는데요, 그는 이도진 디자이너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랑이 시작한 뉴스레터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에서 글을 연재했고, 그 글을 모아 2020년에 에세이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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