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말줄임표 | 미워하는 이를 다시 사랑하는 법

TMI.FM의 DJ 강남규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이자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토론의 즐거움]을 운영하는 강남규 DJ가 함께 읽고 싶은 웹툰을 소개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세상에서 하나의 작품을 10년 동안 잡음 없이 연재한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더군다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학원물을 10년 동안 연재했다면 그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청소년들 사이의 유행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 아는가? 잠깐만 뒤처져도 이미 유행은 다른 유행으로 옮겨간다. 유행뿐인가? 사용하는 언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기 일쑤다. 10대 당사자들조차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다.

그런 그들의 유행과 언어, 그리고 신체감각과 정신세계를 10년 동안 꾸준히 포착해냈다는 건 그야말로 노력의 산물이다. 10년 전에 탄생한 캐릭터의 언어와 패션감각 따위를 조금씩, 어색하지 않게,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캐릭터성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매년 갱신해내는 것도 놀라운 재주다. 지난 3월 약 10년에 걸친 연재 끝에 이야기를 맺은 [연애혁명]은 이런 일들을 해냈으니 명작의 반열에 올라 마땅하다.

[연애혁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9년 8개월에 걸친 연재기간, 총 441화에 달하는 이야기 내내 단지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그려질 뿐이다. 기본적으로는 공주영과 왕자림의 연애 이야기가 메인 줄기를 이루지만, 232 작가는 이들이 관계 맺는 수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도 거의 동등한 수준의 애정을 갖고 그려냈다.

그러니 이렇게 요약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 모습과 별다를 것 없는 고등학생들이 우리 모습과 별다를 것 없이 연애하고 싸우고 절교하고 위로하고 분노하고 짜증내고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그런데 이제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10대의 감각을 곁들인.

이 작품은 연재기간 내내 요일 톱 자리를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대단한 일이지만, 달리 말하면 다수의 독자들에게 휘둘릴 위험에 언제나 노출돼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네이버 웹툰은 기묘하게도 순위가 낮은 웹툰일수록 취향이 마이너하고 충성심 넘치는 독자들만 남기 때문에 좀 더 작가의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고, 순위가 높은 웹툰일수록 대중적이고 충성심 없는 독자들이 대규모로 모여들기 때문에 소위 ‘여론몰이’가 활개를 친다.

[연애혁명]은 이 중 후자였고, 그래서 때로 여러 부침을 겪어왔다. 폭력을 과도하게 묘사하거나, ‘참교육 서사’에 매몰되거나, ‘사이다’를 줘야 한다는 압박에 굴복하는 식으로. 그래서 이 작품을 한동안 찾아 읽지 않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연애혁명]은 여느 작품들과는 달랐다.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하다가도, 기어이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왔다. 결말부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완전했다.

주영의 여자친구인 자림을 향한 마음을 들켜 친구들 사이에서 ‘매장’당했던 경우를 끝까지 붙잡아준 병훈과 그런 경우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주영이의 모습,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정치질’을 일삼다가 소외돼 버린 민지의 늦었지만 서투른 사과를 품 넓게 받아준 자림과 아람의 모습.

민지가 악역이냐는 어떤 독자의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이 말이 고스란히 보여주듯, 232 작가는 자기 작품의 주인공들 모두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유지했고, 미숙하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시켰다. [연애혁명]이라는 작품의 부침은 마치 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도 닮아 있다. 

작중 내내 치열하게 갈등했으면서도 끝내 화해에 다다른 주인공들을 보며 다 큰 내가 배운다. 30대 중반, 내가 할 줄 아는 건 누군가를 미워하는 법과 사랑하는 법, 그리고 사랑했던 이를 미워하는 법 뿐인 것 같다. 미워하는 이를 다시 사랑하는 법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연애혁명]의 아름다운 결말은 내가 잊어버린 ‘미워하는 이를 다시 사랑하는 법’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연애혁명]의 아이들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해낸 그 일을 나는 왜 엄두도 못 내게 됐을까. 살아오면서 관계라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어버렸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상당한 노동력이 투입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은 아닌가. 반면 저 ‘미숙한’ 10대들은 그런 고민 따위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니, 그저 거침없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달려나가기 때문은 아닌가. 바로 그 ‘거침없음’이야말로 우리가 10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일 테다. 💬 DJ 강남규 | 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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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드폴 - 4월의 춤

4월이 오면 이 노래를 듣습니다. 제주도에서 감귤을 키우는 농부이자 작가, 그리고 싱어송라이터인 루시드폴이 제주 4.3항쟁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죠. 이 노래가 여느 추모곡과 달리 특별한 점이 있다면 ‘용서’를 얘기한다는 겁니다.

“슬퍼하지 말라고 / 원망하지 말라고 / 우릴 미워했던 사람들도 /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 / 미워하지 말라고 / 모질어지지 말라고 / 용서받지 못할 영혼이란 없는 거라고 / 노래한다지 / 춤을 춘다지”

루시드폴이 죽은 이들을 대신해 용서를 얘기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은 남습니다. 하지만 ‘4월이 오면 유채꽃으로 피어 오는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이란 말을 누구에게 하는지 생각해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집니다. 4월이 오면 잃어버린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진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과 평생을 싸워온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것은 ‘용서’보다는 ‘걱정’에 관한 가사일 겁니다. 슬퍼하는 것, 원망하는 것, 미워하는 것, 모질어지는 것,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잖아요. 미움의 감정은 사람을 또 다른 미움의 감정으로 몰고 가기도 하지요. 그건 일종의 소용돌이 같은 것이라서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고, 누군가가 손잡아 줄 때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요.

그러니 루시드폴은 산자들을 원 없이 사랑했을 죽은 자들의 입장에서 여전히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는 산자들에게 말 거는 거죠. 미워하지 말라고, 모질어지지 말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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