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 시부야 타워레코드 전층 투어 (23.4.18)

🌇 시속 5km는 보통 산책할 때의 속도입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낯설거나 익숙한 풍경을 지나치며 영감을 찾습니다. '인사이트 트립'이라 불러도 좋겠지만, 일단은 구독자님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을 다룹니다. (별 것 없는) 공간을 (어떤 일이 벌어지는) 장소로 바꾸는 얘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도시, 공간, 음악에 대한 오픈 칼럼입니다. dj@tmi.fm으로 원고와 자기소개를 보내주세요.

일본, 피지컬 음반의 천국

달리 말이 필요한가? 일본의 피지컬 앨범 시장은 강건하다. 스트리밍 점유율이 연간 18%의 성장률로 올라가고 있는 2023년에도 그렇다. RIAJ(일본 음반 산업 협회)에 따르면 2021년까지 일본 시장에서 피지컬 앨범 판매량 비중은 80%를 넘었고, 일본 전국에 피지컬 레코드 매장의 수는 6천 개 이상이다. (미국은 2천 개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피지컬 앨범 시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에만 85개 지점을 가진 타워레코드다. 그래서 나는 도쿄에 올 때면 타워레코드를 방문하는 시간을 꼭 빼둔다. 도쿄에서 음반 디깅을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지만, 도쿄 거주민이 아니라 여행이나 출장을 온 입장에서는 방문할 때마다 ‘머리로는 아는데 심장으로는 못 받아들이는’ 경험을 늘 하게 된다. 대체 왜? 왜 이렇게 여전한 거야? 피지컬 앨범 시장이?! 여기는 스트리밍이 없는 곳인가?! 심지어 이번에 갔을 땐 도시 곳곳 전광판에서 스포티파이 광고가 잘만 돌아가고 있던데...

팬데믹 이후 첫 도쿄, 사실상 3년 만의 방문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컨퍼런스 출장이었지만, 컨퍼런스 종료 후 행사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시부야 타워레코드를 생략할 순 없었다.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 마냥 5년 만에 앨범 디깅을 시작했다. (예전엔 주로 신주쿠 타워레코드에 갔기 때문에 시부야 타워레코드는 첫 방문이기도 했다!)

공략의 기본은 맵을 먼저 숙지하는데 있다. 시부야 타워레코드는 총 9층, 그 중 앨범 디깅을 위한 층은 1~7층이다. 층별 안내에 따르면 큰 장르와 대분류를 기준으로 층이 나뉜다. 대략 3층은 J-POP, 4층은 아니메 OST, 5층은 K-POP, 6층은 록, 7층은 재즈/월드 뮤직…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당연히 엄격하지 않고, 같은 앨범들이 여러 층에 나뉘어 배치된 경우도 많지만, 이것도 나름 피지컬 시대의 방식인지라 정감 넘친다.

1층: New Releases & Recommends

먼저 둘러볼 1층은 신보와 프로모션을 위한 공간이니만큼, 요즘 현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반을 살펴보기 좋다. 무려 3CD로 구성된 메탈리카 2023년 신보 코너가 먼저 눈에 띄었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 4]에서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가 나오는 바람에 역주행으로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고, 구보와 신보를 통틀어 피지컬 판매량이 폭증한 수요를 소화하지 못해 급기야 메탈리카가 직접 LP 공장을 인수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번 신보 [72 Seasons]는 무려 3CD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타워레코드의 감상용 플레이어를 통해 새 곡을 듣다보니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아, 이놈의 메탈 취향은 아직도 몸에 남아 있구나. 그리고 스트리밍으로도 굳이 찾아듣지 않던 음악이 왜 여기서는 이렇게 매력적으로 들리는 걸까?!

메탈리카 바로 옆에는 얼마 전 작고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작품이 깔려 있고, 고개를 돌리면 K-POP 신보 프로모션 코너에 아이브와 케플러가 있다. 다른 쪽에는 작년 말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아니메 [체인소 맨]의 OST와 단행본, 그리고 OST를 담당한 요네즈 켄시의 다른 음반들도 있다.

여기서 갑자기 눈길을 끌었던 건 (뉴진스의 작곡가로도 잘 알려진) 250이었다. 프로모션 코너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솔로 앨범 [뽕]이 1층에서도 한 쪽 면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K-뽕의 역습인가.

2층: CAFE & POP-UP

2층은 카페와 팝업 스토어가 있는 휴식 공간이다. 밤인데다가 마감 시간도 있어서 여유가 없으니, 빠르게 스킵하고 올라간다.

3층: J-POP & J-INDIES | 4층: ANIME & IDOL

J-POP 쪽은 지식이 많지 않아 좀 어리벙벙하게 둘러봤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익숙하고 흥미를 많이 끄는 건 3층과 4층에 전체적으로 걸쳐져 있는 아니메, 게임 OST 등이었다.

[파이널 판타지 6]의 OST 바이닐은 1층에도 있었지만, 여기서도 쉽게 눈에 띈다. 최정상급 게임과 아니메에 최정상급 뮤지션이 참여하는 시장이다 보니 음반 판매량에서도 비중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엔 전에 보지 못한 섹션이 보였는데, 다름아닌 V-TUBER 섹션이다. 하츠네 미쿠, 키즈나 아이 등이 대표적인 일본의 V-TUBER인데,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해 있다. CD 진열장 복도 한 라인을 모두 V-TUBER가 점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V-TUBER 기획사의 대표 격인 Hololive가 차지한 매대의 위엄도 굉장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럴 만 하다. 최정상급 V-TUBER는 웬만한 실제 뮤지션보다 더 많은 오프라인 콘서트 관객을 모으니까.

국내에서는 ‘귀멸의 칼날 오프닝 곡을 부른 그 가수’로 알려진 LiSA는 아니메 플로어에선 아예 한 섹션을 통째로 점유하고 있다. 아니… 기본적으로 이 분은 싱어송라이터라고…

5층: K-POP

K-POP 및 이벤트 공간으로 쓰이는 5층은 다른 층보다 붐비는 분위기다. 실제로도 가장 사람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 제대로 ‘덕질’을 하러 온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K-POP은 확실히 굉장히 다양한 구성의 프로모션을 보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여러 포맷의 피지컬 앨범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다른 장르에 비해 바이닐의 비중은 매우 작지만, CD를 담는 포맷과 형식이 눈에 띄게 다양하고, 거기에 카드형 앨범, 플랫폼 앨범(NFC 버전 앨범), 심지어 카세트까지… K-POP의 주요 소비국으로서의 일본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6층: TOWER VINYL - ROCK, HR/HM

6층에서 분위기는 크게 반전된다. 시부야 타워레코드의 바이닐 전용 층이라서 CD의 비중이 확 줄어들고 한 층의 절반 이상이 바이닐로만 진열된다. 장르적으로도 아시아를 벗어난 분위기인데, 클래식 중의 클래식에 해당하는 구보와 신보가 함께하다 보니 시간을 초월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정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벽면 한 쪽을 할애해서 만든 딥 퍼플의 도쿄 공연 사진 특별전. 1972년 8월, 딥 퍼플이 최초로 일본에 방문해 3일 간 펼쳤던 라이브를 촬영한 사진가가 최근에 고퀄리티의 부틀렉 사진들을 방출한 모양이다.

7층: JAZZ, SOUL, WORLD

마지막 7층.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이미 1시간이 훌쩍 지났고, 7층에 오를 정도가 되면 체력도 고갈된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블루 자이언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앨범은 4층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는데, 23년 2월에 일본에서 개봉한 후 꽤나 화제가 된 모양이다. 일본 친구들도 많이 언급하는 애니메이션인데,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7층까지 모두 둘러보니 마감시간인 10시가 가까워졌다. 고르고 고른 음반들을 서둘러 계산했다. 외국인은 부가세 환급도 가능하다고 해서 그걸 챙기다 보니, 결국 매장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머무는 손님이 됐다.

제한 시간 내에 나름대로 열심히 둘러보느라 1시간 반 이상을 보냈다. 곧 마흔이 코 앞인 아재로서는 웬만한 백화점 쇼핑보다 더 많은 체력을 쓴 셈이다. (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은 시부야는 밤에도 활기차고, 곳곳에서는 심심찮게 한국어도 들린다.

일본, 계속 피지컬 음반의 천국일까?

컨퍼런스에서 만난 일본의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계통 종사자들은 이제 일본에도 음원 스트리밍이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에서만큼은 디지털 산업이 피지컬 산업을 죽이는 글로벌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도 자꾸만 ‘왜?’ 라는 물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질문도 생긴다. 계속 이럴 수 있을까? 

2021년 데이터를 살펴보자. 일본의 오디오 레코드 및 뮤직비디오 시장은 20년 대비 15% 하락했고 디지털 음원 시장은 10% 이상 성장했다. 물론 팬데믹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결과는 그렇다. 이러한 일본 음악 시장의 추이는 한국 음악 산업에도 매우 중요하다. 2022년 기준으로 K-POP 수출액에서 일본의 비중은 36%에 달하기 때문이다.

J-POP은 ‘스트리밍을 외면한 탓에’ 역상장하고 있다고 한다. RIAJ의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15년 동안 J-POP 산업의 성장률은 연평균 -3%,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제 일본 음악 시장은 과거와 달리 콘텐츠 공급자가 아니라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이 계속 유지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 일본의 음악 시장은 강건하고 건재하지만, ‘예전같지 않다’는 현지 목소리도 없지 않다. 늦었지만 J-POP도 이제는 스트리밍과 뉴미디어에 올라탔고, 어쿠스틱과 아날로그와 연주의 가치를 중시하던 일본의 음악 크리에이터 문화 역시 많은 일렉트로닉/샘플링/DAW 기반의 창작법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렇게 일본이, 막차일 지언정, 글로벌 음악 산업의 변화 흐름을 탔을 때 한국 음악 산업과 그 종사자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지금 당장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지라도, 계속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이런 생각에 잠겨 시부야 역 근처 숙소로 돌아왔다. 그 길 중간에는 블랙핑크 멤버들이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참고로, 이 사진의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최근 넷플릭스 [성:인물]의 마지막 화에 나왔던 주점 거리가 나타난다!)

긴 시간 동안 타워레코드를 디깅하고 이런저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애초의 생각보다 구매는 많이 하지 않았다. 내가 뭘 샀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을 다시 위아래로 스크롤해 보면서 도대체 뭘 샀는지 한 번 맞춰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힌트는, 위의 사진 중에 있다. 누가 알까, 맞추면 뭐라도 줄지! (댓글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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